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이전 위헌]행정수도특별법 위헌 憲裁결정문 全文

  • 입력 2004년 10월 21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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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결정
사건2004헌마554·566(병합)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위헌확인
청구인1. 최상철 외 168인 (청구인 명단은 별 지1과 같음, 2004헌마554)
청구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동 이영모
변호사 이 석 연
2. 정재명 (2004헌마566)
광명시 광명1동 66의 4 세영연립 101호
국선대리인 변호사 김 영 진
보조참가인임만수 외 229인 (보조참가인 명단은 별지2와 같음)
보조참가인들 대리인
법무법인 신촌 담당변호사 김문희, 동 이영모
변호사 이 석 연
주문신행정수도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2004. 1. 16. 법률 제7062호)은 헌법에 위반된다.

이 유

1. 사건의 개요와 심판의 대상

가. 사건의 개요

(1) 2002. 9. 30. 새천년민주당의 대통령후보 노무현은 선거공약으로 ‘수도권 집중 억제와 낙후된 지역경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와 정부부처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는 행정수도 이전계획을 발표하였다. 2002. 12. 19. 실시된 제16대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었고, 2003. 4.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등의구성및운영에관한규정(2003. 4. 17. 대통령령 제17967호)이 제정되고 이에 근거하여 청와대 산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이, 건설교통부 산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지원단이 각 발족되어, 이들이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정책입안, 후보지역 조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였다.

(2) 2003. 10. 정부는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안을 제안하였고, 2003. 12. 29. 국회 본회의는 이 법안을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으로 통과시켰으며(반대 13인, 기권 14인), 2004. 1. 16.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은 법률 제7062호로 공포되었고 부칙 규정에 따라 그로부터 3월 후부터 시행되었다. 위 법은 수도권 집중의 부작용을 시정하고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행정수도를 충청권 지역으로 이전할 것을 규정하면서, 국무총리와 일반인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를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하고, 건설교통부장관이 관리·운용하는 특별회계를 신설하며, 난개발과 부동산투기 등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위 법 시행 후 2004. 5. 21.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으며, 2004. 7. 21. 위 위원회는 제5차 회의에서 주요 국가기관 중 중앙행정기관 18부 4처 3청(73개 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고, 국회 등 헌법기관은 자체적인 이전 요청이 있을 때 국회의 동의를 구하기로 심의·의결하였다. 한편 2004. 8. 11. 위 위원회는 제6차 회의에서 『연기-공주 지역』(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금남면, 동면, 공주시 장기면 일원 약 2,160만평)을 신행정수도 입지로 확정하였다.

(4) 청구인들은 서울특별시 소속 공무원, 서울특별시 의회의 의원, 서울특별시에 주소를 둔 시민 혹은 그 밖의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국민들로서, 위 법률이 헌법개정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수도이전을 추진하는 것이므로 법률 전부가 헌법에 위반되며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납세자의 권리, 청문권, 평등권, 거주이전의 자유, 직업선택의 자유, 공무담임권, 재산권 및 행복추구권을 각 침해받았다는 이유로 같은 해 7. 12.(2004헌마554) 및 같은 달 15.(2004헌마566) 위 법률을 대상으로 그 위헌의 확인을 구하는 헌법소원 심판을 각 청구하였다.

나.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신행정수도의건설을위한특별조치법 (2004. 1. 16. 제정 법률 제7062호, 이하 ‘이 사건 법률’이라 한다)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위반되는지 여부이다. 이 사건 법률의 내용은 별지3과 같다.

2. 청구인들의 주장과 이해관계기관의 의견 요지

가. 청구인들의 주장

(1) 이 사건 법률은 대통령의 선거공약이행의 차원에서 제정된 법인데 실질적인 수도 이전을 계획·추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사실은 헌법적으로 볼 때 불문헌법에 속한다. 따라서 수도이전에는 헌법개정에 버금가는 절차인 국민투표를 하여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여야만 헌법적 정당성을 갖추게 된다. 또한 이 사건 법률은 국가안위에 관련된 중요한 국가정책에 관한 사항을 담았고 국민투표 실시를 위한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있었으므로 그 제정시에 헌법 제72조 소정의 국민투표를 반드시 거쳤어야 할 것임에도 이를 거치지 아니한 것은 헌법에 위반되며,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다.

(2) 수도이전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국민이 납부하는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예산에서 지출될 것인바, 이러한 지출은 재정투자의 우선순위를 도외시하고 헌법원칙을 무시한 위헌적인 것이다. 이와 같은 위헌적인 국가재정지출의 근거가 되는 이 사건 법률은 헌법 제37조 제1항의 ‘헌법에서 열거되지 아니한 권리’로서 보장되어야 하는 납세자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다.

(3) 수도이전은 국가 또는 국토의 재편계획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국민 모두가 지대한 이해관계를 가지므로, 적법절차의 원칙상 법률제정과정에서 청문회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를 필요적으로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것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청문권을 침해한 것이다.

(4) 서울특별시 의회의원과 공무원인 청구인들에게는 이 사건 법률의 제정으로 인하여 서울특별시 공무원으로서 공직수행과정에서 누렸던 지위와 권리가 박탈되어 그러한 이익이 침해될 것이 예상되는데 이는 그들의 공무담임권과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5)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절차적 사항을 정하기 위한 법률임에도 불구하고 실체적 사항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수도이전계획에 대하여 대통령이 승인하기 전에 국회에서 먼저 정하도록 하여 국회가 대통령의 하위기관인 것처럼 규정하고 있으며, 수도이전지역을 특정지역으로 확정하고 있어서 법규범상호간에 준수되어야 할 체계의 정당성이 결여되었다. 또한 수도이전지역으로 규정된 충청권에 비하여 합리적 이유없이 다른 지역을 차별하는 것으로 평등권을 침해하고 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청구인들에게는 수도의 이전으로 인하여 경제·사회생활에서 불이익을 받을 것이 예상되는데 이는 동 청구인들의 직업선택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및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나. 대통령, 건설교통부장관, 법무부장관 및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의 의견

(1) 청구인들이 침해받았다고 주장하는 기본권들은 모두 그 침해의 개연성이 없다. 이 사건 법률의 내용은 수도 이전의 추진에 관한 일반적 사항 뿐으로서 개개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성을 가지지 못하며, 또한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매개하지 않고는 직접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 또한 이 사건 법률은 2003. 12. 29. 국회에서 의결되어 2004. 1. 16. 공포되었으므로 그날로부터 90일 이내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여야 함에도 이를 경과하여 2004. 7. 12.에야 헌법소원을 제기하였으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넘겨 부적법하다.

(2)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대통령이 그 부의권을 행사할 때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이 사건의 경우 문제될 수 없다. 수도문제는 헌법개정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며, 서울이 수도인 것은 법률적 근거를 가지고 있을 뿐이어서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불문헌법으로 볼 수 없다. 또한 불문헌법을 개정함에 있어서도 헌법개정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으므로 이 사건 법률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수 없다.

(3) 국민들이 납세자이긴 하나 정부가 세금을 어떻게 적재적소에 사용하는지 여부에 대하여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이는 오직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를 통하여 감시되고 통제될 뿐이다. 따라서 청구인들이 주장하는 납세자로서의 권리는 당초부터 침해될 수 없다.

(4) 청구인들은 청문권의 침해를 주장하나 정부가 법률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공청회를 개최한 바 있으며 입법예고도 시행하였고 국회의 입법과정에서도 국회소관 위원회에서 국회법에 의거하여 공청회 개최를 생략하기로 의결한 바 있으므로 적법절차를 위배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청문권을 침해한 바가 없다.

(5) 이 사건 법률의 내용상 각 조항간은 물론 다른 법률과 모순되거나 저촉되는 바가 없으므로 체계정당성의 원리를 위배한 것이 아니다. 또한 수도이전 예상지역을 대전·충청권으로 정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가의 균형발전·수도권의 집중 해소 등 합리적 이유가 있으므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

(6) 청구인들은 수도의 이전으로 단순히 사실상 경제적 반사이익만이 관계되고 있을 뿐이므로 직업선택의 자유, 거주이전의 자유, 행복추구권등은 침해될 수 없다.

다. 서울특별시장의 의견

서울이 수도로서 유구한 역사와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고 있고, 수도권 과밀해소의 해법으로 수도이전은 적합하지 않으며, 행정수도법 제정 과정에서 서울특별시와 서울시 의회에 의견제출기회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는 외에는 청구인들의 주장 요지와 같다.

3. 적법요건에 관한 판단

가. 기본권 침해의 개연성이 있는지 여부

이 사건 법률은 수도의 이전을 확정하고 그 이전의 절차를 정하는 내용을 가진 법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점이 명문의 헌법조항에서 밝혀진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헌법의 해석상 그것이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에 의하여 확립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불문의 관습헌법에 속하는 것임이 확인된다면, 수도의 이전을 내용으로 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 헌법의 내용을 헌법개정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하위 법률의 형식으로 변경하여버린 것이 된다. 비록 헌법전에 명문이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관습헌법사항이라면 이는 의연히 헌법의 일부이므로 헌법개정의 절차에 의하여만 변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 제130조는 헌법의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에 의하여 발의되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국회의 의결을 거친 후 반드시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은 본안에 관한 판단에서 수도가 서울인 점에 대한 관습헌법성이 확인된다면 헌법개정에 의하여 규율되어야 할 사항을 단순 법률의 형태로 규율하여 헌법개정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국민투표를 배제한 것이 되므로 국민들의 위 투표권이 침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헌법개정에 있어서 청구인들이 갖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그 권리침해의 개연성이 인정된다.

나.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직접성·현재성이 있는지 여부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있음은 앞서 본 바와 같으므로 다음으로 그 권리 침해의 자기관련성과 직접성 및 현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여기서 침해되는 기본권은 국민으로서 가지는 참정권의 하나인 헌법개정의 국민투표권인바, 이 권리는 대한민국 국민인 청구인들 각 개인이 갖는 기본권이므로 청구인들이 이 사건 법률에 대하여 권리 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있음은 명백하다. 또 이 사건 법률은 수도 이전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므로 ‘수도 이전’ 자체에 관하여는 더 이상 어떠한 절차나 결정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아니하다. 따라서 헌법개정에 관하여 국민이 갖는 국민투표권이라는 기본권이 이 사건 법률에 의하여 직접 배제되므로 직접성도 인정된다. 또한 이 사건 법률의 공포·시행에 의하여 수도의 이전은 법률적으로 확정되고 따라서 청구인들의 위 국민투표권은 이미 배제되었으므로 위 권리의 침해는 현실화되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어 침해의 현재성도 인정된다. 그렇다면 청구인들은 수도의 이전을 결정하고 그 절차를 정하는 내용의 이 사건 법률에 대하여 권리침해의 자기관련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청구인들의 권리침해의 직접성과 현재성도 모두 인정된다.

다.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는지 여부

헌법재판소법 제69조 제1항은 같은 법 제68조 제1항의 헌법소원심판은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은 날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은 법령의 시행과 동시에 기본권의 침해를 받게 되는 경우에는 그 법령이 시행된 사실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그 법령이 시행된 날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하고, 법령이 시행된 후에 비로소 그 법령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여 기본권의 침해를 받게 된 경우에는 그 사유가 발생하였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헌재 2004. 4. 29. 2004헌마93, 공보 92, 554, 556).

그런데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는 이 사건 법률이 시행된 2004. 4. 17.부터 90일 이내인 2004. 7. 12. 및 2003. 7. 15.에 제기되었으므로 어느 모로 보나 청구기간을 준수하였다.

라.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어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인지 여부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문제 또는 수도를 이전하는 문제는 고도의 정치적인 문제로서 이에 관한 대통령이나 국회의 결정은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가 부적법한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1) 국가긴급권의 발동, 국군의 해외파견 등과 같이 대통령이나 국회에 의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고, 이러한 결단은 가급적 존중되어야 한다는 요청에서 사법심사를 자제할 필요가 있는 국가작용이 우리 헌법상 존재하는 것은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기본원리인 법치주의의 원리상 대통령, 국회 기타 어떠한 공권력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하고,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데에서 나오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며,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헌재 1996. 2. 29. 93헌마186, 판례집 8-1, 111, 115-116 참조).

