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가계경제 ‘흔들’…10년 이상 납입 보험까지 해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9일 17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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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서 아이스크림 도소매업을 하는 A 씨는 최근 파산신청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며 거래처가 끊기고 가게를 찾는 고객도 급격히 줄어 더 이상 사업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해져 가족 명의까지 포함해 월 50만 원씩 10년 이상 납입했던 보험까지 모두 해지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로 가계경제가 흔들리면서 미래를 위한 안전판인 보험까지 깨는 사람들이 크게 늘고 있다. 지난달 보험사들이 지급한 해약 환급금은 3조2000억 원을 넘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준을 나타냈다. 급전이 필요해 보험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거나 은행 예적금을 깨는 서민들도 늘고 있다.

● 빠듯한 살림에 손해 감수하고 보험 해지


9일 생명보험협회와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삼성생명·한화생명·교보생명·신한생명 등 4개 생보사와 삼성화재·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보·DB손보 등 5개 손보사의 3월 장기해약환급금은 3조2007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3월 2조4749억 원보다 7258억 원(29.3%)이나 늘었다.

지난달 주요 손보사의 환급금은 1조1593억 원으로 전년 동월 8767억 원보다 2826억 원(32.2%)이 늘었다. 생보사 역시 지난달 2조414억 원으로 전년 동월 1조5982억 원에 비해 4432억 원(27.7%)이 증가했다.

코로나19의 영향이 본격화된 2월부터 눈에 띄는 증가세를 보였다. 1월에만 해도 2조3849억 원으로 1년 전보다 4.3% 줄었다. 하지만 2월에는 1년 전보다 19.4% 증가한 2조5013억 원으로 늘었고, 3월에는 3조 원을 넘어섰다.

보험은 가계의 금융상품 중 최후의 보루로 꼽힌다. 중도에 해약할 경우 보험사 운영비와 해약공제액 등이 제외돼 납입한 원금보다 적은 금액을 돌려받게 된다. 나중에 보험에 다시 가입하려고 해도 보험료가 더 비싸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당장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이 같은 손해마저 감수한 채 해약에 나서는 것이다.

서울 소재 봉제공장에 다니던 50대 여성 B 씨도 고민 끝에 지난해 말 가입했던 건강보험을 해지했다. B 씨는 “코로나19 여파로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서 보험료가 부담돼 눈물을 머금고 깰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약관대출 받고, 예적금도 깬다

대표적인 ‘불황기 서민 대출’로 불리는 보험 계약대출(약관대출)도 증가 추세다. 약관대출은 자신이 낸 보험금을 담보로 하며 별다른 심사 절차가 필요 없다. 1시간 내에 입금될 정도로 빠르게 처리되는 특징도 있다.

주요 생보사에 따르면 1월 1조6248억 원 발생한 약관대출은 2월(1조7744억 원)과 3월(2조1971억 원)을 거치면서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3월의 경우 전년 동월 대비 25.2%나 증가했다.

예적금을 중도에 깨는 사람도 늘었다.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 등 5개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개인 명의 정기 예적금 중도해지 건수는 80만721건으로, 1년 전(55만8218건)보다 43.4% 증가했다. 금액(9조3433억 원) 역시 작년 3월(5조7794억원)보다 61.6% 늘었다.

전문가들은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빚만 계속 쌓이면서 한계에 부닥친 가계가 늘고 있다는 신호라며 우려하고 있다. 김영세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형적인 ‘뱅크런’(예금대량인출)의 한 사례”라며 “은행 예적금의 경우 이자 수익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보험 해약은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만큼 가계 경제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동혁 기자 hack@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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