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진(가명·40·여) 씨는 9월 20일 수원지법 여주지원에서 있었던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떨린다. 막내딸 박소영(가명·18) 양을 성폭행한 조상호(가명·18) 군에 대한 1심 판결이 나온 날이었다. 장기 1년 6개월, 단기 1년 3개월이 선고됐다.
이날 김 씨가 약혼자(41)와 함께 문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조 군 가족 일행이었다. 그들은 “너 이×× 이리 와 봐”라며 “싸가지 없는 ××”라며 욕을 했다. 웃통 단추를 풀고는 “한번 쳐 보라”며 들이대기도 했다. 보다 못한 시민들이 “당신들이 인간이냐”며 소리를 지르자 가해자 일행이 사라졌다. 김 씨는 화단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현행법상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도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처벌할 순 없다. 이 때문에 가해자 측은 집요하게 합의를 요구했다. 김 씨가 거절하자 그들은 판결 후에 욕을 퍼부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 군은 여자친구였던 박 양을 불러내 성폭행했다. 2010년 6월이었다. 얼마 후엔 이별을 통보했다. 자신의 사생활이 문란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박 양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김 씨는 딸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3개월 뒤에야 알았다.
조 군은 혐의를 부인했다. 가해자 가족도 “우리 애는 거짓말할 애가 아니다. 더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결국 경찰에 고소했다. 조 군은 “지어낸 얘기다. 소설을 쓴다”고 주장했다. 이 진술은 거짓말탐지기를 통해 거짓으로 나왔지만 조 군은 당당했다.
충격을 받은 박 양은 자퇴했다. 한때는 여군 장교나 경찰관이 되겠다던 소녀. 이 일을 겪으며 자살을 두 번 시도했다. 밤에는 잠을 못 자기 일쑤였다. 조 군이 반성문을 제출한 건 8월이었다.
김 씨는 학교 행정실에서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며 수년째 딸 둘을 혼자 키웠다. 공교롭게도 그의 전셋집 주인은 조 군의 아버지와 친구 사이. 조 군 아버지는 김 씨에게 전화를 걸어 “줄 게 있다”고 말했다. 태도가 괘씸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가해자 아버지는 외삼촌과 함께 두 번이나 학교로 찾아왔다. “남의 자식 망쳐봤자 뭐 하겠느냐. 당신들도 조사받으러 왔다 갔다 하면 상처받지 않느냐. 금전적으로든 뭐든 합의를 해 달라….”
이후 학교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 혼자 살다가 불륜을 저질러서 누가 따지러 왔다, 빚을 져서 빚쟁이가 찾아온다…. 동료들은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김 씨는 딸에게 피해가 갈까 봐 대답할 수 없었다.
가해자 가족은 합의를 해 달라며 집으로도 수차례 찾아왔다. 김 씨는 어느 날 문을 열어 놓은 채 청소를 하다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엄마, 모르는 사람 왔어”라는 딸의 말에 나가 보니 가해자 아버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날 박 양은 벌벌 떨었다.
얼마 후 김 씨의 약혼자에게도 연락이 왔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와서 받으니 “동네 형인데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박 양의 새 아빠가 될 약혼자는 직감적으로 “우리 딸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는 응답이 되돌아왔다. “할 말도, 만날 일도 없다”고 했지만 전화가 계속 왔다.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전화를 건 사람들은 김 씨가 사는 건물의 1층 식당에서 가해자 가족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밤늦게까지 11차례나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얘기 좀 하자고. 김 씨의 문 앞에 서 있기도 했다.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하자 이들은 돌아갔다.
이러는 동안에 사범대 출신인 조 군의 누나는 교사 10여 명으로부터, 친척들은 주민 100여 명으로부터 가해자를 위한 탄원서를 받아 법원에 제출했다.
김 씨는 시도 때도 없이 가해자 측이 학교와 집으로 찾아오면서부터 동네에서 누굴 마주치는 게 무서워졌다. 상처가 치유되기까지 얼마나 또 시일이 걸릴까. 그의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청소년이 성범죄 피해를 당해도 합의해 주면 없던 일이 되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합의 문제로 피해자 가족들은 또다시 가해자 측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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