(2) 신행정수도건설이나 수도이전의 문제가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하기에는 부적절한 문제라고까지는 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이 사건 법률의 위헌여부이고 대통령의 행위의 위헌여부가 아닌바, 법률의 위헌여부가 헌법재판의 대상으로 된 경우 당해법률이 정치적인 문제를 포함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할 수는 없다.

(3) 다만, 이 사건 법률의 위헌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선결문제로서 신행정수도건설이나 수도이전의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일지 여부에 관한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경우 위 의사결정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문제여서 사법심사를 자제함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그 의사결정에 관련된 흠을 들어 위헌성이 주장되는 법률에 대한 사법심사 또한 자제함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위 의사결정이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위 의사결정과 관련된 법률도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 헌법은 선거권(헌법 제24조)과 같은 간접적인 참정권과 함께 직접적인 참정권으로서 국민투표권(헌법 제72조, 제130조)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국민투표권은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의 하나이다(헌재 2001. 6. 28. 2000헌마735, 판례집 13-1, 1431, 1439 참조). 그러므로 대통령의 의사결정이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면, 가사 위 의사결정이 고도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행위라고 하더라도 이는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것으로서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의 위헌성이 대통령의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경우라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4)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의 위헌성을 판단하기 위한 선결문제로서 국민투표권에 관한 대통령의 의사결정의 위헌성여부를 판단하는 경우라도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되었는지 여부에 관한 판단을 위한 한도에서는 이 사건 법률이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한 헌법소원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청구가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아니하는 것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부적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마. 소 결

이상에서 살핀 바와 같이 이 사건 헌법소원 심판청구는 위 쟁점들에 관하여 적법요건을 모두 갖추었으며 달리 적법요건상 흠결이 있다는 사정이 엿보이지 아니하므로 이 사건 심판청구는 적법하다.

4. 본안에 관한 판단

가. 헌법상 수도의 개념

(1)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적 사항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집중 소재하여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실현하고 대외적으로 그 국가를 상징하는 곳을 의미한다. 입헌국가의 규범적 요청에 부합하는 수도는 다음의 특징들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선 대의민주제 입헌국가에서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를 통한 입법기능이 수행되는 곳이어야 한다. 입법기관의 “직무소재지”라는 것은 수도로서의 성격의 중요한 요소의 하나다. 다음으로 수도는 국가의 대표기능 내지 통합기능이 수행되는 곳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와 같은 대통령제 국가의 헌법에서는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고 국가의 통일성을 유지하도록 하는바 대통령의 이러한 대내외적 활동은 그 활동이 수행되는 장소에 대하여 “수도적인 것”의 한 필수적 요소를 부여하게 된다. 국가원수의 이러한 활동은 국민정서상의 상징가치를 가진 것으로서 심리적으로 국가통합의 계기를 이루는 것이므로 수도성을 판단함에 있어서 본질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나아가 수도는 정부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들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장소라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경제정책도 포함한 대내외의 제반 정책들을 책임 있게 수행함으로써 정치적·행정적으로 국가를 이끌어나간다. 이와 같은 정부의 기능은 그것이 행사되고 현실화되는 장소에 대하여 수도적인 것의 하나의 계기를 부여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정부는 창조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할 행정을 담당·수행하는 탓에 그 기구가 전문적이고 방대하여 반드시 한 도시에만 집중하여 소재할 필요는 없고 특히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현저한 발전으로 인하여 화상회의와 전자결재 등 첨단의 정보기술을 활용하여 장소적 이격성을 극복하고 얼마든지 유기적 업무협조를 실현할 수 있는 사정 등을 감안하면 정부조직의 분산배치는 정책적 고려가 가능하다. 특히 대통령제의 통치구조 아래에서 대통령은 국가원수일 뿐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이므로 정부의 소재지는 대통령의 소재지로서 대표된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대통령의 소재지를 수도의 특징적 요소로 보는 한 정부 각 부처의 소재지는 수도를 결정하는 데 있어서 별도로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볼 필요는 없다. 한편 헌법재판권을 포함한 사법권이 행사되는 장소와 도시의 경제적 능력 등은 수도를 결정하는 필수적인 요소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볼 것이다. 요컨대 수도란 최소한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를 뜻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2) 우리 헌법상 최고 헌법기관에는 국회(헌법 제3장), 대통령(제4장 제1절), 국무총리(제2절 제1관), 행정각부(제2절 제3관), 대법원(제5장), 헌법재판소(제6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제7장)가 있다. 이러한 헌법기관들 중에서도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정하는 국회와 행정을 통할하며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소재지가 어디인가 하는 것은 수도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특히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것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국가를 상징하고 정부의 수반으로서 국가운용의 최고 통치권자이며 의회는 주권자인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대의기관으로서 오늘날의 간접민주주의 통치구조 하에서 주권자의 의사를 대변하고 중요한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므로 이들 두 개의 국가기관이야말로 국가권력의 중심에 있고 국가의 존재와 특성을 외부적으로 표현하는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나. 이 사건 법률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포함하는지 여부

이 사건 법률은 제1조에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규정”함을 명시하고 있을 뿐 대한민국의 수도를 현재의 서울특별시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결정 자체를 명시적으로 포함하고 있지는 아니하다. 또한 이전되는 주요 국가기관의 범위에 관하여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가 수립한 계획은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제6조 제1항), 특히 정부에 속하지 아니한 헌법기관은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하므로(같은조 제4항), 주요 국가기관이라고 하더라도 대통령의 승인과 국회의 동의 여부에 따라서는 이전의 대상에 포함되지 아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은 국회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주요 국가기관들이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을 직접 확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편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를 “국가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 새로 건설되는 지역으로서……법률로 정하여지는 지역”이라고 하고(제2조 제1호), 신행정수도의 예정지역을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행정기관 등의 이전을 위하여 ……지정·고시하는 지역”이라고 규정하여(같은조 제2호), 결국 신행정수도는 주요 헌법기관과 중앙 행정기관들이 소재하여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가 되어야 함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은 비록 이전되는 주요 국가기관의 범위를 개별적으로 확정하고 있지는 아니하지만, 그 이전의 범위는 신행정수도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기능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정도가 되어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은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국가기관의 소재지로서 헌법상의 수도개념에 포함되는 국가의 수도를 이전하는 내용을 가지는 것이며, 이 사건 법률에 의한 신행정수도의 이전은 곧 우리나라의 수도의 이전을 의미한다.

또한 이 사건 법률은 수도이전의 예정지역을 대전광역시·충청북도 및 충청남도 일원(이하 ‘충청권’이라 한다)의 지역 중에서 지정하기로 하고(제8조), 신행정수도 건설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를 설치토록 하는바(제27조), 추진위원회는 주요 국가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계획을 수립하고(제6조 제1항), 신행정수도 건설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하며(제7조 제1항), 신행정수도 건설 예정지역을 지정하고(제12조), 건설사업에 관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제19조) 등 신행정수도의 원활한 건설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사항들을 처리하도록 하고 있다(제28조). 나아가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건설사업시행자의 지정(제18조), 신행정수도건설사업에 관한 계획의 수립(제19조), 그 실시계획의 수립과 승인(제20조), 기반시설의 설치(제22조), 토지 등의 수용(제23조), 건설사업 완료시의 준공검사(제26조) 등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이 사건 법률은 신행정수도로의 이전에 관한 계획 수립의 차원을 넘어서 신행정수도를 실제로 건설하는 사업까지 규율하며, 특히 이 사건 법률에 의하여 설치되는 추진위원회는 앞서 본 수도이전을 추진하기 위한 각종의 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할 권한을 가지도록 하여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별도의 국가의사결정이 없이도 행정수도이전사업은 이 사건 법률의 집행에 의하여 현실적으로 추진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결국 이 사건 법률은 충청권에 건설되는 신행정수도에 국가의 정치·행정의 중추적 기능을 수행하는 주요국가기관을 이전하는 의사결정을 그 스스로 담고 있다고 할 것이어서 결국 이 사건 법률은 대한민국의 수도를 충청권으로 이전한다는 의사결정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다. 수도가 서울인 점이 우리나라의

관습헌법인지 여부

(1) 성문헌법체제에서의 관습헌법의 의의와 성립요건

(가) 우리나라는 성문헌법을 가진 나라로서 기본적으로 우리 헌법전(憲法典)이 헌법의 법원(法源)이 된다. 그러나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또한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으로서 간결성과 함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형식적 헌법전에는 기재되지 아니한 사항이라도 이를 불문헌법(不文憲法) 내지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소지가 있다. 특히 헌법제정 당시 자명(自明)하거나 전제(前提)된 사항 및 보편적 헌법원리와 같은 것은 반드시 명문의 규정을 두지 아니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헌법사항에 관하여 형성되는 관행 내지 관례가 전부 관습헌법이 되는 것은 아니고 강제력이 있는 헌법규범으로서 인정되려면 엄격한 요건들이 충족되어야만 하며, 이러한 요건이 충족된 관습만이 관습헌법으로서 성문의 헌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나) 헌법 제1조 제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이와 같이 국민이 대한민국의 주권자이며, 국민은 최고의 헌법제정권력이기 때문에 성문헌법의 제·개정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헌법전에 포함되지 아니한 헌법사항을 필요에 따라 관습의 형태로 직접 형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습헌법도 성문헌법과 마찬가지로 주권자인 국민의 헌법적 결단의 의사의 표현이며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진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인 것이다. 국민주권주의 또는 민주주의는 성문이든 관습이든 실정법 전체의 정립에의 국민의 참여를 요구한다고 할 것이며, 국민에 의하여 정립된 관습헌법은 입법권자를 구속하며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

(다)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먼저 관습이 성립하는 사항이 단지 법률로 정할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헌법에 의하여 규율되어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이 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실질적인 헌법사항이라고 함은 널리 국가의 조직에 관한 사항이나 국가기관의 권한 구성에 관한 사항 혹은 개인의 국가권력에 대한 지위를 포함하여 말하는 것이지만, 관습헌법은 이와 같은 일반적인 헌법사항에 해당하는 내용 중에서도 특히 국가의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으로서 법률에 의하여 규율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한 사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헌법사항 중 과연 어디까지가 이러한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헌법사항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일반추상적인 기준을 설정하여 재단할 수는 없는 것이고, 개별적 문제사항에서 헌법적 원칙성과 중요성 및 헌법원리를 통하여 평가하는 구체적 판단에 의하여 확정하여야 한다.

(라) 다음으로 관습헌법이 성립하기 위하여서는 관습법의 성립에서 요구되는 일반적 성립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러한 요건으로서 첫째, 기본적 헌법사항에 관하여 어떠한 관행 내지 관례가 존재하고, 둘째, 그 관행은 국민이 그 존재를 인식하고 사라지지 않을 관행이라고 인정할 만큼 충분한 기간 동안 반복 내지 계속되어야 하며(반복·계속성), 셋째, 관행은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서 그 중간에 반대되는 관행이 이루어져서는 아니 되고(항상성), 넷째, 관행은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것이 아닌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명료성). 또한 다섯째, 이러한 관행이 헌법관습으로서 국민들의 승인 내지 확신 또는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어 국민이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어야 한다(국민적 합의). 이와 같이 관습헌법의 성립을 인정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2)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의 수도문제

헌법기관의 소재지, 특히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과 민주주의적 통치원리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의회의 소재지를 정하는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正體性)을 표현하는 실질적 헌법사항의 하나이다. 여기서 국가의 정체성이란 국가의 정서적 통일의 원천으로서 그 국민의 역사와 경험, 문화와 정치 및 경제, 그 권력구조나 정신적 상징 등이 종합적으로 표출됨으로써 형성되는 국가적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수도를 설정하는 것 이외에도 국명(國名)을 정하는 것, 우리말을 국어(國語)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 영토를 획정하고 국가주권의 소재를 밝히는 것 등이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이 된다고 할 것이다. 수도를 설정하거나 이전하는 것은 국회와 대통령 등 최고 헌법기관들의 위치를 설정하여 국가조직의 근간을 장소적으로 배치하는 것으로서, 국가생활에 관한 국민의 근본적 결단임과 동시에 국가를 구성하는 기반이 되는 핵심적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도의 문제는 내용적으로 헌법사항에 속하는 것이며 그것도 국가의 정체성과 기본적 조직 구성에 관한 중요하고 기본적인 헌법사항으로서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므로 대통령이나 정부 혹은 그 하위기관의 결정에 맡길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3)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 여부에 대한 판단

