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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서 ‘대권 전초전’… 불출마로 ‘一退二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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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지서 ‘대권 전초전’… 불출마로 ‘一退二進’

김준일 기자 , 강성휘 기자 입력 2020-02-15 03:00수정 2020-02-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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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잠룡들의 총선 정치학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2일 서울 용산역에서 종로 출마 선언을 했고,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7일 영등포 당사에서 종로 출마를 선언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은 지난달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면서 불출마 의사를 밝혔고,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은 9일 국회에서 불출마 선언을 했다(왼쪽 사진부터). 동아일보DB
유달리 한국 정치에선 험지 출마 또는 불출마를 통한 ‘자기희생’이 강조, 때로는 강요된다. 매번 선거마다 당 지도부나 대중은 중진 의원들에게 오래 닦은 터전을 떠나 당선이 어려운 험난한 땅, ‘험지(險地)’에 출마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혹은 스스로의 ‘정치적 몸집’을 불리기 위한 수단으로 험지 도전 카드를 사용하는 정치인도 속속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의 서울 종로 출마나 새로운보수당 유승민 의원과 국민의당(가칭) 안철수 창당준비위원장의 불출마도 크게 보면 이런 범주 안에 있다.

험지 출마는 정치인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줄 가능성이 더 크고, 불출마는 영원히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는 선택이다. 하지만 험지에서 당선되거나 불출마 후 재기한다면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가 된다. 어려움을 극복한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 되면 확고한 팬덤이 형성된다. 그런데 대체로 이런 모험을 선택하는 야심가들의 시선은 한 곳에 머물러 있다. 바로 대권이다.

○ 종로 승리는 곧 대권… ‘내려놓기’ 혈전



21대 총선을 두 달 앞둔 현재 민주당 김두관 의원의 경남 양산 투입론이나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의 서울 ‘한강벨트’ 출격론 등이 앞다투어 나오고 있다. 여전히 ‘자기희생’ 스토리 만들기가 여야의 중요한 선거 전략이라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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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한국당 황 대표의 경우 험지인 서울 종로에 출마하고서도 그 출발에선 일단 감동 스토리로 시작할 타이밍을 놓쳤다. 황 대표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언급한 지 35일이 지난 7일에야 종로 출마를 결정했다.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 1위 이 전 총리가 지난해 말 일찌감치 종로를 점찍자 언론들은 곧바로 2위 주자 황 대표를 지목하며 ‘종로 출마’ 여부를 묻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국당은 수도권이면서도 당선이 가능한 지역을 검토하며 여러 지역구를 헤맸다. 원내 입성을 기반으로 대선 교두보를 마련한다는 플랜을 짜고 있던 황 대표 진영에선 압도적 지지세를 보이는 이 전 총리와 굳이 맞붙어 패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결정이 길어지자 ‘겁쟁이 프레임’에 빠져버렸고, 결국 당 내에서도 “사실상 선택의 여지없이 ‘종로 바닥’으로 나앉게 됐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이런 시선을 염두에 둔 것인지 황 대표는 유독 ‘자기희생’을 강조했다. 출마 선언 당일 황 대표는 “내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 “천 길 낭떠러지 앞에 선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만시지탄이지만 어쨌든 ‘당선 가능한 다른 험지’를 택하지 않고 종로 출마의 결단을 내렸기 때문에 황 대표는 ‘대선행 모험 열차’의 뒤칸에라도 가까스로 타게 됐다. 당의 한 관계자는 “‘죽었다’ 생각하고 뛰다 보면 지지율 격차를 좁혀갈 수 있고, 막판 ‘역전 드라마’를 쓴다면 바로 대선행 고속도로가 열릴 것”이라고 희망에 찬 전망을 했다.

다소 결이 다르지만 당이 주는 부담을 떠안고 격전지에 출마하는 것은 민주당 이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전남에서만 내리 4선을 한 뒤 전남도지사를 지낸 이 전 총리를 둘러싸고는 정치권에선 ‘호남 후보 한계론’ 등 네거티브 프레임도 제기되고 있다. 이 전 총리로선 ‘종로 대첩’에서 승리한다면 이런 프레임들을 일거에 타파할 수 있다. 종로 출마가 거론되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퇴각하고 이 전 총리가 종로에 등장한 배경엔 본인뿐 아니라 여권 내부의 차기 대선 플랜이 깔려 있지 않을 수 없다.

○ 노무현식 정치실험

거듭된 험지 출마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대권을 거머쥔 ‘교본’이 된 인사는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양지’ 부산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민주자유당행을 거부한 뒤 1992년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합당한 ‘민주당’으로 부산에 출마하니 졸지에 험지가 돼 낙선했고, 1995년 부산시장 선거에서도 떨어졌다.

