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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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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4〉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4〉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공단 지대를 경유해 온 시내버스 천장에서 눈시울빛 전등이 켜지는 저녁이다/손바닥마다 어스름으로 물든 사람들의 고개가 비스듬해지는 저녁이다 다시,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는 저녁이다 저녁에 듣는 누가 아프다는 이야기는/착하게 살기에는 너무 피…

    • 20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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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 달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3〉

    풍경 달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3〉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정호승(1950∼ )바람은 서정시인들의 오랜 친구다. 보이지도 않고 잡을 수도 없는 그것을 시인들은 몹시나 좋아한다. 그 까…

    • 202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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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2〉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2〉

    죽은 꽃나무를 뽑아낸 일뿐인데 그리고 꽃나무가 있던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목이 말라 사이다를 한 컵 마시고는 다시 그 자리를 바라본 일뿐인데 잘못 꾼 꿈이 있었나? 인젠 꽃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 잔상들 지나가던 바람이 잠시 손금을 펴보던 모습이었을 뿐인데 인제는 다시 안 올…

    • 202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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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기동물 보호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1〉

    유기동물 보호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1〉

    버려진 개 한 마리 데려다 놓고 얼마 전 떠나 버린 사람의 시집을 펼쳐 읽는다 슬픔을 더 슬프게 하는 건 시만 한 게 없지 개 한 마리 데려왔을 뿐인데 칠십 마리의 개가 일제히 짖는다 흰 슬픔 검은 슬픔 누런 슬픔 큰 슬픔 작은 슬픔 슬픔이 슬픔을 알아본다 갈피를 꽂아 두었던 시의 가…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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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와 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0〉

    죄와 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400〉

    우리 절 밭두렁 벼락 맞은 대추나무 무슨 죄가 많았을까 벼락 맞을 놈은 난데 오늘도 이런 생각에 하루해를 보냅니다 ―조오현(1932∼2018)5월은 좋은 달이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으며 햇살은 화창하고 꽃들은 만발한다. 돈을 낸 것도 아니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날씨는 기꺼이 …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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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9〉

    살구[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9〉

    살구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한다 손차양, 한 사람의 미간을 위해 다른 한 사람이 만들어준 세상에서 가장 깊고 가장 넓은 지붕 그 지붕 아래서 한 사람은 한낮 눈부신 햇빛을 지나가는 새의 부리가 전하는 말은 부고처럼 갑자기 들이치는 빗발을 오래 바라보며 견뎠을까, 견딤을 견뎠을까 한 …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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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업어주는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8〉

    업어주는 사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8〉

    오래전에 냇물을 업어 건네주는 직업이 있었다고 한다 / 물가를 서성이다 냇물 앞에서 난감해하는 이에게 넓은 등을 내주는 /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중략) 병든 사람을 집에까지 업어다주고 그날 받은 삯을 / 모두 내려놓고 온 적도 있다고 한다 / 세상 끝까지 업어다주고 싶은 사…

    •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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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7〉

    여름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7〉

    하늘의 별들이 죄다 잠을 깬 밤. 별인 양 땅 위에선 반딧불들이 술래잡기를 했다. 멍석 핀 마당에 앉아 동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빗자루를 둘러메고 반딧불을 쫓아가면, 반딧불은 언제나 훨훨 날아 외양간 지붕을 넘어가곤 하였다. 반딧불이 사라진 외양간 지붕엔 하얀 박꽃이…

    •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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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6〉

    서시[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6〉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 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 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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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란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5〉

    나란히[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5〉

    소반 위에 갓 씻은 젓가락 한 켤레 나란히 올려두고 기도의 말을 고를 때 저녁의 허기와 저녁의 안식이 나란하고 마주 모은 두 손이 나란하다 나란해서 서로 돕는다 식은 소망을 데우려 눈감을 때 기도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반쪽 달이 창을 넘어 입술 나란히 귓바퀴를 대어올 때 영…

    •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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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천사를 낳았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4〉

    내가 천사를 낳았다[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4〉

    내가 천사를 낳았다 배고프다고 울고 잠이 온다고 울고 안아달라고 우는 천사, 배부르면 행복하고 안아주면 그게 행복의 다인 천사, 두 눈을 말똥말똥 아무 생각 하지 않는 천사 누워 있는 이불이 새것이건 아니건 이불을 펼쳐놓은 방이 넓건 좁건 방을 담을 집이 크건 작건 아무것도 탓할 줄…

    • 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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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뻐꾸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3〉

    뻐꾸기[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3〉

    뻐꾸기 울음을 걸어서내 어린 날로 간다.발가숭이에 까까머리맨발에 아장걸음아직 하나도 늙지 않은내 어린 날의 그 울음 속뻐꾸기를 따라서.갈앉은 녹음유황마알갛게 뜬 아카시아분향하얀 길 위에 깔린그날의 내 앙앙울음울음 끝 추스림같은 아카시아향의긴긴 꼬리를 밟아서.(후략)―박경용(1940∼)

    •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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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릉, 묘, 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2〉

    릉, 묘, 총[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2〉

    남자 둘이 의릉 보러 가서 의릉은 못 보고 꽃나무 한 그루 보고 왔다 넋이 나가서 나무엔 학명이 있을 테지만 서정은 그런 것으로 쓰이지 않는다 삶이라면 모를까 연우 아빠가 연우 때문에 식물도감을 샀다 웃고 있는 젊은 아빠가 아장아장 어린 아들을 그늘에 앉히고 나무의 이…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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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게 부는 바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1〉

    낮게 부는 바람[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1〉

    그건 정말이지한 사람이 한 사람을 잠들도록한 사람이 아무도 모르게 잠들 수 있도록이마를 쓰다듬어 주는 일이야늦은 여름 아침에 누워새벽을 홀딱 적신 뒤에야스르르 잠들고자 할 때 너의 소원대로 스르르잠들 수 있게 되는 날에는저 먼 곳에서너는 잠깐 잊어버리고자기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

    • 202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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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0〉

    사모곡[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90〉

    어머니는 죽어서 달이 되었다바람에게도 가지 않고길 밖에도 가지 않고,어머니는 달이 되어나와 함께 긴 밤을 멀리 걸었다.―감태준(1947∼ )

    • 2023-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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