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보다 더 무서운 건 마음 속 바이러스”[전승훈 기자의 도시산책]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31일 14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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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화가’ 김인중 신부

지난 2월말. 한국에서 코로나가 맹렬하게 늘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재불(在佛) 화가이자 프랑스 도미니코수도회 소속 신부인 김인중 신부(80)가 3월1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화업(畵業) 인생 60주년을 결산하는 전시회 ‘빛의 꿈’(R¤ve de lumi¤res)‘을 위해 귀국을 준비하자 주변 프랑스인들이 모두 나서서 만류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국의 성당에서는 미사도 금지돼 있다고 하던데 왜 가려고 하느냐” “코로나에 감염되면 프랑스로 못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러나 김 신부는 묵묵히 짐을 쌌다. 그는 “내게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지, 개인적인 편안함이나 성공을 위해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니 무섭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세 때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얼굴이 온통 종기로 뒤덮인 나환자들을 직접 안아주면서 돌보았고,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도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아가 정성껏 간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제로서 한국을 못 찾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희망의 나침반‘을 들고 오고 싶었습니다.”

●색채와 형태를 넘어 빛을 찾는 화가

그는 프랑스에서 ’빛의 화가‘로 불린다. 프랑스는 물론 아일랜드, 벨기에 등 유럽 전역에 중세에 지어진 천년이 넘는 오래된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는 화가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프랑스 파리특파원 시절에 김 신부의 작품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90km 떨어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중부지역의 브리우드 생 쥘리앵 성당, 벨기에의 리에주 대성당 등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성당의 유리창에 동양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는 김인중 신부의 자유분방한 터치의 선과 색채감은 깊은 명상의 바다에 빠뜨리게 했다.

그의 스테인드글라스의 특징은 시커먼 납선을 과감하게 없애는 대신에 붓으로 유리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뜨거운 열로 구워내는 방식이다. 성서에 나오는 예수나 성모마리아, 제자들의 형상도 없다. 추상화같은 그의 그림은 유화로 그렸는데도 불구하고 수묵담채화 같이 번져나가는가 하면, 때로는 한 마리 새나 나비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는 형태를 알아볼 수가 없다. 아침 햇살이 번져나오는 동틀 무렵, 그리고 해가 지는 노을 무렵에, 유리창에 들어온 빛이 성당의 벽면과 바닥에 길게 떨어지며 데칼코마니처럼 번지는 장면은 직접 눈으로 본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그가 ’빛의 화가, 빛의 구도자‘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란 유리창을 장식하는 데코레이션이 아니라, 그것을 밝히는 근원적인 신앙의 빛을 명상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제 그림에서 의미를 찾지 마십시오. 형태와 색에 당신의 눈이 귀 기울이도록 내버려두십시오”라고 말한다.

장 프랑수아 라지에 샤르트르 국제스테인드글라스 미술관장은 김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하늘에 쓴 시‘라고 표현한다.

“색채의 바다라 할 만한 김인중의 예술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 세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성(神聖)에 관해 쓰인 한 권의 책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만 같다. 형태, 색채, 형상을 구성한 회화, 스테인드글라스, 도자기 작품을 매개로 그의 물감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건 바로 빛이다. 그는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입자들의 물리적인 빛은 물론이고, 존재의 근원이자 이유인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빛을 보여준다. 이러한 색채들과 그 변형들 너머에는 최초의 원칙, 즉 우리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진짜 빛‘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빛을 표현한 점에서 김 신부는 프랑스 화단에서는 모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 세잔과 피카소의 미술사적 전통과 비교하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영국 노트르담 수녀회 소속으로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미술사학자로 수많은 저서를 남긴 웬디 베케트 수녀(1930~2018)는 김 신부의 작품에 대해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그들의 예술은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며 “김 신부의 작품은 창조되었다기 보다는 기도의 깊이에서 솟아나온 듯 하다”고 말했다.

김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을 비롯해 아일랜드, 벨기에 등 유럽 전역의 48곳에 설치돼 있다. 에브리 대성당을 건축한 스위스 현대건축가 마리오 보타는 “김 신부님의 작업은 보다 기하학적이고, 좀더 먼 곳으로부터, 보다 추상적인 것을 대체할 수 있는 전통적인 이콘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 주교성당에 이어 올해에는 아프리카 차드공화국의 수도 은자메나에 신축된 대성당에도 스테인드글라스 103점이 완공될 예정이다. 국내에선 대전 동구 자양동 성당(2009)과 용인 신봉동 성당(2019)에서 김 신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지난해 불에 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도 2003년 김인중 신부는 요한바오로 2세 교황 착좌 25주년 기념 ’아베마리아전‘을 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내부 공간에서 전시회를 허락한 것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20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종교간의 벽을 허무는 ’시편‘ 그림

