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날린 ‘박연차의 저주’… 마지막 법정에 이광재가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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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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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게이트 내일 7명 대법 판결… 4대 포인트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인사 7명에 대한 대법원 상고심 선고가 27일 내려진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광재 강원도지사, 한나라당 박진, 민주당 서갑원 국회의원,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과 박 전 회장 본인 등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2009년 기소한 21명 가운데 13명(12명 유죄, 1명 무죄)은 이미 확정 판결이 난 상태여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박연차 게이트’의 사법 절차가 2년여 만에 종지부를 찍는 셈이다.》

[1] 이광재 정치생명 ‘모 아니면 도’

‘The Winner takes it all(승자가 모든 것을 얻는다).’

강원도의 고위 관계자는 이광재 강원도지사에 대한 27일 대법원 선고 공판을 이런 비유로 전망했다. 결과에 따라 강원 도정은 물론 이 지사 개인의 정치적 인생도 180도 달라지기 때문.

만약 이 지사가 무죄 선고를 받으면 검찰의 기소를 ‘전 정권에 대한 탄압’으로 포장해 상당한 정치적 입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는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10년 뒤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또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등 강원도 현안 추진에도 강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이 지사는 줄곧 “무죄를 확신한다”며 재판 결과에 자신감을 비쳐 왔다.

하지만 형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지난해 9월 2일 직무에 복귀한 지 147일 만에 지사직 상실은 물론 향후 10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된다. 사실상 정치 인생 자체를 마감하는 셈이다. 민선 5기 강원도정은 지난해 7월 이후 두 번째 권한 대행 체제로 운영되게 된다.

올해 7월 6일 개최지가 결정되는 2018 겨울올림픽 평창 유치전도 지장받을 수 있다. 다음 달 14∼20일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실사가 예정돼 있다. 평창 스노보드 세계대회를 비롯해 2∼4월 국내외에서 열리는 각종 겨울 스포츠 대회에서도 강원도는 수장 없이 유치 활동을 펼쳐야 한다. 또 숙원사업인 춘천∼속초 고속철, 동해안경제자유구역 지정도 탄력을 잃을 수 있다. 대법원이 혐의사실 가운데 일부라도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할 경우 수개월 동안 지사직을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한부 도정’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에 이 지사나 지역 관가 모두 부담이다.
[2] 4·27 재보선 전국단위로 커지나

올해는 전국단위의 선거가 없는 해다. 집권 4년차를 맞는 여권으로서는 안정적으로 국정을 추진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4월 27일 재·보선 지역도 현재까지 확정된 곳은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의원직 사퇴로 공석이 된 경기 성남 분당을과 박 전 회장에게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이 난 최철국 전 민주당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경남 김해을 두 곳뿐이다.

그러나 27일 이 지사와 서 의원(전남 순천)에 대해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면 당장 4월 재·보선의 판이 커진다. 이 지사는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 서 의원은 벌금 1200만 원을 선고 받은 상태다. 벌금 1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공직을 상실하도록 한 정치자금법 규정에 따라 두 사람은 각각 도지사직과 의원직을 잃게 된다.

그럴 경우 광역단체장 선거 1곳에다 국회의원 지역구 3곳에서 선거가 치러진다.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수도권 영남 호남 등 거점지역별로 1곳씩 치러지게 돼 각 정당의 중앙당이 개입할 게 뻔하고 선거전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한다.

이 밖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각각 선고받은 한나라당 공성진(서울 강남을) 현경병(서울 노원갑) 의원도 대법원에 계류 중이어서 3월 31일 전에 확정판결이 나면 재·보선 지역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판이 커진 4월 재·보선이 내년의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차기 대권주자들이 일찌감치 경쟁에 나서는 기폭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이 27일 대법원의 판단을 예의주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3] 前·現대통령 후원자 나란히 옥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인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운명도 27일 결정된다. 박 전 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과 벌금 300억 원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과 벌금 300억 원으로 형량이 낮아졌다.

박 전 회장은 현재 지병 치료를 이유로 법원에서 보석 허가를 받아 경남 김해시의 자택에 머물고 있다. 법률상 명문 규정은 없지만 보석은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만 유효하기 때문에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면 앞서 서울고법이 허가한 보석 결정도 자동으로 효력을 잃는다. 검찰은 법원의 별도 허가 없이 박 전 회장을 재수감할 수 있고, 박 전 회장은 남은 형기를 교도소에서 복역해야 한다. 박 전 회장 처지에서는 추가로 외부에서 치료를 받으려면 검찰에 형 집행정지를 신청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자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오랜 친구인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사진)은 27일 대법원 선고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이 사건 연루자 21명 가운데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채 유일하게 남는 셈이다. 박 전 회장에게서 세무조사 무마 청탁 명목으로 중국돈 15만 위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으로 기소된 천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71억 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와 별도로 천 회장은 임천공업 이수우 대표에게서 47억여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 기소돼 1심 공판이 진행 중이다. 박 전 회장이 27일 대법원 확정 판결로 재수감될 경우 전·현직 대통령의 후원자이자 호형호제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던 두 사람은 함께 옥살이를 하는 신세가 된다.
[4] 박연차 진술 ‘불패신화’ 깨질까

항소심에서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박진 한나라당 의원과 이상철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미 확정 판결이 난 ‘박연차 게이트’ 관련자 13명 가운데 무죄를 받은 사람은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 1명뿐이다. 김 의원은 1인당 정치자금 후원한도 500만 원을 초과해 박 전 회장에게서 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됐는데, 법원은 검찰의 법 적용에 문제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무죄를 선고했다. 박 전 회장 진술의 신빙성이 문제가 된 것은 아니었다.

김 의원을 제외하고 유죄 확정 판결이 난 12명은 모두 박 전 회장의 “돈을 줬다”는 진술이 결정적인 증거가 된 셈이다. 박 전 회장은 수사는 물론이고 재판 과정에서도 뛰어난 기억력을 바탕으로 돈을 준 정황을 상세하게 진술하면서 돈을 받은 이들에게 “안 준 걸 줬다고 하지 않았다”고 윽박질렀다. 이 때문에 박 전 회장에게는 한때 ‘박연차 중수부장’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1, 2심 재판부가 “박 전 회장의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공소사실 전체 또는 일부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박 의원과 이 전 부시장이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아낸다면 박 전 회장 ‘입’의 불패신화는 깨지게 된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춘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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