“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우여곡절’ 벤투호의 평양 2박3일

  • 뉴스1
  • 입력 2019년 10월 17일 11시 45분


코멘트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최영일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축구보다는 ‘안 다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였다. 상대에게 심한 욕설도 많이 들었다.”(손흥민)

29년 만에 북한 평양에서 열린 남북 남자 축구대표팀간의 맞대결은 우여곡절로 점철됐다.

생중계는 물론 팬들도 없이 치러진 무관중 경기에 국내외 미디어도 없는 사상 초유의 경기뿐 아니라 경기 외적으로도 이번 평양 원정은 손흥민의 표현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준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지난 15일 오후 5시30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조별리그 H조 3차전 북한전에서 득점 없이 0-0으로 비겼다.

이번 남자축구 남북전은 개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지난 1990년 이후 29년 만에 평양 땅에서 열린 경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전 생중계가 불허되는 등 예상과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고, 사상 초유의 무관중 경기로 열렸다.

◇주어진 정보는 옐로카드 4장…“북한은 전쟁을 치렀다”

이날 경기는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대한축구협회는 평양 현지에 파견된 직원이 서울에 있는 협회 직원에게 특정 상황을 알려 다시 취재진에게 문자를 보내는 방식으로 소식을 전할 계획이었지만 이마저도 북한의 열악한 통신 사정으로 인해 변경됐다.

평양에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감독관이 AFC 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로 상황을 전달하면 말레이시아에서 서울의 축구협회 직원에게 전하고 그것을 출입기자단에 다시 알려주는 식으로 진행됐다.

이마저도 경기를 파악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 경기 시작과 전반 종료, 경고 상황, 교체 투입 상황만이 전해졌다. 두 팀 중 어느 팀이 경기 주도권을 쥐고 있는지, 누가 슈팅을 때렸는지도 알지 못했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두 팀 통틀어 나온 경고 4장이었다.

17일 오전 귀국한 선수단을 통해 당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손흥민은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수확일 정도로 북한이 거칠었다”며 “축구에서 몸싸움은 당연히 허용되지만 북한은 누가 봐도 거칠게 들어왔다.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고 전했다.

이어 “심한 욕설도 많이 받았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축구보다는 ‘안 다쳐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핑계 아닌 핑계지만 부상 위험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평양 원정 단장 자격으로 선수단과 동행한 최영일 부회장은 “전쟁을 치르는 것 같았다. 북한 선수들의 눈빛이 살아 있었다. 안 지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며 “북한은 정신력을 강조한 축구를 했다. 부상 없이 뛴 것으로 만족한다”고 전했다.

◇음식물 압수에 2박3일간 호텔에만…“물어봐도 답 없어”

선수단은 경기 외적으로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14일 평양에 입성한 뒤 고기, 해산물이 들어 있는 메인 식재료 3박스를 압수당해 호텔 식단으로 음식을 해결하는 등 100% 컨디션으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또 선수들은 호텔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호텔 직원 역시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손흥민은 “선수들도 예민한 문제다 보니 조심했다. 호텔에서 쉬면서 경기에 최고의 몸 상태를 맞추려고 했다. 경기에만 집중했다”고 전했다.

최 부회장은 “통신 자체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호텔에는 우리 선수들과 관계자만 있었다. 외부인의 출입도 금지됐다”며 “북한은 규정대로 한다고 했다. 무엇을 물어도 대답을 정확하게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한축구협회는 FIFA 규정을 살펴보고 제소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예정됐던 북한전 녹화중계 역시 결국 취소됐다. KBS는 이날 오후 5시 계획했던 남북전 녹화중계를 편성표에서 뺐다.

북한은 한국 선수단이 평양을 떠나기 직전 중계 영상이 담긴 DVD를 건넸다. 하지만 축구협회 확인 결과 화질이 좋지 못해 방송용으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깜깜이 경기’로 이번 북한전은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대한한국 축구대표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2019.10.17/뉴스1 © News1

대한한국 축구대표팀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2019.10.17/뉴스1 © News1

대한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7/뉴스1 © News1

대한한국 축구대표팀 손흥민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귀국하며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0.17/뉴스1 © News1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이번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뉴스1 © News1

15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열리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 대표팀은 이번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대한축구협회 제공)/뉴스1 © News1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