와신상담 끝에 1996년 총선에 서울 종로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은 양대 정당 후보(YS의 신한국당 이명박 후보와 DJ의 새정치국민회의 이종찬 후보) 사이에 끼인 한낱 ‘험지 모험가’에 불과했다. 1998년 DJ의 국민회의에 입당한 뒤에야 종로 보궐 선거에서 어렵사리 부활하며 6년 만에 국회로 돌아왔지만 2000년 16대 총선에선 “지역주의 타파”를 주장하며 돌연 험지 부산으로 되돌아가는 도전을 했다가 또 낙선했다. 당장은 실패였지만 길게는 ‘바보 노무현’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의 무모한 도전 속에서 진정성과 신념을 본 사람들 사이에 팬덤이 형성된 것. 그렇게 만들어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노사모)은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냈다.

○ ‘DJ 모델’도 여전히 각광

이후 ‘제2의 노무현’을 향한 도전이 이어졌다. 경기 군포에서 내리 3선을 했던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고향이긴 하지만 새누리당의 텃밭 대구 수성갑 출마를 선언했다. 김 의원은 출마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마지막 과제인 지역주의를 넘어서겠다”면서 “김대중 노무현 제정구의 간절한 꿈, 오랜 꿈, 전국 정당의 꿈 반드시 이루겠다”고 했다. 그 역시 첫 도전에선 낙선이란 쓴맛을 봤다. 하지만 졌지만 이긴 싸움이었다. 40.4%라는 적지 않은 득표를 한 그의 몸값은 치솟았고, 2016년 두 번째로 대구에 도전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가 20여 년간 지켜 온 울산을 떠난 과정도 비슷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요청에 생소한 서울 동작을 지역구로 올라왔다. 정 전 대표는 직전 여당 대선 후보였던 정동영 의원과 맞붙어 승리하면서 한나라당에서 입지를 다졌고, 오랜 무소속 정치인이었던 그가 여당 대표직까지 맡게 됐다.

정 전 대표나 황 대표, 이 전 총리는 이런 ‘노무현 모델’을 따르고 있지만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반복하며 ‘죽어야 사는’ 길을 선택한 ‘DJ 모델’을 추구하는 정치인도 있다. 지난달 19일 1년 4개월간의 휴식기를 마치고 국내로 돌아온 안철수 위원장은 돌연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며 뜻을 함께하는 국민의당 인사들의 많은 당선을 목표로 제시했다. 유 의원은 황 대표의 종로 출마 선언 이틀 뒤인 9일 불출마를 선언하며 보수통합을 위한 자기희생을 강조했다. 두 사람의 ‘자기 내려놓기’ 행보에 대해 정치권 누구도 마냥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권 관계자는 “자기 불출마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아 원내 우군들을 진입시킨 뒤 이를 토대로 대선이라는 더 큰 꿈을 이루는 과정에 있다”고 해석했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는 얘기다.

여권에서도 ‘제도권 정치 은퇴 선언’을 한 지 2개월 만에 “호남 선대위원장을 맡아달라며” 민주당의 공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임 전 비서실장 역시 ‘DJ 모델’로 들어서는 초입에 서 있다.

○ ‘박근혜 모델’ 노리는 홍준표, 김태호

최근 노무현 모델이나 DJ 모델을 따라 하는 정치인이 많아지면서 험지 출마와 불출마가 주는 감동이 작아졌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선에서는 당선이 가능한 지역에 도전한 뒤 원내와 중앙정치 무대에서의 승부를 통해 대선을 노리는 이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수년째 원외에 있는 한국당 홍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최고위원은 이미 지난해부터 ‘영남권 출마’ 또는 고향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홍 전 대표는 2017∼2018년 금배지 없이 당 대표직을 수행할 때 소속 의원으로부터 “원외 당 대표가 왜 의원총회에 들어오느냐”는 소리를 들으며 수모를 당했다. 이에 홍 전 대표는 당시 “내 반드시 원내로 돌아온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국회라는 중앙정치의 핵심에서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여야 의원들과 섞이며 원내외 ‘내 사람’을 만들어 놓지 않고선 대선 경선과 본선을 치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홍 전 대표는 서울에서만 4선을 했지만 이번엔 비교적 양지(陽地)인 고향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에 출사표를 냈고, 지금은 대선에서 맞붙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 출마도 검토 중이다. 김 전 최고위원도 과거엔 당의 요청으로 험난한 싸움이었던 2011년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와 2018년 경남도지사 선거에 도전해 승리하기도 했고 지기도 했다. 그런 그도 원외에서 4년 동안 유학 생활 등 산전수전을 겪은 뒤엔 이제 고향 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 선거를 준비 중이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모델’을 꿈꾸는지 모른다. 박 전 대통령은 1998년 국회에 입성한 이래 내리 5선을 하면서 불출마나 험지 도전을 전혀 선택하지 않았다. 원내에 있으면서 당 대표,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맡아 꾸준히 친박(친박근혜) 사단을 양성했다. 이명박 정부 때 친이(친이명박)계들과 ‘세종시 수정안 본회의 표대결’을 펼치며 ‘여당 내 야당’ 이미지를 구축한 뒤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도 박 전 대통령이 원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준일 jikim@donga.com·강성휘 기자
#국회의원 총선거#종로#이낙연#황교안#안철수#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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