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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7>방치되는 조손(祖孫)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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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공존을 향해/3부]<7>방치되는 조손(祖孫)가정

동아일보입력 2010-08-31 03:00수정 2010-08-31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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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것 셋 두고 어찌 갈꼬"… 주름 깊은 ‘55만원의 삶’
손자와 손녀 3명의 양육을 도맡아 하고 있는 최성철 씨(가명) 부부는 손주들이 “학원 보내 달라”고 말할 때 가슴이 가장 아프다. 월 소득 55만 원으로 학원은 언감생심이다. 최 씨부부가 3명의 손주 중 막내인 외손녀 희연 양(가명·9·가운데)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청주=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최성철 씨(가명·75) 부부는 충북 청주시에서 손자 손녀 3명과 함께 산다. 아들과 딸이 각각 이혼하면서 맡긴 아이들이다. 70세가 넘어서 세 명의 손자 손녀를 키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월 소득은 정부보조금 42만 원과 익명의 후원자가 보내주는 13만 원을 합쳐 55만 원. 올해 4인 가족 최저생계비 136만3091원의 40% 수준이다.》

최 씨처럼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손자녀로 구성된 가정을 ‘조손(祖孫)가정’이라고 한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는 이런 조손가정이 5만8101가구에 이른다. 가정 구성원이 ‘노인+미성년자’이기 때문에 돈을 버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 힘겹게 산다.

취재팀은 사회복지법인 어린이재단의 소개로 지난달 26일 최 씨 집을 찾아 살아가는 얘기를 들어봤다. 기사 중 고딕글씨는 ‘한국의 객관적 현실’이다.

○ 다섯 식구 월수입 55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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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500.”

장롱 아래 넣어둔 통장을 꺼내 확인해본 잔액이다. 기초수급 1종 대상 가정으로 7월 20일 42만 원의 정부보조금을 받은 지 일주일. 각종 공과금과 휴대전화 요금으로 벌써 절반이 사라졌다. 매달 반복되는 일이다.

다음 달 정부보조금 지급일까지 25일이나 남았다. 관할 청주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도움으로 결연한 이름 모를 후원자가 매달 초 보내주는 돈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창피하지만 3명의 손자 손녀를 키우려니 어쩔 수 없다.

충북 청주시의 3층짜리 낡은 다세대주택 건물의 반지하 집. 평소에도 퀴퀴한 냄새가 나지만 요즘같이 비가 계속 오면 더 눅눅하다. 햇빛이 들지 않아 낮에도 형광등을 켜놓는다. 50m²(약 15평)가 채 안 되지만 그래도 소중한 공간이다.

먼 친척이 딱한 사정을 듣고 방을 공짜로 빌려준 덕분에 방세는 들어가지 않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하지만 정부보조금과 후원금을 합친 55만 원으로 쑥쑥 크는 세 피붙이와 한 달을 버티는 일은 고통이다. 올해 중3, 중1인 친손자와 손녀, 그리고 초등 2학년인 외손녀. 아이들에게 새 옷을 사준 지가 언제인지 물어봤다. 최 씨는 기억하지 못했다.

2007년 여성가족부가 조손가정 600가구를 조사한 결과 월평균소득은 평균 70만 원에 불과했다. 아동빈곤율은 48.5%로 평균(8.8%)의 5배 수준이다. 친부모가 아이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경우는 37%에 그쳤다. 조손가정의 조부모가 기초생활수급자인 경우 생계비를, 만 65세 이상일 때 기초노령연금을 지원받는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별로 차등해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따라서 손자녀를 양육한다고 해도 지원금을 더 받는 것은 아니다.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는 아직 없는 것이다.

○ 가족 해체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요즘은 ‘좋았던 옛날’이 자꾸 떠오른다. 1993년까지만 해도 마당이 딸린 2층 양옥에서 살 정도로 살림이 괜찮았다. 1남 1녀의 자식들도 문제 없이 컸고, 각자 배필을 만나 결혼했다. 그때가 가장 좋았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7년 사업을 하는 친구의 약속을 믿고 보증을 섰다가 집을 날렸다. 빈털터리로 거리에 나앉았다.

설상가상 서울에서 덤프트럭 운송업을 하던 아들이 외환위기로 부도를 냈다. 그래도 버텨보겠다던 아들이 2년 뒤 갑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왔다. 반가움도 잠시. 아들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이 나왔다. “부도 후 아내와 다툼이 많았는데 결국 이혼해서 아이들을 혼자 키울 수 없다. 아이들을 대신 맡아 달라”고 했다. 일곱 살과 네 살 난 아이들을 떼놓고 아들은 이튿날 새벽 떠났다.

불행은 계속됐다. 휴대전화 유통업을 하던 딸 내외도 사업 실패와 잦은 불화 끝에 2006년 이혼했다. 딸은 당시 다섯 살이던 외손녀 희연(가명)이를 데려다 놓았다. 세 아이를 맡아 기르게 된 것이다.