(가) 우리 헌법전상으로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명문의 조항이 존재하지 아니한다. 그러나 서울은 사전적 의미로 바로 ‘수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1392년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하여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이래 600여년간 전통적으로 현재의 서울 지역은 그와 같이 일반명사를 고유명사화하여 불러 온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서울 지역이 수도인 것은 그 명칭상으로도 자명한 것으로서, 대한민국의 성립 이전부터 국민들이 이미 역사적, 전통적 사실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건국에 즈음하여서도 국가의 기본구성에 관한 당연한 전제사실 내지 자명한 사실로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따라서 제헌헌법등 우리 헌법제정의 시초부터 ‘서울에 수도(서울)를 둔다.’는 등의 동어반복적인 당연한 사실을 확인하는 헌법조항을 설치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것이었다. 그 후에도 수차의 헌법개정이 있었지만 우리 헌법상으로 수도에 관한 명문의 헌법조항은 설치된 바가 없으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나라의 역사적, 전통적, 문화적 상황에 비추어 수도에 관한 헌법관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이 바로 수도인 것은 국가생활의 오랜 전통과 관습에서 확고하게 형성된 자명한 사실 또는 전제된 사실로서 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나) 한편 우리나라에서 수도가 서울인 점의 관습헌법성 인정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로 설정되고 수도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여온 역사적 경위를 실증적으로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1) 조선의 창건과 서울의 수도설정

가) 서울은 일찍이 고려시대에 남경(南京)이 설치되어 서경·동경인 평양·경주와 더불어 고려의 이른바 삼경제를 이루는 지방행정의 중심지역할을 하였다(고려 문종 21년 서기 1067년). 남경은 지금의 서울·경기지역의 일부지역을 직접 관할로 하였으며 주변지역의 행정중심지로서 궁궐 등 상당한 규모의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고 한때 고려의 왕들이 순행을 하며 거처하기도 하였던 곳이다. <그러나 남경이 설치된 후 경기도 일대를 통치하는 지방행정의 중심적 역할을 하던 서울지방은 고려말에 이르러 다시 한양부(한양부)로 개편되었다. 지방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지방관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삼경제가 폐지되었고 남경 역시 일반적인 하나의 부(부)가 되었다(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 1977, 제1권, 144-145쪽).>

나) 조선왕조가 창건되자 곧바로 천도론이 제기되었다. 공양왕 4년(서기 1392년) 7. 17.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이하 ‘태조’라고만 한다)는 같은 해 8. 13.에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 <고려후기 국가의 최고 정무기관. 재상을 포함한 주요 중앙부처의 관리들이 국정을 논의하던 것에서 시작하여 주요업무를 직접 시행하는 행정기관으로 확대되었다. 도평의사사는 조선 정종 2년(1400) 의정부로 개칭될 때까지 존재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7권, 27-28쪽).>

에 한양(漢陽)으로 도읍(都邑)을 옮기도록 명을 내렸다. 그러나 같은 해 9. 3. 배극렴, 조준 등이 “한양의 궁궐이 이룩되지 못하고 성곽이 완공되지 못하여, 호종하는 사람이 민가(民家)를 빼앗아 들어가게 되며 기후는 점차 추워 오고 백성들은 돌아갈 데가 없으니, 궁실과 성곽을 건축하고 각 관사를 배치하기를 기다려 그 후 도읍을 옮기도록 하자.”고 주청(奏請)하였고 태조가 이를 옳게 여겨 초기의 천도계획은 중지되기에 이르렀다. <국역 조선왕조실록『세종대왕기념사업회 및 민족문화추진위원회가 1993년 완성한 번역본을 조선왕조실록시디롬(CD-ROM)간행위원회가 1995년 시디롬으로 간행한 것』 중 태조실록 태조 1년 9. 3. 신사>

다) 그 후 천도 논의는 계룡산(鷄龍山)과 무악(毋岳) 등 새로운 후보지가 등장하면서 도읍지를 어디로 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변경되었다. 계룡산의 경우 태조 2년(서기 1393년) 2. 8. 태조는 직접 계룡산하의 후보지를 둘러보고 산수형태, 조운·도로의 형편 등을 살펴보고 새 도읍지로 결정하였고 이어 건설공사와 함께 관련된 행정구역의 정비까지 시작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12. 11. 당시 경기좌우도 도관찰사(京畿左右道 都觀察使) 하륜의 불가론에 의하여 다시 새 도읍의 공사는 중단되었다. 당시 하륜은 도읍은 마땅히 나라의 중앙에 있어야 될 것인데 계룡산은 지대가 남쪽에 치우쳐서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도읍건설을 중지할 것을 주장하였고 태조가 여러 관리들의 검토를 거쳐 이를 받아들였다. <전게 국역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태조 2년 12. 11. 임오>

이후 새로운 후보지로 등장한 것이 무악(지금의 서울 연희·신촌동)이다. 태조 3년(서기 1394년) 8. 11. 태조는 무악을 직접 둘러보았으나 많은 관리들이 무악이 수도가 될 수 없다고 하고 심지어 송도에 그대로 도읍을 두자는 의견까지 있자 다시 도읍지를 골라보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이때 다시 남경 즉 한양이 주목되었다. 이에 따라 같은 달 13. 태조가 한양을 둘러보는 과정에서 왕사(王師)인 자초(自超, 호는 無學)와 여러 재상들이 모두가 도읍을 정할만하다고 하였으므로 태조는 최종적으로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였다. <전게 국역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태조 3년 8. 13. 경진>

라) 공식적으로는 같은 달 24. <도평의사사에서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것을 상신하여 태조가 정승들의 주청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한양천도를 결정하였다. 도평의사사에서 상신(上申)하였다.

“좌정승 조준, 우정승 김사형 등은 생각하건대, 옛날부터 임금이 천명을 받고 일어나면 도읍을 정하여 백성을 안주시키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요(堯)는 평양(平陽)에 도읍하고, 하(夏)나라는 안읍(安邑)에 도읍하였으며, 상(商)나라는 박(逃)에, 주(周)나라는 풍호(豊鎬)에, 한(漢)나라는 함양(咸陽)에, 당나라는 장안(長安)에 도읍하였는데, 혹은 처음 일어난 땅에 정하기도 하고, 혹은 지세(地勢)의 편리한 곳을 골랐으나, 모두 근본되는 곳을 소중히 여기고 사방(四方)을 진정(鎭靜)하려는 것이 아님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단군 이래로 혹은 합하고 혹은 나누어져서 각각 도읍을 정했으나, 전조 왕씨가 통일한 이후 송악에 도읍을 정하고, 자손이 서로 계승해 온 지 거의 5백 년에 천운이 끝이 나서 자연히 망하게 되었습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큰 덕과 신성한 공으로 천명을 받아 의젓하게 한 나라를 두시고, 또 제도를 고쳐서 만대의 국통(國統)을 세웠으니, 마땅히 도읍을 정하여 만세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윽이 한양을 보건대, 안팎 산수의 형세가 훌륭한 것은 옛날부터 이름난 것이요, 사방으로 통하는 도로의 거리가 고르며 배와 수레도 통할 수 있으니, 여기에 영구히 도읍을 정하는 것이 하늘과 백성의 뜻에 맞을까 합니다.”

왕이 분부하였다.

“상신한 대로 하라.”(전게 국역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태조 3년 8. 24. 신묘)>

이후 여러 달의 준비를 거쳐 같은 해 10. 25. 한양으로 서울을 옮겼다. 이후 태조 4년(서기 1395년) 6. 6. 한양부(漢陽府)는 한성부(漢城府)로 개편되었고, 태조 5년(서기 1396년) 4. 19. 한성부가 태조의 명을 받아 세운 방명표에 의하면 당시 한성지역은 총 5부(部) 52방(坊)으로 편성되었다. 전게 국역 조선왕조실록 중 태조실록 태조 5년 4. 19. 병오

마) 이와 같이 이루어진 천도 이후 정종 1년(서기 1399년) 3. 7. 일시 재난과 변란을 피하기 위하여 임금과 신하들이 개성으로 피방(避方)한 이래 태종 5년(서기 1405년) 10. 11. 한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수년간을 제외하고 정종 때 송도로 일시 옮겨간 당시 동기가 변란을 자주 보이는 한양에서 임금이 일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었고 종묘 등과 관청의 절반이 그대로 한양에 남아 있었다(서울육백년사, 서울특별시, 1997, 제1권, 180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 때에 한양으로 환도하기 위한 논의가 전개될 당시 종묘와 사직을 송도로 옮겨 송도를 완전한 도읍으로 하자는 주장, 제3의 지역인 무악으로 새로이 도읍을 정하자는 주장이 존재하였다. 이는 오랫동안 근거지로 삼았던 개경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던 관료들과 태조의 뜻대로 한양으로 옮겨가려는 태종의 의지가 서로 충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종묘에서 위 세 곳을 대상으로 점을 쳐 길(吉)함이 많이 나온 한양으로 돌아갈 것이 정해졌다(전게 국역 조선왕조실록 중 태종실록 태종 4년 10. 6. 갑술).

한성 즉 서울은 조선시대 줄곧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여 왔다.

바) 이러한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는 성종때에 완성된 조선의 기본법전이었던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 건국초의 여러 법령을 종합하여 만든 통치의 기본이 되는 통일법전. 세조는 즉위 후 당시까지의 모든 법을 전체적으로 조화시켜 만세성법(萬世成法)을 이룩하기 위하여 통일법전 편찬에 착수하였고 여러차례 개수를 거쳐 성종 때인 1485년 완성되었다. 영세불변의 조종성헌(祖宗成憲)으로서 통치의 기본법전이 되었고 이후 개정되는 경우에도 조문을 삭제하지 않는 신성성을 지니고 있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1권, 839-840쪽)>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한성부(漢城府)에 관한 규정은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한성부조(漢城府條)에 들어있는데 경관직은 지방관인 외관직(外官職)과 구별되어 있었고, 그 관할로 경도(京都), 즉 서울의 호적대장, 시장 등의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하여 한성의 수도로서의 지위를 분명히 하였다. <“掌 京都 口帳 市廛 家舍 田土 四山 道路 橋梁 溝渠 逋欠 負債 鬪毆 晝巡 檢屍 車輛 故失牛馬 烙契 等 事”(經國大典 吏典 京官職 漢城府條)>

이러한 경국대전의 내용은 개정됨이 없이 조선왕조가 유지되는 동안 계속되었다.

2) 일제강점시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

1910. 8. 한일합방에 의하여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하는 상황이 시작되었으나 이후에도 경성부(京城府), 즉 서울은 우리나라의 행정중심지로서의 역할을 계속하였으며, 국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1919. 3. 1. 민족대표들에 의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이 선언된 곳이기도 하였다. 한편 위 독립선언에 이은 3·1운동 이후 같은 해 4. 13. 중국 상해(上海)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같은 해 9. 11. 제정한 대한민국임시헌법은 제4장에서 임시의정원에 관한 규정을 두면서 임시의정원 의원은 경기·충청·경상·전라·함경·평안 각 도 및 중국령 교민, 러시아령 교민에서 각 6인, 강원·황해 각 도 및 미주(美洲) 교민에게 각 3인을 정한다고(제20조) 하고 있을 뿐 서울에 관하여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고 있고, 그 이후에 개정된 임시정부헌법에서도 이와 같다. 그러나 이 시기에 상해에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외에도 여러 지역에서 임시정부가 설립되었는데 이 가운데 상해·러시아령·한성(서울)의 3개 지역에서 성립된 임시정부들이 상해에 집결하여 헌법·의회·서고문(誓告文)·정강·강령 등을 갖추어 같은 해 9. 15. 통합임시정부를 구성하였고, 동 임시정부는 비밀 행정 체계인 연통제(聯通制)를 운영하면서 서울에 총판(總辦)을 둔 점 등에 비추어, 비록 일제의 국토강점으로 인하여 국가조직이 와해된 상태에 있었으나 서울은 우리나라의 수도로서의 대외적인 상징성을 유지하였고 임시정부에서도 서울의 수도성을 당연한 전제로 하여 항일활동조직을 편성하였으며 국민들의 의식도 변화가 없었으므로 서울의 수도성은 이 시기에도 사실상 유지된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3) 해방과 건국 이후 현재까지의 서울의 수도성 유지

해방 이후 건국에 이르는 이 시기에 우리나라의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헌법전에는 명문의 수도조항이 들어가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서울이 수도임을 전제로 하여 규정된 다수의 개별법률들이 역사적으로 존재하여 왔다.

