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조선의 꿈…‘김한솔’ 망명정부 [하태원 기자의 우아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8일 14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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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추적한 자유조선의 행동은 더 치밀하고 훨씬 조직적이었습니다. 김정은 정권의 아픈 데를 콕 찍어내는 실력은 북한의 내부 시스템을 거의 완벽하게 이해하는 내부자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논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했습니다.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급사(急死)로 3대 세습정권을 물려받은 뒤 8년간 수많은 당‧정‧군(黨政軍) 엘리트를 숙청하면서 독재 권력을 공고히 한 것으로 여겨졌던 김정은. 하지만 이제 독재 권력에 대한 저항은 공식적인 반체제 운동으로 옮아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그토록 능숙하게 사용했던 비대칭적(asymmetrical) 위협이 거꾸로 김정은 위원장을 겨누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匕首)가 된 것입니다.

“평양 심장부에 자유조선 지도자가 있다”

채널A의 취재에 응한 ‘관련자’들은 자유조선의 실체에 대해 “기존 탈북자 지원 단체와는 차원이 다른 국제적 네트워크”라고 성격 규정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 내부에서 실질적인 지도부가 활동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증언을 했습니다.

자유조선은 잇따라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도발’에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페인트 테러를 한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훼손된 김일성 김정은 초상화, 습격당한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
자유조선은 잇따라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도발’에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페인트 테러를 한 주 말레이시아 북한대사관, 훼손된 김일성 김정은 초상화, 습격당한 주 스페인 북한 대사관.

자유조선은 최근 김정은 정권에 수치심을 경험하게 해주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초상화를 깨트리고 해외 북한대사관 외벽에 ‘페인트 테러’를 한데 이어 동상을 훼손하거나 주요 혁명사적지를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른바 백두산 밀영에 있는 ‘구호나무’를 불지를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투쟁을 할 당시에 새겨 놓았다는 조국광복 구호 등이 적힌 나무를 훼손한다는 것은 신격화를 시도하고 있는 김 씨 일가에 대한 심대한 타격으로 여겨집니다.

백두산 밀영의 구호나무. 김씨 일가의 항일운동 구호 등을 적어두었다.
백두산 밀영의 구호나무. 김씨 일가의 항일운동 구호 등을 적어두었다.

자유조선의 존재이유가 “김정은 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습니다.

망명정부 수립 이후 발급을 시작한 가상비자도 가볍지 않은 움직임 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암호화폐로 거래할 수 있게 했고 발급매수도 일단 20만개로 한정했습니다. 유효기간은 일단 2029년 3월 1일로 정했는데 향후 10년 이내에 김정은 정권을 전복시키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옵니다.

자유조선이 발행한 임시정부 비자. 유효기간은 2029년 3월 1일까지로 하고 있다.
자유조선이 발행한 임시정부 비자. 유효기간은 2029년 3월 1일까지로 하고 있다.


“자유조선이 태동한 것은 장성택 처형 직후”

2017년 2월 김정남 사망 직후 김한솔의 보호자를 자처하며 세상에 그 존재를 각인시킨 자유조선. 당시만 해도 천리마민방위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는데, 활동시작 시점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조직이 결성된 계기는 김 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무자비한 처형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한 소식통은 “김한솔 도피자금으로 사용한 돈은 12만 달러 이상”이라며 “자유조선이 급조된 조직이라면 1억이 넘는 돈을 어떻게 순식간에 마련할 수 있었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김정은을 ‘독재자’라고 부른 김한솔

김정은 위원장의 다음 타깃은 자유조선의 보호를 받고 있는 김한솔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합니다. ‘스탠딩 오더’ (명령권자가 취소하지 않는 한 계속 유지되는 명령)에 따라 잠재적 권력투쟁 경쟁자인 이복형 김정남을 잔혹하게 살해했듯이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는 김한솔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김정남(앞줄 오른쪽)이 어린 시절 아버지 김정일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1981년 평양. 여성중앙 제공
김정남(앞줄 오른쪽)이 어린 시절 아버지 김정일과 함께 찍은 가족 사진. 1981년 평양. 여성중앙 제공

실제로 김한솔은 김정은의 역린(逆鱗)을 건드릴 만한 말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보스니아 국제학교에 유학중이던 김한솔은 핀란드TV와의 인터뷰에서 “할아버지와 삼촌 사이의 일이기 때문에 삼촌이 어떻게 독재자가 됐는지 모른다”며 “언젠가 북한으로 돌아가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통일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했습니다. 김정은을 ‘독재자(dictator)’라고 표현한 것이 눈에 띕니다.

김한솔은 지도자가 될 수 있나?

두 달여간의 취재를 통해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을 얻기는 어려웠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대외적으로 자유조선의 간판으로 추대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은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김한솔은 상징성이 있다”며 “뭔가 일을 도모할 때 앞장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상황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세습을 부정하는 자유조선이 또 다른 ‘백두혈통’인 김한솔을 옹립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자가당착(自家撞着)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국가정보원에서 북한관련 업무를 다뤘던 김정봉은 “자유조선의 대표로는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3대 세습정권 반대를 얘기하면서 4대 세습정권을 옹호하는 셈”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한솔과 자유조선, 그리고 미국

자유조선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김한솔. 그의 존재가 미국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에이드리언 홍의 스페인 북한대사관 습격사건으로 부정할 수 없는 ‘팩트’로 굳어져 가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어쩌면 한국정부의 소홀한 관리 속에 말레이시아에서 허무하게 독살 당한 김정남. 미국 정부로서도 이번 만큼은 김한솔의 운명을 ‘국제테러’가 좌지우지 하도록 방관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굳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김한솔이 미국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는 이유입니다.

하태원 채널A 보도제작팀장(부장급·정치학 박사수료)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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