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 논리에 휘둘려 ‘고무줄’로 변질된 재정준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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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025년부터 국가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통합재정수지 비율은 ―3% 이내로 관리하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어제 이런 내용의 재정준칙을 담은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정준칙은 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채무 비율 등을 정한 규범으로, 이제라도 정부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5년마다 국회 동의 없이 시행령으로 한도를 바꿀 수 있게 한 데다, 경제위기 시에는 예외를 둬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2025년 시행하면 정작 나랏빚이 급증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기재부는 당초 8월에 재정준칙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다 10월까지 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코로나19로 확장 재정을 펴야 하는데 재정 운용에 제약을 받는다’며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야당 시절 “재정건전성의 마지노선인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 40%를 넘었다”며 박근혜 정부를 비난했고 재정건전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일부 의원들이 재정준칙 도입 자체를 반대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여당의 주장처럼 나라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경기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예산을 퍼붓다가는 경기는 못 살리고 빚만 늘어나 정작 필요할 때 재정을 쓰지 못하게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을 비롯한 세계 92개국이 재정준칙을 마련해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이유다. 독일이나 프랑스처럼 헌법이나 법률에 재정준칙을 못 박은 나라들도 많다.

최근 몇 년간 한국의 국가채무 급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아직은 재정 상황이 괜찮다지만 나랏빚의 증가 속도가 너무 빠르다. 작년에 GDP 대비 37.7%였던 국가채무 비율은 올해 43.9%로 급등했다. 이런 추세라면 2030년에는 75.5%로 치솟으리라는 것이 국회 정책예산처의 전망이다. 정부 여당의 선심성 재정 지출을 막고 고삐 풀린 국가채무를 다잡으려면 실효성 있는 재정준칙이 필요하다. 국회에서 꼼꼼히 따져 실질적 구속력이 있는 재정건전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재정법#재정준칙#국가채무 급증#g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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