가) 최초로는 해방후 미군정 시대인 1946. 9. 18. 미군정법령 제106호 ‘서울특별시의 설치령’ 제2조에서 서울시는 ‘조선의 수도’로서 특별시로 하며 도와 동등한 직능 및 권한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우리 국민의 대표들에 의하여 서울시의 지위가 처음으로 논의된 것은 미군정청내의 남조선과도입법의원(1946. 8. 24. 미군정법령 제108호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의 창설’에 의하여 설치)에서였다. 1947. 2. 27. 위 의원에 제출된 ‘남조선과도행정조직법초안’에서는 제52조 제2문에서 ‘서울시는 특별시로 하야 중앙행정부에 직속케 함’이라고 명시하여 서울만을 특별히 취급하고 있다. 같은 해 7. 30. 논의된 지방자치조직법안은 위 군정법령 제106호의 주요내용을 유지하여 ‘서울시는 조선의 수도로서 특별시로 하고 도와 동등한 직능 및 권한이 있음(제29조 제2문)’을 명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의원들은 지방자치법 역시 헌법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고 보고 헌법에 해당하는 ‘남조선과도약헌’의 지방제도부분이 확정될 때까지 위 법안의 처리를 보류하였다. 남조선과도입법의원 속기록 제123호 13쪽>

나) 한편 서울시가 특별시의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지방자치법(1949. 7. 4. 법률 제32호)이 제정되면서부터이다. 위 법률은 제2조에서 정부의 직할하에 있는 지방자체단체로서 도와 ‘서울특별시’를 설치하였다. 이에 대하여 내무치안위원장 나용균의원은 ‘일정시대에는 전부 부군(府郡)이였습니다. 과도정부시에 서울만은 서울특별시라 하고 기타는 부라고 했는데 …… 인구관계라든지 수도의 관계라든지 일본에서도 시행하는 것 같은 동경을 도(都)라고 한 예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고려해 가지고 서울은 특별시라고 명칭을 붙였다’고 설명하여 서울을 특별시로 한 것은 수도의 지위를 고려한 것임을 확인하고 있다. <제헌의회 속기록(제3권) 제2회 26호, 468쪽>

다) 현행법을 보아도 1988. 4. 6. 법률 제404호로 지방자치법이 개정되면서 ‘서울특별시의 지위·조직 및 운영에 있어서는 수도로서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특례를 둘 수 있다’(제161조)는 규정이 만들어졌고 이에 따라 1991. 5. 31. 법률 제4371호로 서울특별시행정특례에관한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에 의하면 서울특별시는 정부의 직할하에 있으며 수도로서의 특수한 지위를 가진다(제2조). 내무부장관이 서울특별시의 지방채발행의 승인여부를 결정하거나 자치사무에 관한 감사를 하고자 하는 경우 국무총리의 조정을 거쳐야 하고(제4조 제1항, 제2항) 소속공무원임용 및 서훈에 관하여 서울특별시장은 특별한 권한을 가진다(같은 조 제5항, 제7항). 또한 수도권 지역에서 서울특별시와 관련된 도로·교통·환경 등에 관한 계획수립과 집행에 있어서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서울특별시장이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에는 국무총리의 조정을 받도록 하고 있다(제5조).

라) 이상에서 살핀 입법의 상황을 보면 해방 이후 서울이 수도인 것을 언급하는 법률조항들이 계속 존재하여 왔으나, 이들은 서울이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을 이미 존재하는 규범적 전제로서 받아들이면서 이를 기준으로 수도 서울의 특별한 지위를 법률적으로 설정하기 위한 조항들일 뿐, 법률의 차원에서 서울이 수도인 점을 확정하고자 한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입법의 사정은 서울이 수도인 점에 대한 우리 국민의 전통적인 법적 확신을 확인해 주는 것이다.

(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수도가 서울로 정하여진 것은 비록 헌법상 명문의 조항에 의하여 밝혀져 있지는 아니하나, 조선왕조 창건 이후부터 경국대전에 수록되어 장구한 기간동안 국가의 기본법규범으로 법적 효력을 가져왔던 것이고, 헌법제정 이전부터 오랜 역사와 관습에 의하여 국민들에게 법적 확신이 형성되어 있는 사항으로서 제헌헌법 이래 우리 헌법의 체계에서 자명하고 전제된 가장 기본적인 규범의 일부를 이루어 왔기 때문에 불문의 헌법규범화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앞서 본 관습헌법의 요건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것은 서울이라는 명칭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이래 600여 년 간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관한 당연한 규범적 사실이 되어 왔으므로 우리나라의 국가생활에 있어서 전통적으로 형성되어있는 계속적 관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계속성), 이러한 관행은 변함없이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일이 없으며(항상성),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은 우리나라의 국민이라면 개인적 견해 차이를 보일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며(명료성), 나아가 이러한 관행은 오랜 세월간 굳어져 와서 국민들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이미 얻어(국민적 합의) 국민이 실효성과 강제력을 가진다고 믿고 있는 국가생활의 기본사항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우리의 제정헌법이 있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존재하여온 헌법적 관습이며 우리 헌법조항에서 명문으로 밝힌 것은 아니지만 자명하고 헌법에 전제된 규범으로서, 관습헌법으로 성립된 불문헌법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위와 같은 제 요건을 갖추고 있는 서울이 수도인 사실은 단순한 사실명제가 아니고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불문의 헌법규범으로 승화된 것이며, 사실명제로부터 당위명제를 도출해 낸 것이 아니라 그 규범력에 대한 다툼이 없이 이어져 오면서 그 규범성이 사실명제의 뒤에 잠재되어 왔을 뿐이다.

(4)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 폐지를 위한 헌법적 절차

(가) 어느 법규범이 관습헌법으로 인정된다면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개정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관습헌법도 헌법의 일부로서 성문헌법의 경우와 동일한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그 법규범은 최소한 헌법 제130조에 의거한 헌법개정의 방법에 의하여만 개정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의한 국회의 의결을 얻은 다음(헌법 제130조 제1항)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헌법 제130조 제3항). 다만 이 경우 관습헌법규범은 헌법전에 그에 상반하는 법규범을 첨가함에 의하여 폐지하게 되는 점에서, 헌법전으로부터 관계되는 헌법조항을 삭제함으로써 폐지되는 성문헌법규범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형식적인 헌법개정 외에도, 관습헌법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국민적 합의성을 상실함에 의하여 법적 효력을 상실할 수도 있다. 관습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에 의하여 유효한 헌법규범으로 인정되는 동안에만 존속하는 것이며, 관습법의 존속요건의 하나인 국민적 합의성이 소멸되면 관습헌법으로서의 법적 효력도 상실하게 된다. 관습헌법의 요건들은 그 성립의 요건일 뿐만 아니라 효력 유지의 요건인 것이다.

(나) 우리나라와 같은 성문의 경성헌법 체제에서 인정되는 관습헌법사항은 하위규범형식인 법률에 의하여 개정될 수 없다. 영국과 같이 불문의 연성헌법 체제에서는 법률에 대하여 우위를 가지는 헌법전이라는 규범형식이 존재하지 아니하므로 헌법사항의 개정은 일반적으로 법률개정의 방법에 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헌법의 경우 헌법 제10장 제128조 내지 제130조는 일반법률의 개정절차와는 다른 엄격한 헌법개정절차를 정하고 있으며, 동 헌법개정절차의 대상을 단지 ‘헌법’이라고만 하고 있다. 따라서 관습헌법도 헌법에 해당하는 이상 여기서 말하는 헌법개정의 대상인 헌법에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같이 헌법의 개정절차와 법률의 개정절차를 준별하고 헌법의 개정절차를 엄격히 한 우리 헌법의 체제 내에서 만약 관습헌법을 법률에 의하여 개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을 더 이상 ‘헌법’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고 단지 관습‘법률’로 인정하는 것이며, 결국 관습헌법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이러한 결과는 성문헌법체제하에서도 관습헌법을 인정하는 대전제와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이므로 우리 헌법체제상 수용될 수 없다.

(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점에 대한 관습헌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른 헌법개정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 경우 성문의 조항과 다른 것은 성문의 수도조항이 존재한다면 이를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이 필요하겠지만 관습헌법은 이에 반하는 내용의 새로운 수도설정조항을 헌법에 넣는 것만으로 그 폐지가 이루어지는 점에 있다. 예컨대 충청권의 특정지역이 우리나라의 수도라는 조항을 헌법에 개설하는 것에 의하여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은 폐지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헌법규범으로 정립된 관습이라고 하더라도 세월의 흐름과 헌법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이에 대한 침범이 발생하고 나아가 그 위반이 일반화되어 그 법적 효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상실되기에 이른 경우에는 관습헌법은 자연히 사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사멸을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국민에 대한 종합적 의사의 확인으로서 국민투표등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방법이 고려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에 이러한 사멸의 사정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앞서 설시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상 관습헌법으로 정립된 사항이며 여기에는 아무런 사정의 변화도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를 폐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헌법개정의 절차에 의하여야 한다.

라. 수도이전을 내용을 한 이 사건 법률의 헌법 적합성 여부

(1)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인 것은 우리 헌법에 명문의 조항은 없으나 오랜 세월에 걸쳐 확립된 헌법관습으로서 소위 불문헌법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를 서울로부터 충청권의 어느 특정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의 절차를 정하는 법률로서 ‘수도는 서울’이라는 위 불문의 헌법사항을 변경하는 내용을 가진 것이라고 할 것이다.

(2) 그런데 우리나라의 수도의 설정에 관하여 서울이 수도로서 부적합하여졌다는 국민의 합의가 새로이 이루어졌다고 볼 어떠한 특별한 사정도 없으며, 현재로서는 서울이 수도인 점에 대한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되었거나 소멸되었다고 볼 근거도 없다. 또한 수도를 서울로부터 이전하는 것을 헌법에 명문으로 삽입하여 넣는 취지의 헌법개정이 현행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시행된 바도 없다.

(3)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는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헌법개정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는 중요한 헌법사항을 이러한 헌법적 절차를 이행하지 아니한 채 단순법률의 형태로 변경한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것이다.

마. 국민투표권의 침해 여부

(1) 특정의 법률이 반드시 헌법전에서 규율하여야 할 기본적인 헌법사항을 헌법을 대신하여 규율하는 경우에는 그 내용이 상위의 헌법규범에 배치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경성헌법의 체계에 위반하여 헌법위반에 해당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률의 위헌이 문제되는 것은 그 내용이 헌법조항이나 헌법원칙에 위배되는 경우일 것이나 이러한 정도를 넘어서서 당해 법률이 반드시 헌법에 의하여 규율되고 개정되어야 할 사항을 단순법률의 형태로 규정하고자 한 경우에는 이는 국민이 주권자로서 헌법의 제·개정에 관하여 가지는 권한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된다.

(2) 그런데 앞서 본 바와 같이 수도의 설정과 이전의 의사결정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적 헌법사항으로서 헌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다. 또한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인 점은 불문의 관습헌법이므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 새로운 수도 설정의 헌법조항을 신설함으로써 실효되지 아니하는 한 헌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개정의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수도를 충청권의 일부지역으로 이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이 사건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헌법개정사항을 헌법보다 하위의 일반 법률에 의하여 개정하는 것이 된다.

한편 헌법의 개정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되어(헌법 제128조 제1항)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에 따른 국회의 의결을 거친 다음(헌법 제130조 제1항) 의결 후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만(헌법 제130조 제3항) 이루어 질 수 있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만 하므로 국민은 헌법개정에 관하여는 찬반투표를 통하여 그 의견을 표명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헌법개정사항인 수도의 이전을 위와 같은 헌법개정절차를 밟지 아니하고 단지 단순법률의 형태로 실현시킨 것으로서 결국 헌법 제130조에 따라 헌법개정에 있어서 국민이 가지는 참정권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의 행사를 배제한 것이므로 동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바. 소 결

그렇다면, 청구인들이 제기한 다른 쟁점들에 대하여 더 나아가 판단할 필요도 없이, 수도의 이전을 확정함과 아울러 그 이전절차를 정하는 이 사건 법률은 우리나라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불문의 관습헌법사항을 헌법개정절차를 이행하지 않은 채 법률의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어서 그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을 포함한 국민의 헌법개정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으므로 헌법에 위반된다.

