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에게 ‘입국비’ 걷는 악습 그대로…대학병원 여전한 직장내 괴롭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5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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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의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 전공의(레지던트) A 씨는 지난달 26일 수술실에서 지도 전문의(지도 교수)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지도 교수는 수술 도구로 A 씨의 손등을 내려치기도 했다. 자신의 수술을 돕는 A 씨의 수술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지도 교수는 마취 상태의 환자가 누워 있는 수술대 옆에서 수시로 욕을 퍼부었다. 지도 교수는 A 씨를 포함한 전공의들이 수술실에서 실수를 할 때마다 3만~5만 원씩 벌금을 걷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걷은 돈을 지도교수가 어디에 썼는지를 전공의들은 알지 못한다. 직장 내 괴롭힘을 금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직장 괴롭힘 금지법)이 16일로 시행 한달을 맞았다.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 역시 16일로 시행 한 달째가 됐다. 이 법에 따라 지도 전문의가 전공의를 폭행하면 3년의 범위 안에서 업무를 정지시킬 수 있는 길도 열렸다. 하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전공의에 대한 폭행과 폭언이 여전하다.

이달 4일 경기도의 한 대학병원. 병실을 회진하던 정형외과 지도 교수는 전공의 B 씨의 머리를 때렸다. “야 이 XX야 보고 똑바로 안 해”라는 막말도 했다. B 씨는 지도 교수에게 정강이를 걷어차인 적도 종종 있다. B 씨가 환자의 상태를 지도 교수에게 보고할 때는 군대식 말투를 써야 했다고 한다. B 씨는 “지도 교수의 폭행과 폭언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며 “하지만 다들 그냥 참고 버티자는 분위기”라고 했다.

경남 지역 한 대학병원의 전공의 C 씨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등이 시행됐지만 지도 교수가 수술 보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하면서 ‘나가라’고 하는 일은 지금도 여전하다”고 말했다.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장(30)은 “(전공의 교육은) 도제식 교육이어서 배우는 쪽이 가르치는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가 없다”며 “이제는 지도 교수들이 먼저 폭행과 폭언을 근절하겠다고 외쳐야할 때”라고 말했다.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4년차 전공의들이나 지도 교수가 일명 ‘입국비’라는 이름을 붙여 1년차 전공의들한테서 돈을 걷는 악습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는 신경과 400만 원, 피부과 500만 원, 재활의학과 500만 원 등 해당 과 전공의 1명당 내야 할 입국비 액수가 정리된 자료가 나돌기도 했다. 한 대학병원 교수 C 씨는 “4년차 전공의들은 자기들도 예전에 입국비를 냈으니까 돌려받는 건 당연히 여기는 문화가 남아있다”며 “인기 있는 진료과는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에 (입국비를) 안 내면 전공의 진입을 막기도 해 ‘울며 겨자 먹기’로 낼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대학전공의협의회가 전공의 5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무기명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37%가 ‘근무 중인 진료과에 입국비 문화가 있다’고 답했다. 입국비 액수는 100만 원 이하가 33%, 100만~1000만 원 47%, 1000만~5000만 원 9%였다. 입국비 요구 주체에 대해서는 ‘상급 전공의’라는 응답이 66%, 지도 교수가 28%였다.

윤다빈 기자 empty@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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