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결국 WHO ‘돈줄’ 끊었다…분담금 집행 전격 중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5일 0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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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현지 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부실 대응과 중국 편향성을 문제 삼아 미국의 분담금 집행 중단을 지시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대응 최전방에 서 있는 국제기구의 ‘돈줄’을 전격적으로 끊어버린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코로나19 브리핑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pandemic·대유행)에 대한 WHO의 잘못된 대응에 대한 검토가 끝날 때까지 WHO에 대한 자금 집행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그는 “WHO는 제때에 바이러스 정보를 확보하고 투명한 방법으로 이를 공유하는 등 바이러스 대응에 대한 기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했다”고 이유를 들었다. “WHO가 중국에서 나오는 보고들을 더 잘 살펴보고 다른 나라들과 커뮤니케이션 했더라면 바이러스를 차단하고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며 WHO의 투명성 결여와 중국 편향성 등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그는 “WHO는 이런 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미국의 분담금 집행 중단이 응분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미국은 그동안 WHO에 관대하게 지원해 왔지만 이제는 그것이 최선의 효용인지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우리가 그들을 신뢰할 수 없다면 우리나라는 공중보건의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WHO의 의미 있는 개혁을 위해 그 조직에 계속 관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WHO 사무총장의 사퇴를 의미하거나 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WHO의 문제점을 재차 반복하면서 즉답을 내놓지 않았다.

전 세계 194개 회원국을 두고 있는 WHO의 2018~2019년도 예산 규모는 약 60억 달러. WHO는 이 예산으로 바이러스 감염을 비롯한 질병의 추적 및 분석, 정보 공유, 국가별 대응 자문, 백신 연구 개발 등의 활동을 해왔다. 미국은 WHO 회원국 중 가장 많은 분담금을 부담하고 있는 국가로, 규모가 연간 4억~5억 달러에 이른다. 미국이 분담금 집행을 중단하면 WHO 자금 지원의 10% 가까이 끊기게 되는 것.

WHO가 코로나19 발병 이후 낙관적 평가와 늑장 대응 논란에 시달려온 것은 사실이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며 언론이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는데도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다 3월 11일이 되어서야 팬데믹을 선언했다. 중국의 대응과 관련해서는 “중국의 야심차고 발 빠른 대응 덕분에 위기를 피했다”고 치켜올린 반면 1월31일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발 입국자 차단 조치에 대해서는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지원 사격에 힘입어 지금의 자리에 오른 테워드로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중국의 눈치를 보며 과학이나 의학보다 정치적 계산을 앞세웠다는 비판도 거셌다. WHO도 “발병 초기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세계 각국이 효과적으로 대응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분담금 전액의 집행을 전격 중단한 트럼프 대통령 또한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이날 6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 수는 전날 대비 2400명 이상 증가해 2만6047명에 달한다. 발병국가인 중국을 넘어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모두 세계 1위에 올라 있다. 민주당의 크리스 머피 상원의원(코네티컷)은 “백악관은 대통령이 바이러스 대응 초기에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떠넘길 희생양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미 의회에 WHO의 분담금 내역이 포함돼 있는 연방예산 지원안을 보내놓은 상태. 미국은 의회에 이를 무효화할 것을 요청할 수 있다고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2017년 유엔에 대한 분담금 중 2억8500만 달러를 삭감할 당시 비슷한 방식을 취한 적이 있다. 미국 우선주의와 신고립주의를 앞세우며 다자적 국제기구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온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도 WHO의 분담금을 이미 줄여놓은 상태. CNN방송에 따르면 2021년 예산안에서 6500만 달러가 삭감돼 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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