5. 결 론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은 청구인들이 수도이전의 국가적 결정에 관련하여 갖는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할 것이므로, 재판관 김영일의 아래 6.과 같은 별개의견과 재판관 전효숙의 아래 7.과 같은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 나머지 관여 재판관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6. 재판관 김영일의 별개의견

나는 다수의견의 결론에는 동의하나,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가 청구인들에게 보장한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함이 타당하고, 다수의견의 논리에 따라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이해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은 면이 있다고 보므로 다수의견과 그 이유를 달리하는바, 이에 다음과 같이 그 의견을 밝힌다.

가. 이 사건 법률의 내용

이 사건 법률이 규정하는 ‘신행정수도’는 ‘대한민국의 수도’와 다르지 아니하다는 점, 그리하여 신행정수도로의 이전은 대한민국의 수도이전을 의미한다는 점, 또한 이 사건 법률이 이미 다른 국가의사결정방법으로 결정된 수도이전정책을 단지 집행만 하는 법률이거나 또는 이후 수도이전의 국가의사결정이 있을 것을 예정하고 단지 그 준비단계만을 규율하는 법률이 아니라, 이 사건 법률 자체가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 관한 판단은 다수의견과 대체로 같다.

나.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이 국민투표의 대상인지 여부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하여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됨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이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하여 본다.

(1)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인지 여부

(가) 헌법 제72조가 말하는 ‘국가안위’는 국가의 존립과 관련되는 개념으로서 국가의 존재와 폐지를 의미하는데, 존재와 폐지 그 자체만이 아니라 존재와 폐지에 관련되는 것을 포함하여 국가존재 그 자체를 좌우하는 것은 물론 국가존재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포함된다.

헌법 제72조가 말하는 ‘국가안위’가 반드시 국가비상사태 또는 그에 상응하는 국가적 위기를 의미하지는 아니한다. 국가비상사태나 국가적 위기와 같은 시기적 위급성은 헌법 제76조 제1항이 규정한 ‘내우 외환 천재 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 경제상의 위기’, 헌법 제76조 제2항이 규정한 ‘교전상태’나 ‘긴급한 조치가 필요’, 헌법 제77조 제1항이 규정한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와 같은 법문에서 인정될 수 있는 요건이지, ‘국가안위’라는 개념 자체에 포함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헌법 제72조는 시기적 위급성을 의미하는 어떠한 요건도 부가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헌법 제72조가 규정하는 ‘외교 국방 통일’은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의 예시이다. 따라서 외교 국방 통일에 관한 정책은 그 자체로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이라고 할 수 있고, 나아가 외교 국방 통일에 관한 것이 아니라도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이라면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나) 수도이전의 문제는 국가안위에 관한 문제이다.

한 국가의 수도는 그 국가의 상징도시임과 동시에 국가생활의 구심이 된다. 따라서 수도의 위치는 국가의 존재의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국가의 정체성을 확정하는 핵심요소의 하나이다.

나아가 가령 수도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유일한 구심도시의 역할을 하지는 않는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수도의 위치는 위 모든 영역에 걸쳐 국민의 생활에 광범하고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이러한 경우의 수도위치 역시 국가존재의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이든 수도의 위치를 결정하는 문제는 국가안위에 관한 문제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에 따라 국가의 정치 행정의 중추기능을 가지는 수도로서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고 주요국가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은 국가안위에 관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고, 이는 가사 서울특별시가 정치 행정 외의 나머지 모든 분야 즉, 경제 사회 문화 영역에서의 구심도시로서 종전에 가져왔던 기능을 그대로 영위한다고 하더라도 다르지 아니하다.

(다) 수도이전의 문제는 또 헌법 제72조가 구체적으로 거시한 통일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수도의 위치는 통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한 현재뿐만 아니라 장래에 있을 통일과정 및 통일 후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남북한이 통일에 관한 협의를 할 경우 통일된 대한민국의 수도를 결정함에 있어 그 협의 당시 및 그 때까지 각 중심도시로서 역할을 하여 왔거나 하는 도시(현재의 상황에서 본다면 서울과 평양 등)가 통일된 대한민국의 수도 후보지들로서 고려될 것이므로 수도의 위치는 통일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우리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대한민국의 수도는 현실적인 지배력이 미치는 군사분계선 이남만이 아니라 군사분계선 이북지역까지를 포함하는 한반도 전체의 상징도시이고, 따라서 군사분계선 이북에 대한 현실적인 지배력을 회복하는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결정이 없는 한, 대한민국의 수도는 통일된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지위를 가진다. 그러므로 수도의 위치는 통일 후에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수도의 위치는 통일의 전후 및 통일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수도이전문제는 통일에 관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라) 나아가 수도이전문제는 헌법 제72조가 구체적으로 거시한 국방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수도는 국가권력의 핵심이 소재하는 곳이므로 수도의 위치는 국가방위전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요소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정치가 경제 사회 문화의 전반에 걸쳐 심대한 영향을 미쳐온 우리나라에서는 수도의 위치가 국가방위전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다. 따라서 수도를 이전하는 것은 기존의 수도이던 서울특별시나 신행정수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방위전략에 근본적인 수정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또 가져와야 한다.

그러므로 수도이전문제는 국방에 관한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마) 결국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통일 국방에 관한 정책임과 동시에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정책이라고 판단된다.

(2) 중요정책인지 여부

국민투표는 부의된 사안에 관한 한 대의제를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헌법 제72조가 규정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대의기관의 의사를 통하여 추정되는 국민의사와 별도로 현실적인 국민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정책인가를 판단기준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기준에서 수도이전문제를 보면, 이는 국가의 장래와 민족 전체의 운명이 관련된 국가기본에 관한 역사적인 문제라는 점, 현재 이에 관한 국론이 분열되어 국민통합의 위기가 초래될 염려가 있다는 점, 국민 전체가 이해관계가 있다고 느껴서 전 국민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문제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수도이전문제는 대의기관의 의사를 통하여 추정되는 국민의사와 별도로 현실적인 국민의사를 확인할 필요가 있을 만큼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따라서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가 규정한 ‘중요정책’이라고 판단된다.

(3) 소 결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가 정한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여 국민투표의 대상이 된다.

다.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가 재량행위인지 여부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의 성질에 관하여 보건대, 첫째, 국민투표부의행위의 근거규범인 헌법 제72조는 헌법 제130조와는 달리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여 법규범의 체제와 문언상 광범한 재량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 둘째, 국민투표부의행위는 대통령이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하여 국민적 합의가 요청될 경우 행하여지는 것으로서 정치적 고려가 요청되는 영역의 행위라는 점, 셋째, 국민투표부의행위 자체의 성질을 보더라도 대통령은 어떠한 정책을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에 부의함에 있어 단순히 헌법 제72조의 해석만으로 그 부의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제반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떠한 것이 국익에 부합하고 국민의 기본권보장에 이바지하는지를 결정하여야 하는 것이어서 무엇이 법인가에 대한 판단을 넘어 무엇이 합목적적인가에 대한 판단을 하여야 한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는 자유재량행위라고 판단된다.

라.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이 재량권의 한계를 넘는 것인지 여부

(1) 국민투표부의재량의 한계

법치주의의 원리는 어떠한 공권력작용이라도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요구하고, 다만, 공권력작용의 내용에 따라 법에 기속되는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임을 인정한다. 따라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가 자유재량행위라 하더라도 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하여 어떠한 공권력작용이 자유재량행위인 경우라도 그 행위에 부여된 재량권은 법이 허용한 재량권의 범위를 한계로 하여 행사되어야 하고(외적 한계), 또한 외적 한계 내에서 행해지는 재량권행사라도 법이 재량권을 부여한 목적에 적합하여야 하며 헌법원칙과 법의 일반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내적 한계). 따라서 재량권의 외적 한계를 넘어 재량권의 일탈이 있거나 내적 한계를 넘어 재량권의 남용이 있는 재량권의 행사는 그 재량권을 부여한 근거되는 법규범에 위반된다.

이와 같은 법리는 행정법분야에서만 타당한 것이 아니라 공권력작용 일반에 대하여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서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에 대하여도 그 재량권의 광협에 차이가 있음은 별론으로 하고 그 법리는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에 관한 결정을 함에 있어 재량권의 일탈 남용이 있는 경우 그 재량권행사는 재량권이 부여된 근거되는 법규범인 헌법 제72조에 위반된다.

(2) 재량권의 일탈 남용

재량권의 일탈 남용이 있는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당해 재량권행사가 (i) 재량권을 부여한 근거규범의 입법목적과 정신에 위반되는지, (ii) 헌법원칙이나 일반법원칙에 위반되는지, (iii) 동기에 부정함이 있는지 등을 그 구체적 판단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가) 입법목적과 정신의 위반

(ㄱ) 입법목적과 정신에의 기속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인정되는 재량은 법에 의하여 국가기관에 부여된 것이므로 재량을 부여한 근거되는 법규범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따라서 대통령이 국민투표부의에 관한 재량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는 위 재량권의 근거법규인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적합하도록 행사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입법목적과 입법정신 즉, 헌법 제72조의 제도적 취지에 적합하지 아니한 재량권의 행사는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으로서 헌법 제72조에 위반된다.

(ㄴ) 헌법 제72조의 제도적 취지

우리 헌법은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제를 원칙으로 하면서 헌법 제72조 및 제130조 제2항에서 국민투표에 의하여 국민이 직접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경우를 규정함으로써 직접민주제의 요소를 채택하고 있고, 이에 따라 헌법 제72조는 단순히 국민투표부의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만을 규정한 조문이 아니라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아울러 규정하는 우리 헌법상 통치구조의 제도적 근간을 규정한 조문이라고 이해된다(헌재 2004. 5. 14. 2000헌나1, 공보 93, 574, 592; 헌재 2003. 11. 27. 2003헌마694 등, 판례집 15-2하, 350, 360; 헌재 2001. 6. 28. 2000헌마735, 판례집 13-1, 1431, 1439 등 참조).

순수한 대의제에서는 대의기관이 추상적인 전체국민을 대표하는 대표위임관계에 있는데, 이는 구체적으로 선거민이 대의기관을 선거에 의하여 통제할 뿐 구체적인 사안에 관한 명령이나 지시를 할 수 없는 자유위임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직접민주제에서는 국민이 대표기관을 통하여 주권을 행사하는 경우 구체적인 국민들이 대표기관에게 기속력있는 구체적 명령을 행하고 그 명령이 이행되지 아니하는 경우 대표기관을 해임할 수 있는 명령적 위임관계를 상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순수한 대의제와 직접민주제를 절충한 통치구조를 채택하여 원칙적으로는 대의제를 채택하면서도 국민투표에 관하여는 직접민주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헌법이 상정하는 대표기관과 국민 사이의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정책의 영역에서는 대의제에 근간을 둔 자유위임관계이지만, 국민투표의 영역 즉,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정책에 관하여는 직접민주제에 근간을 둔 명령적 위임관계라고 하겠다.

따라서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정책에 관하여 대의기관은 구체적인 국민들의 현실의사에 기속된다. 대의기관은 구체적 국민들의 현실적인 의사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고 현실적인 의사와 다를 것이 예상되는데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

(ㄷ) 국민의 현실의사와 재량과의 관계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정책에 관한 위임은 명령적 위임이므로 주권자로서 위임자인 국민은 구체적인 사안을 특정하여 그 위임을 철회할 수 있다. 어떠한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 사안에 관하여 대의기관에 위임하였던 의사를 철회하고 국민이 직접 의사결정을 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현실적으로 위임철회가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국민들 다수의 의사가 위임을 철회하려는 의사 즉, 당해사안에 대하여 대의기관에 의한 결정을 하지 아니하고 직접 국민투표로 결정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대의기관이 이러한 의사를 무시하고 스스로 결정을 한다면, 이는 국민투표제도를 둔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 된다. 이는 당해사안의 본안에 대한 대의기관의 결정과 국민의 현실의사가 부합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같다.

