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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시의 눈

이영광의 시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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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이른 아침

    [이영광의 시의 눈]이른 아침

    이른 아침 ―박순원(1964∼ ) 나는 아직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는데 이른 아침 아내가 배춧국을 끓인다 배추는 이른 아침부터 불려 나와 끓는 물속에서 몸을 데치고 있다 배추는 무슨 죄인가 배추는 술 담배도 안 하고 정직하게 자라났을 뿐인데 배추에 눈망울이 있었다면 아내가 쉽게 배춧…

    •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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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왼손잡이

    [이영광의 시의 눈]왼손잡이

    왼손잡이 ―김광규(1941∼)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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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봄밤

    [이영광의 시의 눈]봄밤

    봄밤 ―김수영(1921∼1968)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

    • 2015-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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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바짝 붙어서다

    [이영광의 시의 눈]바짝 붙어서다

    바짝 붙어서다 ―김사인(1956∼) 굽은 허리가 신문지를 모으고 빈 상자를 접어 묶는다 몸뻬는 졸아든 팔순을 담기에 많이 헐겁다 승용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오자 바짝 벽에 붙어 선다 유일한 혈육인 양 작은 밀차를 꼭 잡고 저 고독한 바짝 붙어서기 더러운 시멘트벽에 거미처럼 수조…

    • 201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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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소금창고

    [이영광의 시의 눈]소금창고

    소금창고 ― 이문재(1959∼) 염전이 있던 곳 나는 마흔 살 늦가을 평상에 앉아 바다로 가는 길의 끝에다 지그시 힘을 준다 시린 바람이 옛날 노래가 적힌 악보를 넘기고 있다 바다로 가는 길 따라가던 갈대 마른 꽃들 역광을 받아 한 번 더 피어 있다 눈부시다 소금창고가 있던 곳 오후…

    • 2015-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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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빈 잔

    [이영광의 시의 눈]빈 잔

    빈 잔 ―김완하(1958∼ ) 정선생 모친 장례식장에서 박선생 소개로 만난 사람 엊그제 연로한 부친 묫자리 보러 가서 좋은 터 있기에 자기 것도 예약해 두었다며 그때 바로 옆자리 예약하는 자기 또래의 사내와도 인사 나누었다며 나중에 묘지 이웃으로 만날 사람이기에 굳게 악수도 나…

    •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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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이영광의 시의 눈]내리는 눈발 속에서는

    내리는 눈발 속에서는―서정주(1915∼2000)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 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괜찬타, ……

    •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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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소금인형

    [이영광의 시의 눈]소금인형

    소금인형 ―류시화(1958∼)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재지 않고는 사람살이도 사회 운영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늘 한 길 사람 마음속을 헤아리며 살아간다. …

    •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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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살아남은 자의 슬픔

    [이영광의 시의 눈]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

    • 20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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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광의 시의 눈]귀(歸)

    [이영광의 시의 눈]귀(歸)

    귀(歸) ―안도현(1961∼ ) 어느 날 내가 앉아 있는 의자에서 나뭇잎이 돋아나고 금세 우리들의 교실은 학교 안에 울창한 참나무 숲을 이루리라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식사 시간이면 옹기그릇은 한 덩이 진흙으로 풀어지고 숟가락은 밥과 그릇을 버리고 출렁이는 광맥 속으로 되돌아가리라 보…

    •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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