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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아이콘’ 울산 주민규 “드래프트 실패가 삶의 동력…이젠 K리그1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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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아이콘’ 울산 주민규 “드래프트 실패가 삶의 동력…이젠 K리그1을 향해”

남장현 기자 입력 2019-02-18 05:30수정 2019-02-18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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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주민규. 울산|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주민규(29·울산 현대)는 가장 전형적인 정통 스트라이커라는 평가를 받는다.

탁월한 골 결정력은 물론, 최전방에서 상대 수비진영을 뒤흔들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을 지닌 주민규는 그야말로 K리그2를 씹어 먹었다. 물오른 화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고비 때마다 한 방을 꽂아 넣으며 위기의 팀을 구해냈다.

많은 팀들이 그의 실력을 주목하며 탐냈지만 마지막 선택은 울산이었다. 2016년 입대한 상주 상무에서 뛰었으나 군인이 아닌 신분으로 K리그1을 경험하는 건 2019시즌이 사실상 처음이다.


그러나 마냥 순탄한 걸음을 이어온 건 아니다. 주민규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2013년 고양 Hi FC에 입단해 서울 이랜드FC, 상주 상무를 거쳐 울산 유니폼을 입기까지 가시밭길이 계속됐다. 대학 시절,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면 수년이 흐른 지금도 울컥한다. 고양은 드래프트 행사가 종료되고 이틀 뒤 연락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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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하노이를 거쳐 일본 미야자키로 이어진 동계전지훈련을 떠나기에 앞서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주민규는 “아픈 과거가 있어 지금에 이르렀다. 힘듦과 간절함으로 버텨냈다. 절망 속에서 빛을 찾았고 열심히 살았다. 지금도 어지간한 역경은 버텨낼 수 있다고 자부한다”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의지를 전했다.

-진정한 K리그1 도전이다.

“상주에서 경험해봤지만 지금은 군인 신분이 아니다. 처음 왔을 때 빅 클럽에서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정말 많이 걱정했다. 이곳에서 새삼 울산의 잠재력을 느꼈다. (박)주호 형과 (이)근호 형이 따스하게 대해줘 잘 안착하게 됐다. 끈끈함도 느꼈다.”

-프로 경력이 그리 길지 않다.

“난 밑바닥을 경험했다. 사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 첫걸음부터 천천히 올라가야 했다. 그때는 굉장히 힘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언젠가 다가올 은퇴 이후의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힘으로 남았다.”

-신인 드래프트에서 팀을 찾지 못했는데.

“현장에서 날 찾는 팀이 없었다. 무척 괴로웠지만 그 무엇보다 가족들이 슬퍼하는 걸 보며 계속 가슴을 쳤다. 절망스러웠다. 이불 속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이틀을 누워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울면 숨도 쉬기 어렵다는 걸 그때 느꼈다. 부모님은 ‘괜찮다. 털고 일어나라’고 격려했지만 그게 더 고통스러웠다.”

-고양에서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이불에 파묻혀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쪽에서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집 형편도 넉넉하지 않다보니 더 미안했다. 기대에는 다소 미치지 못한 고양이 연락을 줬을 때 가족들이 ‘범사에 감사하라’고 해줬다. 좀더 솔직하자면 너무 상처가 커서 제대로 뛸 수 있을까 싶었다. 다행히 고양에서 좋은 선배들을 만났고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상처를 잘 치유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고양에 입단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만약 환경도 성적도 좋은 팀에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다면 삶은 달랐을 거다. 아마 약간의 시련에도 무너졌을 거다. 난 아마추어 시절 너무 자만했다. 심지어 먼저 프로에 간 선배들이 나보다 못 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반성하고 있다. 모두가 나보다 성실했고 더욱 노력했던 거다.”

울산 주민규. 사진제공|울산 현대

-최고의 공격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감사할 뿐이다. 그런데 진짜 목표는 ‘좋은 스트라이커’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넘어져도 늘 일어서고 다시 헤쳐 나가는 힘이 내게 어느 정도 생겼다. 볼을 잡으면 뭔가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뿜어내는 선수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채찍질을 하고 있다.”

-울산에서 어떻게 인정받고 싶나.

“솔직히 군 입대도 쉽지 않았다. (서울 이랜드에서는) 1년 더 뛰고 입대해주길 바랐다. 다행히 박건하 감독님(현 다롄 이팡 코치)이 뜻을 존중해주셨다. 이후 자유계약으로 풀렸고 안착한 울산행 소식에 온 가족이 너무나도 행복해했다. 이 기다림과 기대에 보답할 의무가 있다. 여기에 K리그2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골 폭풍을 몰아쳐도 주변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래봤자 넌 2부 리거’라는 비아냥까지도 들었다. 상주에서 이 꼬리표를 조금 떼어냈지만 아직 증명할 부분이 많다.”

-울산이 장기계약을 보장했다.

“4년이나 했다. 울산에서 우승을 하고 싶다. 상주 시절에는 진가를 확인시키고 싶었다면 지금은 타이틀을 바란다. 그동안 내가 거친 팀들은 대부분 하위권을 오갔다. 좀 더 욕심이 커졌다. ‘프로에서 난 우승은 어렵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목표가 너무 커졌다. 확실히 멀리 바라보고 있다. 한 가지 보태자면 국가대표팀에 꾸준히 합류하고 싶다. 축구화를 신은 모두의 꿈이 아닌가. 물론 울산에서 잘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울산|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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