한편,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는 정책에 관하여 대의기관은 국민의 현실의사와 다른 결정을 할 수 없으므로, 국민의 현실의사와 다른 결정을 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임의 권한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서 재량권의 외적 한계를 넘는 일탈이 된다. 나아가 국민의 현실의사가 실제로 확정되지는 않았으나 대의기관의 의사가 국민의 현실의사와 다르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대의기관이 국민의 현실의사로 추정되는 것을 무시하고 반대되는 결정을 한다면, 헌법 제72조의 입법정신과 입법목적에 반하여 재량권을 일탈 남용한 것이 된다.

(ㄹ) 수도이전문제에 관한 우리 국민의 현실의사

이 사건 법률이 제정 공포된 2004. 1.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주요국가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에 관하여 찬성과 반대의 의견이 균등하였고, 당시 여론의 추이는 찬성의견은 점차로 감소하고 반대의견은 점차로 증대하는 추세였던 사실, 당초 국민투표로 수도이전문제를 결정하겠다는 정치권의 약속이 있었을 때에는 찬성의견이 높았으나, 이 사건 법률의 법률안제출과 대통령의 발언 등으로 국민투표의 가능성이 점점 희박해짐에 따라 반대의견이 점증하게 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고, 2004. 6. 이후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투표에 의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여론이 60% 내외인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우리 국민은 주요국가기관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을 포함한 수도이전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을 대통령이나 국회와 같은 대의기관에 위임하지 아니하고 직접 결정하겠다는 위임철회의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고, 실체사안에 대하여도 신행정수도로 이전하는 것에 반대하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된다.

(ㅁ) 소 결

위와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헌법 제72조의 입법목적과 입법정신에 반하는 것으로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위헌적인 재량권행사이다.

(나) 헌법원칙이나 일반법원칙의 위반

많은 국민들이 원하고 있고 대통령 스스로도 국민투표에 불이겠다고 한 바 있는 사안에 관하여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고 국회의 입법으로 의사결정을 함으로써 오히려 더 큰 국론의 분열을 초래하게 된 점에 비추어 보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합리성을 결하였음 이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자의금지원칙에 반한다.

또 대통령은 후보자로서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공약하였다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차선책으로서의 국민투표의 실시를 약속하였으나, 이 사건 법률이 제정 공포된 2004. 1. 16. 직후까지도 국민투표의 실시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았던 사실, 그러나 2004. 4. 15. 제17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난 이후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사실이 인정된다. 위 인정사실에 앞에서 본 여론조사의 결과를 더하여 보면, 국민들은 수도이전문제에 관하여 이를 국민투표에 붙이리라는 신뢰와 대의기관이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행동하지는 않으리라는 신뢰를 가지고 있음을 추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이전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위와 같은 국민들의 신뢰를 배반하는 것이 되어 신뢰보호원칙에 반한다.

그렇다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헌법원칙과 일반법원칙에 반하는 것으로서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위헌적인 재량권행사이다.

(3) 국민투표부의의무

위와 같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것이 되므로, 대통령이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지 아니하고 적법하게 행사한다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는 선택 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다.

마. 청구인들에게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하여 국민투표권이 있는지 여부

(1) 국민투표권의 내용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참정권으로서 우리 헌법상 인정되는 기본권의 하나이다(헌재 2001. 6. 28. 2000헌마735, 판례집 13-1, 1431, 1439 참조).

기본권으로서의 국민투표권은 우선 헌법 제72조가 정한 바에 따라 자유민주적 국민투표제도의 보장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내용으로 한다. 따라서 예컨대, 법률로써 중요정책의 범위를 헌법 제72조가 예정하는 범위보다 축소한다든지 보통 평등 직접 비밀 자유투표를 배제하는 경우 등에는 국민투표권에 기하여 그 위헌성을 직접 현실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또 구체적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권도 포함한다. 다만, 구체적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은 대통령이 당해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의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정지조건부권리이기 때문에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행위가 있을 때 비로소 현실화됨이 원칙이다. 이렇게 현실화되는 국민투표권은 특정사안에 대하여 현실적으로 국민표결을 할 권리 등을 내용으로 한다.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나아가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의하여야 할 법적인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경우 당해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도록 요구할 권리를 포함한다. 대통령의 국민투표부의의무는 국민에 대한 의무이고, 따라서 권리자인 국민은 위 의무와 표리관계에 있는 국민투표부의요구권을 갖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통령은 위 정지조건을 성취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이고, 국민투표부의요구권은 위 의무의 이행을 요구하는 일종의 청구권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대통령이 부의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당해정책에 대하여 국민투표를 할 국민의 권리를 위법하게 침해하고 있는 상태를 적법한 상태로 돌리기 위한 수단적이며 절차적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국민투표부의요구권은 실체적 권리인 국민투표권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므로, 국민은 이러한 경우 대통령의 현실적인 부의행위가 있기 전에라도 국민투표요구권의 실체적 측면으로 구체적 사안에 대한 국민투표권을 보유한다. 즉, 이 국민투표권은 국민투표요구권을 그 한 내용으로 포함하는 권리라고 할 수 있다.

(2)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한 국민투표권

위와 같이 대통령이 어떠한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는 경우 국민은 대통령이 이를 국민투표에 붙이기 전에라도 그 정책에 대하여 국민투표부의요구권과 이를 포괄하는 국민투표권이 있는데, 위 라.(3)항에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으므로, 국민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도록 대통령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고,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이를 부의하기 전이라도 위 의사결정에 대한 구체적 국민투표권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국민의 한사람들인 청구인들은 위와 같은 내용의 국민투표권을 현실적으로 보유한다.

바.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는지 여부

(1) 이 사건 법률의 내용에 의한 침해

이 사건 법률의 제정 시행 이전에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이루어진 바 없다. 그런데 위 가.항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은 그 자체에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포함하고 있고, 한편, 이 사건 법률 부칙 제1조는 “이 법은 공포 후 3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라고 하여 별도의 국민투표를 실시함이 없이 3월의 기간이 경과하면 아무런 조건없이 이 사건 법률이 그 효력을 발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건 법률은 수도이전에 관한 국가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국민투표를 확정적으로 배제하고 법률의 방법으로 그 종국적 결정을 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위와 같은 국민투표의 배제는 법률의 시행 자체로써 필연적으로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하여 청구인들이 가지는 앞에서 본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2) 법률안제출의 흠 승계로 인한 침해

이 사건 법률의 법률안은 정부가 제출하였다.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은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 명의로 제출한다(헌법 제82조, 제89조). 한편, 이 사건 법률안은 앞에서 본 이 사건 법률의 내용과 같이 수도이전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국민투표권을 배제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정부가 이러한 내용의 법률안을 제출하였다는 것은 대통령이 수도이전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겠다는 의사결정을 공식적으로 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위 라.항에서 본 바와 같이 대통령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은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는 것이므로 위와 같이 국민투표를 실시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토대로 이 사건 법률의 법률안을 제출한 대통령의 행위는 재량권을 일탈 남용하여 헌법 제72조에 위반한 흠 있는 행위이다.

대통령의 법률안제출행위는 국가기관간의 내부적 행위에 불과하고 국민에 대하여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행위가 아니므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에서 말하는 공권력의 행사에 해당되지 않아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헌재 1994. 8. 31. 92헌마174, 판례집 6-2, 249, 265).

그러나 대통령의 법률안제출행위는 국회의 법률안의결행위와 더불어 법률제정의 핵심적인 절차를 이루고, 위 두 행위는 법률제정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하여 선 후로 존재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대통령의 법률안제출행위에 어떠한 흠이 있다면, 그 흠은 그 자체로 법률제정의 흠이라고 평가되거나 적어도 법률안제출행위의 흠이 국회의 법률안의결행위에 승계되어 결국 법률제정에 흠이 있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의 법률안을 제출한 대통령의 행위에는 헌법 제72조를 위반한 흠이 있으므로, 이 흠이 위 법률안에 대한 의결행위에 승계됨으로써 이 사건 법률 자체에도 같은 흠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어, 결국 이 사건 법률은 청구인들의 헌법상 기본권인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이 된다.

(3) 소 결

사. 관습헌법과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

청구인들은 이 사건 법률의 제정 시행으로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당하였다.

(1) 헌법 제72조 국민투표의 대상과 관습헌법

헌법 제72조 국민투표의 대상인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은 그것이 헌법사항인지 여부를 요건으로 하고 있지 않으므로, 당해정책이 헌법사항인지 여부를 가리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가사 다수의견과 같이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다.”라는 관습헌법규범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수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 제72조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앞에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대통령은 이를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으며 청구인들은 이에 대한 국민투표권이 있다.

(2) 헌법 제72조 국민투표권과 제130조 국민투표권의 관계

(가) 수도의 위치가 헌법규범이라면, 그 변경에 관한 의사결정 즉,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헌법개정권력에 의하여 헌법 제10장의 헌법개정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므로 헌법 제130조가 정한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고, 국민은 이에 상응하는 국민투표권을 갖는다.

(나) 한편, 궁극적으로는 헌법개정을 요하는 사안이라도 헌법개정안을 제안하기 전에 국민의 현실적 의사를 문의하는 내용의 국민투표를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실시할 수 있다. 이 국민투표에 의하여 정책의 방향이 결정된 다음 이를 기초로 구체적인 헌법개정절차를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헌법 제130조를 참탈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인정되는데, 헌법 제130조에 의한 국민투표가 실시된 후에는 더 이상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함이 무의미하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가 실시됨을 해제조건으로 하여 성립한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양 국민투표권 사이의 관계는 국민투표에 붙여질 정책사안이 헌법개정을 요하는 사안이라면 그것이 성문헌법사항이든 불문헌법사항이든 같다.

(다) 이에 더하여 특히 관습헌법규범의 경우에는 또 다른 관계가 있다.

관습헌법규범의 성립요건 중 하나인 헌법적 관행에 대한 국민의 법적 확신(다수의견이 말하는 ‘국민적 합의’에 해당한다)은 동시에 관습헌법규범의 존속요건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습헌법규범으로 성립되어 있던 것이라도 이에 대한 국민의 법적 확신이 상실되는 순간 당해 규범은 더 이상 헌법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국민의 법적 확신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헌법의 존부를 해석하는 헌법재판소의 권한과 임무이므로, 헌법재판소의 재판은 이를 확인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또 위와 같은 국민의 법적 확신의 존재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헌법 제72조가 정한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하므로(위와 같은 결정 자체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만, 가사 견해를 달리한다 하더라도 수도의 위치에 관한 국민의 법적 확신의 존재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이에 해당함에는 별다른 이론이 없을 것이다)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되고, 국민투표로 기존의 관습헌법과 배치되는 결정이 내려진다면, 국민의 법적 확신이 상실되었음이 확인되는 것이므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이를 확정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관습헌법규범과 다른 의사결정을 합헌적으로 하기 위하여서는 (i) 헌법 제130조 등의 헌법개정절차에 의하는 방법, (ii) 국민의 법적 확신이 상실되었는가를 확인하는 헌법 제72조 국민투표를 선행절차로 거치는 방법, (iii) 국민의 법적 확신이 상실되었는가를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의하여 확인하는 절차를 선행절차로 거치는 방법 등 중 어느 하나에 의하여야 한다. 국민은 위 (i)과 관련하여 헌법 제130조 국민투표권을, 위 (ii)와 관련하여 헌법 제72조 국민투표권을 기본권으로서 보유하고, 위 각 국민투표권은 서로 선택적인 관계에 있다.

(3) 이 사건 법률에 의한 국민투표권의 침해

이상을 종합할 때,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특별시이다.”라는 관습헌법규범이 존재하여 왔다는 것을 전제로 할 경우 국민의 한 사람들인 청구인들은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대하여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가 실시됨을 해제조건으로 하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과 선택적 권리인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은 위 각 국민투표권을 모두 배제하는 것이므로, 위 관습헌법규범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면, 이 사건 법률은 위 각 국민투표권 모두를 침해한 법률이 된다.

