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약한 인간을 닮은 피 흘리는 천사…핀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그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8일 15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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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이 부상당한 천사를 들것에 싣고 걸어가고 있다. 눈을 다친 것인지, 천사의 두 눈은 붕대로 감았고, 날개에선 피가 흐르고 있다. 앞의 소년은 마치 장례식 복장처럼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 색이고, 뒤의 소년은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 밖 관객을 응시하고 있다. 상황이 나쁜지, 소년들의 표정은 어둡고 주변 풍경은 을씨년스럽다. 도대체 천사는 왜 다쳤고 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핀란드 화가 후고 심베르그가 그린 이 그림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정답은 없다. 화가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일절 하지 않는 걸로 유명했다. 누군가 물으면,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림을 해석하면 된다는 말로 대신했다. 그래도 몇 가지는 유추해 볼 수 있다. 이 그림의 배경은 지금도 존재하는 헬싱키의 동물원 공원과 인근 강가다. 당시 노동자 계층이 즐겨 찾던 이 공원 안에는 양로원과 병원, 시각장애 소녀들을 위한 학교와 기숙사 등 많은 자선기관들이 위치해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 천사의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향하는 길일 터이다.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고 휑한 들판에는 드문드문 봄꽃이 피어나고 있다. 천사는 아픈 와중에도 하얀 스노드롭 꽃 뭉치를 손에 움켜쥐고 있다. 이른 봄에 피는 이 작은 꽃은 치유와 부활, 희망을 상징한다. 이 그림을 그리기 전 화가 역시 수막염으로 수개월간 병원에서 지냈기 때문에 희망의 꽃을 쥔 천사는 병마와 싸웠던 화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 수도 있다.

천사는 원래 신과 인간의 중개자라 미술에서는 늘 완벽하고 영적인 존재로 그려져 왔다. 하지만 심베르그의 천사는 상처입고 피 흘리는 나약한 인간과 너무도 닮았다. 그래서 더 친근하다. 약자를 돕는 박애주의, 핀란드의 자연 풍경,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 등을 담고 있어서일까. 2006년 이 그림은 행복지수 1위의 나라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그림’으로 선정됐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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