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기생충’ 나올 환경 만들어야[동아광장/최종찬]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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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아카데미 역사 뒤집은 쾌거, 세계에 한국 문화 알릴 기폭제
규제, 교육, 창업 등도 혁신 필요… 자율성-다양성 풍성한 사회 되기를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최근 ‘기생충’이 우리나라 100년 영화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썼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아카데미 역사상 비(非)영어권 영화가 최고 작품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기생충은 이미 작년에 유럽의 권위 있는 칸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두 개의 상을 동시에 수상한 작품은 1955년 미국의 ‘마티(MARTY)’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케이팝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아시아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했다. 최근에는 빌보드 ‘소셜 50’에 165번 1위를 하여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

그동안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 우리 경제는 저성장 늪에 빠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견인차인 제조업이 급격한 임금 상승 등으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경제 양극화도 확대되고 있다. 저성장, 구조조정 등으로 실업이 증가하며 특히 청년실업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헬 조선’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와 같은 여건에서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침체된 분위기를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영화, 음악 등 문화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기대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기생충, BTS가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기생충 같은 업적이 영화뿐만 아니라 각 분야로 확대되도록 해야 한다.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바이오, 물류, 게임 등 전 분야에 걸쳐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과 제품이 나와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추격하는 패스트팔로어 전략으로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임금 상승 등으로 더 저렴하게 만드는 방식으로는 중국 등 개도국과 경쟁할 수 없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현재 세계를 주도하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우버 등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창출한 기업이다. 이제는 근면과 성실만으로는 안 된다. 지식집약산업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는 우리 사회에 창의와 혁신이 넘치도록 국민의식, 제도 등이 바뀌어야 한다.

첫째, 각종 규제가 없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원격진료, 타다, 핀테크, 빅데이터 등 많은 새로운 산업이 각종 규제로 제한을 받고 있다. 영화, 음악에 과거와 같은 규제가 있었으면 기생충이나 BTS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규제를 ‘원칙적 허용, 예외적 규제(negative system)’로 바꾸고 소비자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 예컨대 원격진료나 ‘타다’는 소비자에게 이익이므로 허용하되 기존 공급자의 손해에 대해서는 별도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교육제도를 바꾸어야 한다. 암기식 교육을 창의성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일전에 중학교 시험에 ‘깍두기를 몇 cm로 썰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출제되었다고 어느 일간지에 보도되었다. 아직도 지리와 제2외국어 등 비중이 크다. 창의성 교육 강화를 위해 대학입시도 프랑스식 논술형 바칼로레아로 바뀌어야 한다.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오늘은 무엇을 물어보았나?” 한다. 우리나라 부모는 “선생님 말씀 잘 들었니?”다.

셋째,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자율성과 다양성이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상명하복 문화가 강하다. 또한 튀는 것을 경계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한다. 좌파 정부 출범 이후 평등을 강조하면서 자유의 중요성은 낮아지고 있다. 헌법의 기본 이념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자율형사립고, 특성화고 등도 수년 후에는 없애 평준화된다. 정부 비판한다고 고발하는 나라에서 창의가 활성화될 순 없다. 바둑의 알파고를 만든 데미스 허사비스는 게임광인 학생이었지만 획기적인 인공지능 제품을 만들었다.

넷째, 창업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한다. 모두 다 공무원이 되려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창업자가 많아지려면 창업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한다. 창업투자가 활성화되고 창업 후 상장, 인수합병(M&A) 등으로 자금 회수도 원활히 되는 생태계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기생충도 그동안 CJ의 과감한 투자가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2, 제3의 기생충이 나오도록 창의와 혁신이 넘치는 사회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최종찬 객원논설위원·전 건설교통부 장관
#아카데미 시상식#기생충#한국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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