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취업박람회 찾은 중장년들 “일자리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막막”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2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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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 의왕시청에서 열린 ‘청년 취업박람회’를 찾은 중년 구직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의왕시가 청년을 위해 준비한 취업박람회였지만 행사장을 찾은 인원의 60% 이상이 직장을 잃은 4050 중년들이었다. 의왕=송혜미 기자 1am@donga.com
11일 경기 의왕시청에서 열린 ‘청년 취업박람회’를 찾은 중년 구직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의왕시가 청년을 위해 준비한 취업박람회였지만 행사장을 찾은 인원의 60% 이상이 직장을 잃은 4050 중년들이었다. 의왕=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청년 취업박람회라고 청년만 오라는 법 있습니까.”

11일 오후 경기 의왕시청에서 열린 ‘청년 취업박람회’를 찾은 박모 씨(52)가 “사정 안 좋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이렇게 말했다. 20년 동안 건설현장에서 시멘트를 바르는 기술공으로 일한 박 씨는 최근 건설경기 침체로 두 달 가까이 일감이 끊겼다고 했다. 박 씨는 “이렇게 오래 쉬기는 처음이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나왔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박 씨는 물류회사와 테마파크회사의 면접을 본 뒤 박람회장을 나섰다.

● 청년 취업박람회에 중장년 대거 몰려

이날 취업박람회는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 청년들을 위해 의왕시가 주최한 행사다. 박람회장에는 ‘청년정책 홍보관’, ‘VR체험관’, ‘취업타로’, 등 청년 구직자를 겨냥한 이색 부스가 대거 마련됐고, 청년 채용을 원하는 10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그러나 ‘청년’이란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이날 행사장엔 중장년층이 많이 몰렸다. 청년들이 종종 눈에 띄긴 했지만, 의왕시가 집계한 결과 행사장을 찾은 구직자 350여 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4050 세대’였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중장년 실직자들이 청년 타깃의 취업박람회까지 찾아온 것이다.

통계청이 12일 내놓은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25만9000명 증가한 2732만2000명이었다. 취업자 수 증가폭은 2월과 3월 연속 20만 명대를 넘어서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만 15~64세 기준 고용률은 67.1%로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9년 5월 이후 가장 높았다.

하지만 지난달 실업자 수는 114만5000명으로 월별통계가 작성된 2000년 5월 이후 가장 많았다. 특히 40대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7만7000명 감소하고 고용률도 1년 전보다 0.7%포인트 떨어진 78.5%였다. 30대 취업자 수도 1년 전보다 7만3000명 감소하고 고용률은 1년 전과 같은 76%였다.

이날 박람회를 찾은 40, 50대들은 하나같이 “한창 일할 나이에 잘려 갈 곳이 없다”고 호소했다. 이모 씨(40) 두 달 전 7년간 정규직으로 일한 제조업체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여기저기서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쉽지 않았고, 마침 취업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회사에서 쫓겨난 40대는 장사의 ‘장’자도 몰라도 자영업으로 내몰린다”며 “정부가 청년 일자리에만 힘을 쏟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면접을 보기 위해 플라스틱 제조업체 부스 앞에서 기다리던 이 씨는 초조한 듯 손에 묻은 땀을 연신 바지에 문질러 닦아냈다.

백화점 마트에서 계약직으로 14년 간 일하다 넉 달 전 실직한 이모 씨(40)는 이날 열심히 부스를 돌아다녔지만, 면접 볼 곳을 찾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이 씨는 “청년층 대상 행사인 건 알았지만, 혹시 일이 있을까봐 와봤다”며 “도대체 어디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한 60대 구직자는 이력서를 쓰던 도중 “60대를 채용하는 기업은 없다”는 말에 행사장을 나가기도 했다.

● 통계는 개선된다지만 체감은 바닥

청년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2년간 정규직으로 일한 중소기업에서 최근 구조조정을 당한 김모 씨(28)는 이날 버스와 지하철을 한 시간 반이나 타고 박람회장을 찾았다. 김 씨는 “(박람회에 참여한) 업체 수가 적어서 실망스럽다”면서도 “어디든 취직해서 얼른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 권모 씨(31) 역시 상황이 급하긴 마찬가지였다. ICT 스타트업 정규직 등의 경력이 있지만 올해 상반기 공채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에서 전부 탈락했다. 권 씨는 “일을 해야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눈을 낮춰서라도 일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통계로는 호전된 듯 보이는 청년층 고용시장 역시 임시직 위주로 유입되면서 청년 체감실업률은 상승세를 이어갔다. 5월 15~29세 고용률은 43.6%로 1년 전보다 0.9%포인트 높아졌지만 상당수가 음식점업으로 유입됐다. 지난달 주당 근로시간이 17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는 181만4000명으로 5월 기준으로 37년 만에 가장 많았다. 통계청은 “일자리를 갖고 있어도 추가 취업을 희망하거나 아예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의왕=송혜미 기자 1am@donga.com
세종=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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