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 속도조절 실패… 빨리가려다 일자리 줄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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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노믹스 설계참여 학자 4인의 평가
“민간 일자리 확대 밑그림과 달리
최저임금 급격 인상-주52시간제, 다른 정책과 보조 맞추지 못해
양극화 해소 정책 방향은 긍정적”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를 어느 정도 속도와 강도로 추진할지 조율하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었다.”(이한주 경기연구원장·전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경제1분과위원장)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인 ‘J노믹스’ 설계에 참여한 4명의 경제학자들은 11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가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추진하면서 속도 조절에서 미흡했다는 진단을 내놨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제도 적용 과정에서 민간 일자리가 줄고 경제 활력이 떨어지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음을 시인한 것이다. 최저임금 등 소득주도성장의 일부 정책이 다른 정책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속도위반을 했다는 것이다.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위에서 활동한 이한주 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잘하면 총수요 확대로 연결되지만 공급을 감소시킬 수도 있다”며 “국정기획위에서 논의가 많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점검이 조금 더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소득주도성장론의 출발점인 ‘일자리 확대’ 분야는 제쳐놓은 채 기업에 큰 영향을 주는 정책이 급하게 추진되는 바람에 정책 전반이 꼬였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 정부 싱크탱크인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기업 경쟁력을 높여 일자리를 늘리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치적으로 민감하다는 점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빠른 길을 택했고 오히려 일자리가 줄었다”고 했다. 민간 영역의 일자리 공급이 위축된 상황에서 분배 중심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기업 부담이 커졌고 그 결과 일자리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진단이다.

또 다른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에서 일자리추진단장을 지낸 김용기 아주대 국제학부 교수는 “초기 경제정책 방향은 단순히 분배 확대가 아닌 일자리를 늘리는 방식으로 소득을 주도하는 개념이었다”고 했다. J노믹스 경제정책의 한 축인 ‘소주성’이 임금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려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고용 확대로 임금 수준을 자연스럽게 높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었다는 것이다.

경제1분과위원을 지낸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1만 원도 못 하고 노동시간도 왜 유예를 줬냐며 진보 진영에서 개혁 속도가 느리다는 비판이 나오는 등 양쪽에서 불만이 있다”고 했다.


▼ “시장 활력 떨어뜨린게 가장 잘못… 회복 쉽지 않아” ▼

“소주성 속도조절 실패”

J노믹스 설계에 참여한 경제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방향은 대체로 높게 평가했다. 기득권층이 공고해지고 불평등이 커진 상황을 더는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용기 교수는 “시장은 불공정 행위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없으면 작동되지 않는다”며 “(J노믹스는) 대선 이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논의돼온 정책적 지향점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세은 교수는 “공정경제와 혁신경제는 인프라, 제도에 대한 부분이라 단기간에 빨리 성과를 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근로장려금 확대 등 복지제도에서는 이미 성과가 나고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가 분배와 성장이라는 두 갈래 길에서 우왕좌왕하면서 소득 양극화가 심해진 반면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릴 기회마저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이익을 노동자에게 나눠주는 데 집중하다 보니 구조개혁을 통한 기업 경쟁력 강화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J노믹스의 부정적인 면이 초래한 부작용을 금방 되돌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우울한 진단도 나왔다.

김광두 원장은 “생산성 향상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책이 진행돼 기업 부담이 늘어 경쟁력이 떨어지고 다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며 “경제 주체의 의지를 죽여 시장의 활력을 떨어뜨린 점이 정부가 가장 잘못한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멧돼지가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면 작물만 손해 보는 게 아니라 밭 자체가 엉망이 된다”며 “경제정책을 매우 짧고 정치적인 견지에서 추진해 쉽게 회복하기 힘든 상황을 초래했다”고 했다.

경제정책의 양 날개 중 한 축인 혁신성장의 성과에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구상 초기에는 사회 전반적인 혁신으로 경제 성장을 꾀한다는 의미로 만들어졌지만 J노믹스의 정책이 집행되는 과정에서 불협화음을 빚으며 의미가 협소해지고 속도가 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이한주 원장은 “혁신성장은 산업구조와 교육 등을 아우르는 소셜 이노베이션(사회 혁신)이 핵심인데 마치 4차 산업혁명과 규제 개혁이 전부인 것처럼 의미가 줄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시하는 균형 발전이 미흡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세은 교수는 “부울경 제조업 기반이 와해돼 제조 역량이 줄어드는데 지역에 위기지역 대응 예산이나 구조조정 지원 프로그램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세종=주애진 jaj@donga.com·송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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