(4) 다수의견에 대한 의문점

(가) 다수의견은 관습헌법의 사멸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특별시라는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되었거나 소멸되었다는 사정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폐지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야 하고, 따라서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되었다는 논리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는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 소멸되었다는 사정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에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고 반드시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취지로서, 이에 따르면 헌법 제72조에 의하여 국민의 법적 확신의 존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란 오로지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 소멸되었음이 다른 방법에 의하여 미리 확인된 경우에 한한다는 결론이 된다. 그러나 다른 방법에 의하여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 소멸되었음이 확인된 경우에는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오히려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 그 변화 소멸여부를 확정하기 위하여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필요가 있게 된다.

나아가 국민의 법적 확신의 존부가 불분명한 경우를 넘어 그러한 법적 확신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추정되는 경우라도 국민의 법적 확신에 반하는 국가정책의 시행에 대하여 법적 확신의 상존을 공식화할 방법으로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가 사용될 수 있다. 즉, 국민투표는 그 결과가 법적 확신의 소멸로 결론이 날 경우뿐만 아니라 법적 확신의 상존으로 결론이 날 경우에도 시행될 수 있는 것으로서 국민투표의 결과에 대한 예상에 따라 국민투표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위와 같은 법적 확신에 대한 예상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다. 또한 법적 확신도 변할 수 있는 것이어서 어느 시점에서 확고한 법적 확신이더라도 추후 소멸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국민투표의 가능성은 의연히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의 법적 확신의 존부가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 등 합헌적인 공식방법에 의하여 확정되지 않는 한, 국민은 여전히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권을 선택적으로 보유한다.

그러므로 국민의 법적 확신이 변화 소멸되었음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드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야 한다는 다수의견의 논리에는 의문이 있다.

(나) 다수의견에 의할 때,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반드시 헌법개정절차에 의하여서만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후 대한민국의 수도의 위치가 변경될 때에는 반드시 헌법전에 명시하여야만 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가사 수도의 위치가 헌법규범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존재양식은 성문규범일 수도 있고 불문규범일 수도 있는데, 그 동안 우리 국민은 그 중 불문규범에 의한 규율의 방법을 택하여 왔다고 할 수 있다. 어떠한 헌법규범을 성문규범의 형태로 정하는가, 불문규범의 형태로 정하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헌법제정 개정권력만이 정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의견에 따른 헌법재판소의 이 사건 결정으로 수도위치에 관한 규범의 형태가 관습헌법규범에서 성문헌법규범으로 변경되는 결과가 된다면, 이는 헌법개정권력의 권한을 헌법재판소가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아니하다.

오히려 위 라.(2)항에서 본 바에 의할 때, 우리 국민의 현실의사가 바라는 국민투표는 국회의 의결을 전제로 하는 헌법개정절차로서의 그것 즉,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라기보다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임이 추인된다. 따라서 다수의견에 따라 위와 같은 결과가 된다면 이는 헌법개정권력의 의사에 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법적 확신이 상존하는 때에는 헌법개정절차에만 의하여야 하지만 그것이 소멸된 이후 수도위치의 변경은 새로운 관습헌법에 의하여 규율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수도위치에 관한 헌법규범의 형태를 성문규범으로 한정한 것이 아니라고 다수의견의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추후 법적 확신 소멸의 가능성 및 그 소멸을 확인할 국민투표의 가능성을 전제로 한 것인데, 헌법개정절차도 배제한 이 사건 법률이 법적 확신 소멸을 확인하기 위한 국민투표의 가능성도 봉쇄하였다면 이는 헌법 제130조의 국민투표권뿐만 아니라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도 아울러 침해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국민은 헌법개정절차에서 수도위치의 변경을 부결할 수 있는 것과 똑같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에서 법적 확신 소멸의 확인을 부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사건 결정에서의 다수의견의 판단으로 국민의 법적 확신이 상존한다는 것이 확정된 것이라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헌법개정절차의 선행절차로서 행할 수 있는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의 가능성이 있는 이상 이러한 가능성마저 배제한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은 분명하다.

(다) 헌법규범은 아니나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이 되는 사항에 관하여 국민투표권이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다수의견은 어떠한 방법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할 것인지 분명하지 아니하다.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다른 논리로 위 침해상황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이후의 유사문제에 대한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다.

(라) 보다 근본적으로 과연 수도의 위치가 언제나 헌법으로만 규율하여야 하는 헌법사항인지에 관하여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관습헌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이러한 문제에 관하여 헌법개정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현행헌법의 틀 내에서도 얼마든지 위헌적 상황을 교정할 방법이 있는데도 다수의견은 굳이 헌법개정의 방법을 논리적 전제로 하는 무리한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5) 소 결

가사 다수의견과 같이 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특별시라는 관습헌법규범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헌법 제72조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고, 다수의견과 같은 논리로 헌법 제130조 국민투표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에는 타당하지 않은 면이 있다.

아. 기본권침해의 정당사유가 있는지 여부

(1) 헌법 제37조 제2항이 국민투표제도에서 갖는 기능

청구인들이 기본권으로서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는 이를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컨대, 국민의 현실적인 의사가 어떠한 정책을 국민투표로써 결정하려는 것이라고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어서 일응 그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하는 것이 재량의 일탈 남용이 되어 대통령은 이를 국민투표에 붙일 의무가 있고 국민은 이에 대한 국민투표권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라도, 그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이지 아니함으로써 국민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하는 것이 헌법 제37조 제2항에 의하여 정당화되는 경우 즉, 기본권제한의 목적, 형식, 방법 등 그 요건에 합당한 제한에 해당할 경우에는 당해 국민투표권의 제한은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일부 개인들이 사사건건 국민투표권의 침해를 주장하며 국가정책의 위헌성을 다툴 우려는 순전히 기우에 지나지 아니한다. 국민투표권의 제한이 국회가 제정한 법률에 의하여 헌법 제37조 제2항의 요건에 맞게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헌법위반의 문제는 발생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2) 이 사건 법률의 정당성여부

이 사건 법률은 제1조에서 “이 법은 국가 중추기능의 수도권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시정하고 세계화와 지방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기 위하여 신행정수도를 건설하는 방법 및 절차에 관하여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의 강화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그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 가운데에는 국민투표를 거치지 아니하고 국회의 의결로써만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입법목적이 포함되어 있지 아니하고, 달리 국민투표권을 배제할 국가안전보장ㆍ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한 필요를 발견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제한한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할 수 없다.

자. 결론

이 사건 법률은 국민투표권을 배제하고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한다는 자체를 선언하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아니하다. 다만, 이 사건 법률 제2조 제1호, 제2호, 제6조, 제8조, 제12조, 부칙 제1조가 비교적 위와 같은 내용에 근접한 규정에 해당한다.

그러나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이 사건 법률이 국민투표권을 배제하고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한 것으로 해석되는 것은 위 조항들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법률 전체에서 합리적으로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서 특정된 조항들뿐만 아니라 이 사건 법률 전체가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고 할 것이다.

또 가사 위 특정조항들만의 위헌성이 확인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제외한 나머지규정들은 수도이전의 의사결정을 전제로 존재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이들만을 유효하게 시행할 수도 없기 때문에 이 사건 법률 전부를 시행할 수 없게 되어 그 전체에 대하여 위헌결정을 함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은 헌법 제72조가 보장한 기본권인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그 전체가 헌법에 위반된다 할 것이므로 나머지점에 관한 판단을 생략하고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7. 재판관 전효숙의 반대의견

가. 나는 이 사건 법률이 수도이전에 관한 의사결정을 포함하는 것이라는 점에 관하여는 다수의견에 동의하나, 수도의 이전이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하므로 이 사건 법률이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는 취지의 다수의견의 논지는 우리 헌법의 해석상 받아들일 수 없어 다음과 같이 나의 견해를 밝힌다.

(1) 우선 오늘날의 입헌주의 및 복지국가 헌법이론에서 과연 한 나라의 수도의 위치가 어느 정도의 헌법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수도의 소재지는 국가 정체성에 관한 중요한 사항이었으나, 오늘날의 입헌주의 헌법에서는 이것이 헌법의 본질적인 사항이라거나 국민주권의 원리상 국민이 직접 결정하여야 할 사항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렵다. 헌법은 국가 권력의 통제와 합리화를 통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실현하려는 것이 근본 목적이다. 즉 우리 헌법은 국가권력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려는 법치국가의 실현을 기본이념으로 하고 있다(헌재 1992. 4. 28. 90헌바24, 판례집 4, 225, 230). 수도의 소재지는 그러한 헌법의 목적 실현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러한 목적 실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항이라 보기 어렵다. 오늘날 국민들 간에 여전히 ‘정서적(情緖的)인 통일의 원천’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와 입헌주의를 주된 가치로 하고 있는 이상 수도의 위치 자체가 반드시 헌법제정권자나 헌법개정권자가 직접 결정하여야 하는 사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2) “서울이 수도”라는 관행적 사실이 다수의견이 말하는 “관습헌법”이라는 당위규범으로 인정되기 어렵다.

다수의견이 오랜 역사와 전통의 측면에서 상세한 자료를 통해 논증하고 있는 바와 같이 서울이 수도라는 사실이 오랫동안 우리 민족에게 자명하게 인식되어 온 관행에 속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하나의 법규범으로서 다수의견이 말하는 바의 법적 확신(“모든 국민이 우리나라의 국가구성에 관한 강제력 있는 법규범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다수의견이 타당하려면 그러한 법적 확신의 대상은 서울이 상징적 의미에서 주요 헌법기관의 소재지라는 면에서 수도이어야 한다는 당위의 형태여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실질적 의미의 헌법 중에서도 일반 법률의 상위에 있고 성문헌법과 동등한 효력을 지니는, 즉 헌법개정절차에 의해서만 개정되어야할 정도의 효력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법적 확신을 모두 인정하는 것은 수도이전 문제가 최근에 우리 사회의 주된 쟁점이 된 것을 감안하면 무리이다. 무엇보다도 이 사건 법률의 입법과정에서 여야 국회의원들은 동 법안에 대하여 압도적 지지를 하였는데, 동 국회의원들은 법률안 심사과정에서 수도이전 사안이 국민의 헌법적 확신을 지니는 헌법사항이라든가 그 개정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여야 하므로 자신들의 입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든가 하는 점에 관한 인식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다수의견은 “서울이 수도이다”라는 사실명제로부터 “서울이 수도여야 한다”는 헌법적 당위명제를 도출하는 데 있어서 법논리상의 비약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3) 성문헌법을 지닌 법체제에서,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 혹은 “특정 성문헌법 조항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

관습헌법이 인정될 수 있는 이유는 다수의견이 판시한 대로 “성문헌법이라고 하여도 그 속에 모든 헌법사항을 빠짐없이 완전히 규율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습헌법을 인정하더라도, 성문 헌법전은 헌법제정권자인 국민들이 직접 “명시적” 의사표시로써 제정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체계 중 최고의 우위성을 가지며, 그 내용의 개정은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는 점에서, 단지 관습헌법이라는 점만으로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할 근거는 없다. 헌법을 그와 같이 성문화한 것은 헌법이 예정한 국가권력의 통제와 인권의 최대한 보장을 객관적으로 다툴 수 없는 확고한 안정성을 가지고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성문헌법의 특징은 최고법규범으로서 모든 국가권력을 기속하는 강한 힘을 보유하는 것인데, 이는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수렴되었다는 점에서 가능하다. 관습만으로는 헌법을 특징화하는 그러한 우세한 힘을 보유할 수 없는 것이므로 성문헌법과 관습헌법이 동일한 효력을 가진다는 다수의견의 논증은 헌법적 근거가 없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헌법해석은 헌법으로부터 출발하여야 하며, 판례법의 형태로 나타나는 불문헌법 역시 헌법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성문헌법 체제에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한 보완적 효력만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성문의 경성헌법이 존재하는 한, 관습헌법 혹은 불문헌법은 성문헌법으로부터 동떨어져 성립하거나 존속할 수 없고, 항상 성문헌법의 여러 원리를 전개하고 완비되게 하며 계속 형성함으로써, 또한 항상 이들 원리와 조화를 이룸으로써만 성립하고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Konrad Hesse 저, 계희열 역, 통일독일헌법원론 (삼영사, 2003), 43쪽 (Rn. 34).

그렇지 않다면 헌법적 관행에 의해서 성문헌법이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성문헌법전보다 불문적인 헌법의 관행례가 우선하고 국가생활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결과가 된다. 허 영, 헌법이론과 헌법 (박영사, 2004), 41쪽.