국내 조손가정은 1995년 3만5194가구에서 2005년 5만8101가구로 늘었다. 10년 동안 65.1% 증가한 것. 조손가정은 이혼이 증가하면서, 또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등을 겪으면서 크게 늘고 있다. 서민층의 경우 이혼까지 하고 나면 각자 제 앞가림하기에도 힘겹다. 이 때문에 아이들을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맡기기 일쑤다.

전체 가구 중 조손가구 비중은 도시가 0.3%인 데 비해 농촌은 0.7%다. 조손가정은 주로 농촌에 있다. 도시에 살던 부모가 이혼하면 아이들은 농촌의 조부모에게 맡겨지는 구조다. 충남 공주시의 농촌지역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는 전교생 77명 중 15명이 조손가정 아이들이다.

○ 방치되는 교육…빈곤 대물림

요즘은 손자 손녀 교육문제가 가장 신경 쓰인다. 남들은 부모가 등을 떠밀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려고 한다지만 이 집은 반대다. 올해 중학교에 들어간 손자가 요즘 들어 “국영수 학원에 보내 달라”고 했다. 못 들은 척한다. 남들처럼 학원에 보내주고 싶지만 정부 보조로 근근이 사는 처지에 꿈도 못 꾸고 있다.

학원비 마련을 위해 일자리를 구하려고 해봤지만 나이가 많아 쉽지 않았다. 최 씨 부인이 가끔 가사도우미 일을 하며 1만, 2만 원씩 일당을 받기도 했지만 경기가 안 좋은지 이 일도 끊겼다.

그래도 손자 손녀가 고맙고 대견스럽다. 생일날에도 찾아오지 않는 부모, 1년이 가도 전화 한 통 없는 부모지만 한창 어리광 부릴 나이인 희연이도 좀처럼 원망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먹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욕심쟁이 희연이는 “내 방, 내 책상에서 공부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아이들이 기죽지 않을까 항상 걱정이다.

조손가정이 겪는 문제 중의 하나는 교육이다. 농촌지역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한 교사는 “우리 반에도 조손가정 아이가 5명인데, 읽고 쓰기와 수리 능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며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소극적이라 미래에 대한 꿈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 부모들이 학교로 찾아오거나 전화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조손가정은 조부모의 소득이 적어 애들을 학원이나 독서실에 보내기 어렵다. 2006년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농촌지역 조손가정의 경우 53%가 학교 수업이 끝난 뒤 친구들과 놀거나 가사를 돕고 있으며 학원이나 독서실을 다니는 비율은 29%로 나타났다.

조부모의 학력이 낮은 것도 아이들 훈육에 걸림돌이다. 조부모의 학력은 국졸 이하가 79.5%, 중졸은 13.8%, 고졸과 대졸 이상은 각각 5.2%와 1.5%에 불과하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조손가정 아이들의 교육 기회 결핍은 학업 성취를 떨어뜨리고 성인이 돼서도 직업 지위가 떨어져 빈곤의 대물림이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 맞춤형 복지정책이 필요

“고혈압, 당뇨, 관절염….”

최 씨와 아내는 병을 몸에 달고 산다. 하지만 제대로 치료받겠다는 생각은 접은 지 오래다. 기초수급대상자라 기본적인 약을 사는 데에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완치하려면 제대로 치료받아야 하는데 엄두도 못 낸다. 어차피 늙은 몸, 이대로 살다가 조용히 세상을 떠났으면 하는 게 소원이다.

그렇지만 아이들 병원비는 걱정이다. 큰 손녀 어금니가 썩어 얼마 전 치과에 갔다. 충치 부분을 긁어내고 씌우는 데 28만 원이 든다고 했다.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이 넘는다. 의사 선생님에게 사정해서 2만 원을 간신히 깎았다. 그래봐야 26만 원. 아이가 커갈수록 돈 들어갈 일이 자주 생긴다. 그저 건강하게 자라길 빌 뿐이다.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것이다. 그렇다면 손자 손녀는 누가 돌볼 것인지. 이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해 온다.

조손가정의 조부모는 다양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손자녀 양육 부담으로 질병 관리는 뒷전이다. 2006년 여성부 조사에 따르면 조손가정 조부모의 52.7%가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 중 40.6%는 “심하게 아플 때만 어쩔 수 없이 병원을 찾는다”고 응답했다.

최승남 여성부 사무관은 “조손가정을 대상으로 한 복지제도가 없다는 것은 복지에 중대한 사각이 있다는 뜻”이라며 “별도의 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현재 부모가 이혼해도 친권은 이혼한 부모에게 있다. 이봉주 교수는 “조부모가 양육을 해야 한다면 친권을 실제 양육하는 조부모에게 부여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손가정을 지원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부모의 책임을 강제해야 하는 방향으로 법제도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서영 어린이재단 대외협력실 팀장은 “미국은 1975년부터 ‘아동강제부양법’을 시행해 이혼한 경우에도 부모의 양육비 부담을 강제하고 있다”며 “조손가정 아이들이 성인이 됐을 때 자립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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