김 신부는 6·25전쟁을 겪었던 초등학교 시절 이후 청년 시절까지 매일 하루 한 끼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렸다. 서예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붓글씨와 그림에 소질이 있던 그는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 1967년 졸업 후 미술교사를 하던 그는 새로운 꿈을 찾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다. 주머니에는 단돈 100달러밖에 없었다. 스위스 프리부르대에 다닐 때에는 밤마다 동물원 야간경비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힘겨운 유학생활 중에도 그는 도미니크수도회의 사제가 마련해 준 지하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이후 도미니크수도회에 정식으로 입회해 1974년 사제품을 받았다. 파리에서 기도와 묵상을 하고 그림을 그리는 수도사제로 평생 살아 오면서 그림을 그려왔다.

“누군가는 사제가 무슨 그림을 그리느냐고 해요. 저도 사제직이 너무 좋아서 그림을 포기하려고 했던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중세시대에 문화를 이어온 사람들이 바로 수도원 신부들이었어요. 저를 받아준 도미니크 수도회는 그 중에서도 제일 미술전통이 강한 곳이었습니다. ’수태고지‘ 그림으로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 프라 안젤리코(1387~1455)도 도미니크 수도회 소속이었죠.”

김 신부는 벨기에의 정신적 지주였던 고(故) 고트프리드 다녤스 추기경, 시인이자 철학자인 프랑스 학술원 회원 프랑수아 쳉(91) 등 유럽의 지성인들과 교류하며 수많은 시화집을 펴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한 ’시편‘도 최근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구약성서 시편 150구절마다 그의 작품을 한 점씩 실은 화집이다. ’시편‘은 프랑스어, 한국어에 이어 영어로도 번역될 예정이다.

“몇 년 전에 전시회를 열었는데 유태인 7~8명이 와서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더군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당신 그림 앞에서는 기도를 할 수 있겠다. 당신이 우리 유태인과 가톨릭의 벽을 허물었다‘고 하더군요. 제 그림에는 특별한 형상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유태교는 물론 무슬림, 불교 등 어떤 종교인들이 보더라도 기도와 명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30년 동안 꿈꿔왔던 작업이 이뤄진 것 같아 가슴이 떨려왔습니다.”

김 신부는 “구약성서 내용을 담은 ’시편‘은 모든 크리스챤이든 무슬림이든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모두 기도할 수 있는 책”이라며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 라바시 추기경님이 이 책을 보고 프란치스코 교황이 ’타종교와의 대화‘를 할 때 패스포트처럼 쓰일 것이라고 무척 좋아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라고 말했다.

“김인중 신부의 ’시편‘은 우리를 미(美)의 왕궁으로 인도한다. 각각의 그림은 시편의 글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아름다우신 하느님의 품으로 안내한다. 일일 기도를 위한 이 작은 시편에 섭리와 아름다움이 모였다. 섭리와 아름다움의 조합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선대 예술가들이 갈구하던 길이지 않았는가? 아름다움은 즉 섭리의 광채다. 태양의 후광과 같이 말이다.” (고 다¤스 추기경이 쓴 ’시편‘의 서문)

●엘그레코처럼 자유롭게

김 신부에게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화가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엘 그레코(1541~1614)를 꼽았다. 16세기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이콘화를 그리는 비잔틴 미술로 시작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로마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섭렵하고,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해 자신만의 예술혼을 불태웠던 화가다. 동양과 서양의 경계를 오가며 새로운 예술세계를 추구해온 그가 평생 닮고 싶었던 화가의 삶이다.

김 신부는 “엘 그레코는 그리스와 유럽이라는 두 발을 딛고서 창작의 무한성과 자유라는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며 “비잔틴 미술에서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뛰어넘으며 범세계적인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던 그의 예언자적인 자유로움을 닮아 저도 죽는 날까지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4월4일까지 열리는 회고전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김인중 신부가 그려온 회화 100점, 도자 15점, 스테인드글라스 5점 등 120여점이 전시된다. 그가 프랑스를 떠나올 때 한국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지만, 한달이 지난 지금은 거꾸로 프랑스와 유럽의 상황이 심각하다. 김 신부는 “프랑스 수도원에서 단체생활을 하고 계신 고령의 수사 신부님들의 건강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김 신부는 지난 18일 열린 전시회 개막식에서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은 마음 속의 바이러스”라며 “시기심과 라이벌 의식, 탐욕과 같은 마음 속의 병은 빠르게 사람들을 전염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로 모든 사람들이 집에 있는 데, 우리 영혼의 구제를 위해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으로 잘 활용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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