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내년 2, 3월 공급’ 계약서엔 명시 안됐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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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업체 최고위 임원, 화상회의서… 구두로 약속한 것을 정부가 발표
정부 관계자 “충분히 신뢰 가능”
“얀센 내주, 화이자 이달내 계약”

정부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가 체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계약서에 구체적인 도입 시기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 내년 2, 3월 국내에 도입될 예정이라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아스트라제네카 측의 구두 약속에 근거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지만 도입 지연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다.

18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달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과 아스트라제네카 최고위급 임원이 화상회의를 통해 백신 공급 문제를 협의했다. 이때 아스트라제네카 측은 “내년 2, 3월경 공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측이 체결한 구매계약서에는 공급 일자나 분기 등 구체적인 시기가 명시되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계약서에 시기가 특정돼 있는 건 아니지만 최고경영진이 직접 확약한 사항이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회사 측의 백신 공급이 늦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복지부와 외교부 등 관계부처는 18일 백신 관련 브리핑을 열고 “구매 약정을 체결한 얀센과 이르면 다음 주 계약을 완료할 수 있고, 화이자는 최종 법률 검토 단계여서 이달 내 계약을 체결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각국이 경쟁적으로 추가 확보에 나서고 있어 두 회사와의 최종 계약에서도 구체적 도입 시기를 확정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또 선구매 대상 중 하나인 모더나와의 계약 체결은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추가 물량 확보에서도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나지 않고 있다.

미국 등 각국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정부도 뒤늦게 추가 물량을 확보하고 도입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나섰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K방역 성과를 과신해 오판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군간호사관생도 긴급 투입 18일 충남의 한 생활치료센터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개인보호구 착용법을 익히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코로나19 방역 지원을 위해 이날 생도들을 일선 생활치료센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제공
국군간호사관생도 긴급 투입 18일 충남의 한 생활치료센터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들이 개인보호구 착용법을 익히고 있다. 국군간호사관학교는 코로나19 방역 지원을 위해 이날 생도들을 일선 생활치료센터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국방부 제공
“정부가 백신을 대하는 기본 태도는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될 때까지 여유 있게 천천히 대처하자는 것이다.”(8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브리핑)

“내년 2, 3월 백신 최초 도입 후 신속히 접종이 시행되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18일 정부 백신 확보 브리핑)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확보 전략은 이처럼 열흘 만에 180도 바뀌었다. 당초 정부는 다른 나라의 백신 접종 부작용을 살핀 뒤 여유 있게 접종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며 국민 불안이 커지자 백신 도입과 접종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문제는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백신 확보에 경쟁적으로 나서면서 백신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점이다.

○ 내년 2분기에도 충분한 공급 힘들어
정부가 유일하게 구매계약을 체결한 곳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물량과 도입 시기(내년 2, 3월)를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와 아스트라제네카 간 구매계약서에는 공급 일자나 분기가 명시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이뤄진 화상회의에서 박 장관이 아스트라제네카 최고경영진으로부터 ‘내년 2, 3월경 공급할 수 있다’는 구두 약속만 받아놓은 상황이다. 정부는 구매계약서의 법적 강제력과 최고경영진의 약속을 근거로 도입 시기가 확실하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사전 협상이 아닌 최종 계약 때에는 공급 물량과 시기를 명확히 하는 게 일반적이다. 정부도 다른 백신 제조사와의 협상 상황을 설명하며 최종 계약 때 시기를 명시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최종 사용승인이 아직 불투명한 것도 문제다. 최근 효능 논란으로 인해 본국인 영국에서조차 사용승인을 아직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내년 2분기까지도 충분한 양의 백신이 공급되긴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내년 전반기 우리가 기댈 수 있는 게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이지만 아직 3상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았다”며 “내년 가을 전까지 (전체) 4400만 명분을 들여오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도입 이후 실제 접종 과정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이달 중 접종기관과 인력 확보 등 구체적인 접종 실행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백신은 종류가 다양하고 접종·유통 방식이 달라 의료진 사전교육과 도상 훈련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의료진이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수천만 명을 접종할 의료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 K방역 과신, 문책 압박이 실기(失期)로
의료계는 백신을 사전에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는 전문가 지적에도 정부가 신속히 대응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통상 10년이 걸리는 백신 개발기간을 1년으로 압축한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은 18일 브리핑에서 “물건이 없고 안전성·유효성 관련 자료가 없는 상황에서 계약을 체결해야 되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아스트라제네카, 얀센의 임상시험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직후 ‘백신 도입 범부처 태스크포스(TF)’는 협상 파기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내 의사결정권자의 신속한 백신 확보 의지가 부족했고, 이에 따라 실무자들이 소극적으로 움직인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총 1조3000억 원의 예산이 배정된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에서 자칫 안전성, 유효성 문제가 불거졌을 때 책임 추궁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냈던 정 교수는 “장관 등 결정권자의 명확한 시그널이 없었다면 실무자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운 sukim@donga.com·이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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