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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있게한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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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신치용 프로배구 삼성화재 감독

    “저를 믿습니까.” 당돌한 질문이었다. 일개 선수가 감독에게 자기를 믿느냐고 묻다니. “믿어.” 선생님이 대답하셨다.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1983년 11월 어느 날. 일과를 마친 서울 중구 신당동 한국전력 배구단 숙소는 조용했다. 오후 9시가 넘었을까.

    • 2012-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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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근형 연극연출가

    삶을 돌아보면 성공과 실패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만으로도 그저 충분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다.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람, 내가 가장 닮은 사람, 바로 나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집에 가끔 들어오셨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바깥에서

    • 2012-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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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문애란 한국컴패션 후원자 겸 자원봉사자·웰콤 고문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분의 사랑과 격려, 보살핌 속에서 마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누군가의 손에 끌려 한 발짝 한 발짝 걸을 수 있었듯이 그렇게 지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고백하곤 한다. “내가 한 것은 없습니다. 그분들 덕입니다.” 도움을 준 수많은

    •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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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재인 성신여대 명예교수

    보통의 기준에 따르면 나는 여행을 좀 많이 한 셈이다. 유럽을 사랑해서 유럽에서 사온 책자와 배지를 보면 금방 흥분한다. 여행은 내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누구에게나 “내가 부자다”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윌리엄 워즈워스가 시 ‘수선화’에서 수선화가 준

    • 20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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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영일 국립중앙도서관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 소장

    나는 ‘목포맹학교’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 서울맹학교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내내 특수학교를 다녔다. 학교생활은 대체로 만족스러웠으나 집을 떠나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글픔을 느낀 적도 자주 있었다. 맹학교를 다니면서 ‘보는 친구’들과 함께 같

    • 201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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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유종호 문학평론가·전 연세대 특임교수

    전쟁이 터지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다. 10리가량 떨어진 산골 마을을 피란처로 정했다. 마을로 가는 도중 맞은편에서 지게를 진 아저씨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나이가 많이 들어보였다. 그는 우리 삼형제를 보더니 몸을 낮추고 한 개씩만 집어가라고 하셨다

    • 201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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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김주영 소설가

    고향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어린 시절의 나는 유목민이었다. 담도 울타리도 없는 집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하루 이틀도 아닌 몇십 년을 노출의 비애를 맛보며 그렇게 마구잡이식으로 살았다. 정신문화의 수도로 자처하는 그 완고한 고장

    • 201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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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엄홍길 산악인

    1988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1995년까지 히말라야 8000m 이상 고봉 6개를 올랐다. 그러자 인생의 목표가 명확해졌다. 무모한 것처럼 보였지만 대외적으로 “14좌 완등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14좌 완등이 어디 쉬운가. 봉우리 한 개에 도전할 때마다 엄청난 준비

    • 201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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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배병우 사진작가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은, 바꿔 말하면 ‘너의 인생은 누구에게 부채를 졌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생선 장수 아버지는 조건 없는 후원자였다. 아버지가 활어 수출선에 부탁한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왕자표 대신 사쿠라, 붐도로, 홀바인 상표의 크레용과 물감,

    • 201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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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미도 외화번역가·작가

    “Live your life.” 영화 ‘예스맨(Yes Man)’의 대사입니다. 무기력하게, 따분하게, 늘 부정적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단축번호 1번 친구가 벼르다가 던진 말입니다. 약효가 꽤나 부실해 보이는 충고인데도 주인공은 180도 달라집니다. 왜일까요? 직역하면 ‘네 삶을 살

    • 2012-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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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육완순 한국현대무용진흥회 이사장

    한 사람의 생을 결정짓는 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이 전 생애의 가치를 결정짓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훌륭한 스승과의 만남은 정신과의 만남이다. 돌이켜보면 내게 스승인 마사 그레

    • 201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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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강병화 고려대 교수,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 운영책임자

    “식물은 일요일이 없다”던 프란츠 뮐러 교수님이 계셨다. 그리고 내 모교 고려대가 있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인생을 되돌아보니 ‘잡초박사’로 불리기까지 혜택만 받고 살아 온 65년이었다. 고려대 농대를 졸업하고 농촌진흥청에서 잡초 방제를 연구하다 1979년 모교와

    • 2011-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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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기웅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열화당 발행인

    ‘열화당(悅話堂)’은 나의 아호다. 매월당이나 사임당의 경우와 같다. 서울에서 떨어진 강릉에 선교장(船橋莊)을 일으키고 경영하고자 했던 선대의 뜻을 받들어, 나의 5대조이신 오은(鰲隱) 이후(李후) 할아버지는 1815년 열화당이라는 아름다운 건물을 지으셨다. 이 당호

    • 201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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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재갑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

    먹고사는 게 걱정이던 시절이 있었다. 10대를 보낸 1960년대만 해도 너나없이 그렇게 어려웠다. 아버지는 항상 “배곯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5형제 중 맏이였던 재길 형이 의대에 진학했다. 사람 고치는 기술이 최고라는 아버지 바람대로였다. 나보

    • 201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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