그러므로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을 보완하는 의미에서만 인정될 수 있으며, 더구나 관습헌법으로써 성문헌법을 변경하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법리는 관습헌법의 내용이 헌법에 직접 규정되어야 할 정도로 중요한 “헌법사항”이라 하더라도 동일하다. 그러한 관습헌법의 존재로써 성문헌법의 내용을 변경시킬 수 있는 효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 이는 헌법적 안정성을 저해하고 성문의 경성헌법전을 둔 헌법제정권자의 의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들은, 설령 헌법제정시 자명한 사실이어서 성문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사항이 있더라도, 언제든지 관습으로 존재하는 그러한 헌법사항을 성문 헌법전에 수록할 수 있는 헌법개정권력을, 자신의 대표자와 국민투표를 통하여 행사할 수 있고, 이로써 성문헌법의 효력을 가지게 할 수 있다. 마치 법률에 규정되지 않은 한 아무리 처벌필요성이 있는 사항도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헌법에 규정되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법적 효력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4) 다수의견은 관습“법률”이 아닌 관습“헌법”은 “헌법”이므로 그 변경은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야 한다고 하나, 이는 형식적 개념논리에 집착한 것이고 실질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헌법은 성문헌법에만 헌법적 내용을 모두 수록하고 있지 않으며 때로는 법률이나 관습법의 형태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고, 그러한 내용을 통상 “실질적 의미의 헌법”이라 부른다. “관습헌법”이란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이 관습으로 규율되고 있다는 것을 뜻할 뿐이며, “관습헌법”이라고 해서 바로 “성문헌법”과 똑같은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성문헌법의 강력한 힘은 국민주권의 명시적 의사가 특정한 헌법제정절차를 거쳐서 나왔기 때문인데, 관습은 그러한 명시적 의사도, 특정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인식되기 어려운 관행의 존재와 국민의 법적 확신이라는 요소로 인정되는 것이다.

다수의견은 그러한 문제를 우회하여 성문헌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하고자, 관습헌법을 “반드시 헌법에 의하여 규율되어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 내지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사항으로서 법률에 의하여 규율하는 것이 적합하지 아니한 사항”에 한정하고 있으나, 우선 그러한 개념 한정은 “성문헌법을 보충하기 위해 필요한 관습헌법”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만들고, 오히려 앞으로 관습헌법을 인정하기 어렵게 한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한편 “법률에 대하여 효력상 우위를 가져야 할 만큼 헌법적으로 중요한 기본적 사항”은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며, 어떤 증명된 명제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법률로 규율하기 부적합한 사항”이라는 것도 헌법논리상 어떤 기준점을 찾기 어렵다. 법률로 규율할 사항이라도 헌법에 규정되어 있으면 헌법적 효력을 가지는 것이며, 헌법에 규정될만한 사항이라도 법률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다수의견은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사항으로서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수도, 우리말을 국어로 하고, 우리글을 한글로 하는 것을 거론하고 있으나 그러한 사항이 왜 법률에 규정되어서는 안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논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다수의견은 그러한 사항은 “국민이 스스로 결단하여야 할 사항”이라고 하나, 왜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국민의 민주적 의사를 수렴하여 결정해서는 안 되는지, 만일 헌법개정절차가 다른 나라와 같이 의회에서 이루어지고 국민투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그 결론이 달라질 것인지, 의문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기(태극기)와 한글의 공용문의 경우, 이 역시 국가의 정체성에 관한 기본사항으로서 헌법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한민국국기에관한규정(제정 1984. 2. 21. 대통령령 제11361호)과 한글전용에관한법률(1948. 10. 9. 법률 제6호)에서 규율되고 있는데, 그러한 규정 형식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도의 지정 역시 실질적 의미의 헌법사항으로서 법률 차원에서 규정하는 것을 헌법의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 헌법전에 기재할 사항 혹은 최고법의 효력을 가져야 할 사항의 범위는 논리적으로 도출되지 않으며, 수도를 법률에 규정하거나 수도이전이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 입법절차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우리 법체계의 모순 또는 성문 헌법규정의 의미훼손을 야기하지 않는다.

수도와 같은 관습헌법의 변경을 반드시 헌법개정이라는 입법형식으로 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헌법의 개정이란 헌법의 규범적 기능을 높이기 위하여 헌법이 정하는 일정한 절차에 따라 헌법전의 조문 내지는 문구를 명시적으로 고치거나 바꾸는 것을 말하며, 따라서 헌법의 개정은 “형식적 의미”의 헌법, 즉 성문헌법과 관련된 개념이다. 헌법제정권자가 헌법개정을 일반 법률절차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이유는, 헌법전에 규정된 내용이 주권자의 의지의 명시적 표명으로서 이를 함부로 변경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거꾸로 헌법에 들어있지 않은 헌법사항 내지 불문헌법의 변경은 헌법의 개정에 속하지 않으며, 우리 헌법이 마련한 일반적 대의민주주의 절차, 즉 법률의 입법으로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허 영, 위 헌법이론과 헌법, 73쪽 참조.

그렇다면 관습헌법이 헌법개정의 대상이라고 인정하기 위하여서는 “개념의 형식논리” 이상의 매우 엄격한 논리적 정당성이 있어야 할 것인데 다수의견은 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다수의견은 이 사건 법률이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입법한 것이라는 가정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르나, 만일 국회가 수도이전과 같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민의를 대변하지 않고 당리당략적으로 졸속으로 입법한 것이라면, 그것이 헌법과 국회법 절차에 위반되지 않는 한 그러한 입법의 궁극적 책임은,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여야 하는 대의기관에 불과한 이상, 그러한 입법부를 구성한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다수의견의 논지에 따르면 아무리 국회가 이 사건 법률 제정과정에서 공청회와 청문회 등 충분한 국민의사 수렴절차를 거쳤고, 국회의원 전원일치로 법률이 통과되었더라도, 헌법개정절차를 거치지 아니하였다는 형식적 이유만으로 위헌이 되는데, 그러한 결론이 타당하리라 보기 어렵다.

(5)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의 변경은 헌법개정에 의해야 한다면, 이는 관습헌법이 헌법이 부여한 국회의 입법권을 변경시키는 것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다수의견처럼 이 사건 법률이 관습헌법을 헌법개정절차를 통하지 않고 변경하는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관습헌법에 대하여 국회의 입법권보다 우월적인 힘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헌법은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제40조)고 규정하며, 헌법에 달리 규정이 없는 한 국회의 입법권은 포괄적 대상을 지닌다. 입법권의 주체는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대의기관이며,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의 선거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이 정한 절차와 내용에 따른 국회의 입법은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리하는 것으로서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영국에서 “의회주권”이 인정되고, 프랑스의 경우 의회에서 만든 법률은 국민의 ‘일반의사의 표현’으로 간주되었던 것은 국민과 의회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이전과 같은 헌법관습의 변경이, 별도로 이를 제한하는 헌법규정이 없는 경우에, 왜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한 것인지 실질적 이유를 발견하기 어렵다. 많은 나라에서 의회가 국민의 직접투표(국민투표) 없이 단지 법률안에서보다 가중된 정족수(통상 재적의원 과반수와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는데, 이는 의회가 다름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 국민의 주권을 대행하는 주된 국가기관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 법률은 투표의원 194인 중 찬성 167인(반대 13인, 기권 14인)으로 재적과반수와 출석 3분의 2 이상의 압도적 다수로 통과되었는데, 그러한 입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혹은 민의를 배신하였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헌법적 측면에서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아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한 결론은 관습헌법으로써 국회의 헌법상의 입법권한을 부인하는 것이고, 이는 헌법을 변경하는 것이 되므로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헌법제·개정절차를 통하지 않은 관습헌법에 성문헌법과 “동일한” 혹은 “다른 헌법조항을 변경시키는”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 이는 성문헌법 체계를 벗어나는 논리로서, 헌법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국민주권의 행사를 판례법상 인정하는 것인데, 성문헌법 체제하에서 국민주권의 행사는 그것이 저항권의 행사와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성문헌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국가기관이나 헌법재판소가 무엇이 진정한 국민의 의사인지를 확인하기 어렵고 국민들 간에도 특정 사안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있을 수 있으므로, 헌법이 객관적으로 규정한 제도화된 절차가 아닌 헌법 외적인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수의견은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인 것이다.”라고 하여 국민주권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나, 그러한 국민주권의 행사가 과연 어느 범위의 국민의 의사인지, 그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헌법제·개정절차에 버금가는 것인지가 불명확하며, 헌법이 명시적·객관적으로 제도화 해 놓은 방식이 아닌, 헌법해석에 의해서 그러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헌법에 제도화 되지 않은 방식으로 국민주권의 행사를 인정할 경우, 이는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 없으며, 오히려 국민의 법적 생활 및 국가의 헌법질서에 혼란을 가져오게 되는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아무리 사안이 중요하고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피해야 할 것이며,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문제는 적어도 그것이 국가의 위기상황에 관련된 것이 아닌 한 정치적 의사결정 구조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만일 이 사건 법률이 국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국민은 대의기관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전달시켜 법개정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며, 국회의원들이 당략적 차원에서 이를 무시해 버린다면 다음 선거에서 패배시킬 것이고, 현재로서는 결국 그러한 국회의원을 선출한 국민 자신들의 정치적 책임에 귀착될 뿐이다.

(6) 결론적으로 서울을 수도로 한 관습헌법의 변경이 반드시 헌법개정을 요하는 문제라고 할 수 없고, 현행 헌법상 국회의 입법으로 불가능하다고 볼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130조 제2항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

나. 한편 나는 수도의 이전은 중대한 국가정책이므로 신중한 여론 수렴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별개의견의 취지에는 동감하나, 이 사건 법률이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권을 침해하였다는 논지는 받아들일 수 없어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힌다.

별개의견은 수도이전 문제에 대하여 대통령이 헌법 제72조에 의한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않은 것은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므로 국민투표권을 침해한다고 본다.

그러나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의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재량을 주고 있는(헌재 2004. 5. 14. 2004헌나1, 판례집 16-1, 609, 649 참조) 이상,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대통령의 그 재량 여부가 달라진다고 해석할 수 없다.

헌법 제72조가 대통령에게 과도한 재량을 주고 있어 국민주권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는 효과적인 제도인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현행 헌법상 위와 달리 해석할만한 근거가 없다.

위 조항이 대통령에게 국민투표에 부칠 것인지 재량을 주고 있는 이상, 동 조항의 국민투표권은 대통령이 부의한 경우에 비로소 행사가 가능한 권리를 뜻할 뿐이고, 이 권리의 보호범위를 대통령에게 특정 중요 정책사안에 대한 국민투표 부의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까지 넓힐 수 없다. 또한 그러한 재량은 헌법이 직접 부여한 것이므로, 행정법상의 재량권의 일탈·남용 법리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와 같이 헌법 제72조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사항을 국민투표에 부의했다면 이는 제72조의 명문 규정(“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따른 요건을 위반한 것이지, 재량권의 일탈·남용은 아닌 것이다. 또한 우리 헌법은 국민에 의하여 직접 선출된 국민의 대표자가 국민을 대신하여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대의제를 기본으로 채택하고 있는바, 그러한 대의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이상, 수도이전과 같은 사안이라고 해서 반드시 국민의 직접 투표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볼 헌법적 근거도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행정수도의 이전에 관한 정책에 대하여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를 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국민투표권이 행사되지 못했더라도, 이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 침해될 가능성은 없다.

다. 이상과 같은 이유에서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침해 주장은 그러한 권리의 침해가능성 자체가 인정되지 않으므로 부적법하다. 청구인들이 이 사건에서 주장한 다른 기본권의 침해 주장 역시, 여기서 상론하지 않으나, 기본권 침해의 자기관련성, 직접성 혹은 현재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 결국 이 사건은 “기본권 침해”를 구제하는 최후적·보충적 수단인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본안판단을 하기에 부적법한 것이다.

2004. 10. 21

재 판 장 재 판 관 윤 영 철

재 판 관 김 영 일

재 판 관 권 성

재 판 관 김 효 종

재 판 관 김 경 일

재 판 관 송 인 준

재 판 관 주 선 회

재 판 관 전 효 숙

주 심 재 판 관 이 상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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