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비’라는 인터넷 입시사이트가 인기를 끌고 있다. ‘최상위의 모임’이라는 라틴어에서 명칭을 따왔다는 이 사이트는 ‘설연고’(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와 ‘의치한’(의대 치대 한의대)을 노리는 상위권 수험생들이 정보를 교환하는 곳이다.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지원한 학생들이 인터넷에 접속해 자신의 수능 성적과 내신을 공개하면 입시전문가들도 할 수 없던 일이 놀랍게도 가능해진다. 주요 대학의 합격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베일에 가려 있는 논술과 구술시험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입시생 개개인은 나약한 존재이지만 여럿이 뭉치면 강한 힘을 갖는 집단의 위력이다.
▷‘오르비’의 문화적 의미는 교육당국과 대학에 대한 ‘유쾌한 반란’이다. 교육부가 수능시험 개인 석차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텨도 통계 기법까지 동원해 전체 수험생 가운데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낸다. 명문대들이 커트라인을 아무리 쉬쉬해도 이들은 합격과 불합격 정보를 교환하면서 정확한 점수를 파악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주도하는 정보의 통제와 불확실성을 비웃으면서 말이다.
▷이들은 스스로를 상위 1% 학생들의 커뮤니티라고 설정해 놓고 있다. 해마다 수능을 치르는 학생들이 60만명을 웃도니까 상위 6000명에 해당된다. 선진국들은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을 국가의 미래를 책임질 동량(棟樑)으로 적극 후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의도적으로 수험생의 우열을 구분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고 입시를 진행 중이다. 과연 옳은 방향인가. 그 틈 속에서 대학 관문을 넘으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오르비’들의 분투가 안타깝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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