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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군은 진돗개인가 푸들인가[오늘과 내일/이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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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군은 진돗개인가 푸들인가[오늘과 내일/이승헌]

이승헌 정치부장 입력 2019-07-16 03:00수정 2019-07-1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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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보초도 못 서면서 윗선 눈치만
군, 안보만큼은 악마의 변호인 되어야
이승헌 정치부장
최고 권력자와 군의 이상적인 관계는 어떤 것일까. 이 질문과 관련해 종종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2015년 9월 25일 오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포트마이어 기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만찬을 불과 4시간 앞두고 버락 오바마 당시 미 대통령이 급히 들어섰다. 미군 현역 최고위직인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의 전역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오바마와 뎀프시 사이가 늘 좋았던 건 아니다. 이슬람국가(IS) 격퇴전 해법을 놓고는 적지 않게 충돌했다. 오바마는 취임 후 ‘No boots on the ground(전투화 한 켤레도 땅에 닿지 않게 하겠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전쟁터에 미군을 투입하지 않겠다는 것. 하지만 뎀프시는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지상군을 보내야 한다”고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오바마는 뎀프시를 떠나보내는 자리에서 군인으로서 정체성과 고집을 높게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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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티(뎀프시의 애칭) 집무실에는 빈 시가 상자가 있는데 그 안엔 마티가 (2003년) 이라크전에 참전했을 때 휘하에서 전사한 132명의 미군 이름과 사진, 그들의 희망이 적힌 카드가 있다. 상자 겉에는 ‘(전사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말자(make it matter)’는 문구가 있다. 마티는 회의 때 132장의 카드 중 3장을 꺼내 항상 품에 지녔다.”

엄숙하던 전역식장에 박수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마티를 합참의장에 임명한 것은 그가 보여준 군의 비전, 신뢰 때문이었다. 마티는 나에게 언제나 에두르지 않고 정직하게 조언했다. 당신 덕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마치고 IS 격퇴전을 치를 수 있었다. 이제 마티 당신을 내 친구라고 부를 수 있어 자랑스럽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의 뎀프시는 “백악관 회의 때 종종 군인으로서 할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를 허용해 준 대통령에게 감사드린다”며 “조국의 제복을 입은 것은 생애 최고의 영광이었다”고 화답했다.

북한 목선 노크 귀순 사건과 해군 2함대의 허위 자수 강요 사건은 장르는 다르지만 은폐 의혹이라는 점에서 사건의 본질은 같다. 군은 왜 은폐하려 했을까. ‘윗선’의 심기를 거스르면 큰일 난다는 인식, 눈치 보기가 어느 때보다 팽배해 있기 때문이라는 게 군 안팎의 이야기다. 목선 사건 직후인 지난달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반부패정책협의회에서 정경두 국방장관이 차렷 자세를 한 채 잔뜩 주눅 든 표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장면은 지금 벌어지는 많은 것을 설명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군이 경계태세 발령 때 ‘진돗개 경보’를 사용한다. 그만큼 충직하면서도 당당하고 날카롭게 나라를 잘 지키라는 뜻도 담겨 있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이게 뭐냐”고 했다.

군이 늘 이랬던 건 아니다. 윗선 눈치 보기는 북핵 비핵화 협상이라는 불가항력적 요인도 작용했을 것이다. 군은 적과 싸우기 위한 조직인데 지금 상황은 군의 실존적 이유와 배치되는, 혼란스러운 측면이 없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군이 이렇게 정치적으로 길들여지는 건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화 기조일수록 군이 안보 이슈만큼은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자처할 수 있어야 한다. 국방장관이 필요하면 국무회의에서 일부러라도 반대 의견을 내야 정부 차원에서 안보 이슈를 제대로,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 정부 들어서도 한미 양국 군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만들자며 틈만 나면 사용하는 표현이 military presence(군의 주둔)와 deterrence(억제)다. 군이 강력한 존재감을 바탕으로 실존하고 있음을 적에게 보여줘야 도발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군은 지금 최소한의 존재감이 있는가.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안보#노크 귀순#해군 허위 자수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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