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들은 주야장천 밀크티를 마신다. 출근해서 한 잔, 점심 먹기 전에 또 한 잔, 잠자기 직전까지 무슨 기록이라도 경신하겠다는 듯 계속 밀크티를 마셔 댔다. 아닌 게 아니라 베이커 스트리트 221B에 사는 셜록 홈스도, 조니 뎁처럼 섹시한 해적들이 판치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도, …
고기 굽는 난이도로만 치면 삼겹살은 하수고 양념돼지갈비는 상수다. 삼겹살은 덮어놓고 굽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양념돼지갈비는 간장 양념 때문에 불길이 스치기만 해도 까맣게 그을리기 일쑤다. 그럼 어김없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이모부터 찾는다. “이모, 여기 가위 좀 주세요.” …
내가 다녔던 요리학교 탕트 마리는 런던 남쪽 서리 주의 워킹이라는 소도시에 있다. 아침저녁으로 새가 지저귀던 그곳에서 내가 세 들어 살던 집 주인 로베르토도 새가 아침저녁으로 울어대듯 날이면 날마다 피자를 먹어댔다. 나폴리가 고향인 로베르토를 처음 만난 날, 그가 나에게 했던 말은…
“버터는 아무리 많이 써도 지나치지 않아.”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줄리가 프라이팬을 집어 들며 하는 말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은 있어도 ‘너무 많은’ 월급이란 없다. 마찬가지로 ‘버터를 적게 썼네’라고 할 수는 있어도 ‘버터를 너무 많이 썼어’라고 할 수는 없다. 버…
인도가 식민지였던 시절 영국에 소개된 커리는 이제 당당한 영국 음식이다. 한국의 짜장면 같다고 할까? 커리를 빼면 영국 음식은 피시 앤드 칩스, 매시 포테이토에 피시 파이, 미트 파이 같은 ‘감자와 아이들’밖에 안 남는다. 게다가 영국에 인도 사람이 좀 많은가? 그들도 먹고살 주식이 …
영국 살 때 내 동거인이었던 알베르토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파스타 마니아였다. 그의 주식은 달걀 파스타였다. 그 흔한 마늘, 토마토 같은 부속물은 전혀 쓰지 않았다. 레시피랄 게 아예 없었다. 삶은 면에 달걀노른자를 버무려 소금과 후추를 뿌리기만 했다. “너네 고향에서도 이렇게 해먹…
높은 첨탑 어딘가에는 저주에 걸린 공주가 갇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쇠를 긁는 괴성을 지르며 어디선가 무시무시한 용이 날아와 성 꼭대기에 앉아 불을 뿜을 것만 같았다. 그곳은 영국의 에든버러. 조앤 롤링이 어떻게 해리포터를 쓰게 됐는지 에든버러 기차역에 내리면 절로 알게 된다. 에든버…
주방에 중용은 없다. 모든 것이 과잉이다. 남성 호르몬, 근무 시간, 욕설, 쓰레기, 엄청난 크기의 솥과 지옥이 연상되는 불꽃, 보통 사람이 보면 ‘억’ 소리가 날 만큼 들어가는 버터, 크림, 소금, 그리고 셰프의 땀. 이 다다익선의 미덕을 실천하는 요리 중 하나가 프랑스식 샌드위치 …
“간만 따로 파나요?” “따로 안 팝니다. 서비스로 나가요.” “간을 너무 좋아해서 그러는데요, 따로 주문할 수 있나요?” “많이 드릴게요.” 주인장의 단호한 대답에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끊었다. 간을 공짜로 많이 먹으면 눈치가 보일 터. 돈 내고 당당하게 많이 먹겠다는…
“도넛을 샴페인이랑 먹으면 어떨까? 레이먼드 카버란 소설가 알지? 그 사람 단편소설 중에 ‘조심(Careful)’이란 게 있는데, 거기에 아침으로 도넛이랑 샴페인을 먹는 사람이 나오더라고.” “야야, 그건 캐비아를 밥에 올려 버터랑 간장에 비벼 먹는 거랑 같은 거지.” 4차원 …
“더즌 오이스터(Dozen Oyster)!” “싯(Shit)!” “하프 더즌 오이스터!” “싯!” 한창 바쁜 저녁시간,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굴을 시키기 시작했다. 어제는 굴이 거의 안 나갔는데. 손님들 속내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오늘은 다들 굴 귀신이라도 씌었나…
“야시장엘 갔는데, 터번 쓴 남자가 갑자기 툭 건드리더라고.” “왜?” “필요한 게 뭐냐는 거야. 총이든, 맥주든 다 구해주겠다면서.” 대학생 시절, 새 학기가 시작되자 배낭여행 다녀온 친구 한 놈이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소싯적부터 진짜 ‘벤처’를 좋아해 사방팔방으로 떠돌던…
내가 커피를 몸에 들이부은 곳은 대개 업장이었다. 바(bar)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일 시켜 먹는 곳은 다 똑같은지 19세기 공장의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았나 보다. 마르크스가 ‘자본’에 목격담을 이렇게 남겼다. “여기서 일하는 소녀들은 하루 평균 16시…
외국에서 살다 보면 별의별 게 다 그립지만 순대가 그렇게 먹고 싶을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떤 순대인고 하니, 남원의 피 맛 나는 순대도, 토실토실 오동통한 아바이 순대도 아닌 동네 분식집에서 파는 싸구려 순대였다. 그 취향이 생긴 사연이 왜 없겠는가. 동네마다 반드시 하나씩은 있는…
그녀가 삶은 달걀로 내 머리를 내리쳤다. 빠악! “왜 이래?” “재밌잖아. 재밌지? 그치?” 나를 바라보는 그녀가 귀엽게 웃었다. 나의 그녀는 취향이 조금 엉뚱했다. 삶은 달걀은 꼭 내 머리를 도구 삼아 깨뜨렸고, 어두일미라며 붕어빵도 꼭 머리부터 먹었다. 그녀와 성격도 외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