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까지 나서 ‘신속’ 강조하지만…현장에선 돈 가뭄 이어져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6일 2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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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표가 모두 나갔으니 지금 오신 분들은 내일 다시 오셔야 합니다.”

26일 오전 9시 반 경 대구 북구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소진공) 대구북부센터 직원이 건물 앞마당에 줄 선 수백 명의 소상공인들을 향해 외쳤다. 센터가 준비한 대기표 800장은 문을 열기 전에 이미 바닥났지만 새벽부터 기다려 온 소상공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상담을 받고도 빈손으로 돌아가는 소상공인도 적지 않았다. 하모 씨(37)는 “4시간 넘게 줄을 서 기다렸는데 서류가 더 필요하다는 소리를 듣고 5분 만에 돌아가게 됐다”며 “상담 대기줄에 어르신들도 많은데 준비해야 할 서류를 사전에 충분히 알려줘야 헛걸음 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소상공인을 위해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을 시작했지만 부족한 행정 인력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파산 절벽’ 앞으로 내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신속한 자금집행’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선 돈 가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소상공인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불편함을 3가지로 정리했다.

① 지원대상 확인서를 받는 데만 며칠씩 걸려


은행에서 소상공인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첫 단계로 소진공 센터에서 정책자금 지원대상 확인서를 받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자신이 소상공인에 속하고 코로나19로 매출이 줄었다는 걸 증명하는 서류를 갖고 센터를 방문해야 한다.

문제는 전국 62개 센터에서 확인서를 발급하는 직원이 약 300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하루 1만 명 이상이 센터를 찾지만 직원 1인당 처리 건수가 하루 10건 남짓이다 보니 발급 가능한 확인서는 3000장 가량이다. 게다가 한 명의 직원이 상담 및 확인서 발급을 비롯해 다른 업무를 병행하다보니 일처리에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소진공 관계자는 “한 달 넘게 야근하다보니 직원들 피로가 너무 누적돼 있다”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소상공인들의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하루 200억 원 한도로 온라인 확인서를 발급하고 있지만 오전 9시 신청 시작과 동시에 마감되기 일쑤다. 인터넷 발급 한도를 늘리면 많은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지만 소진공은 대출 수요자의 상당수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50대 이상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확인서 발급을 소진공에만 맡기지 말고 신청자의 자금 사정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은행 또는 주민센터 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중소벤처기업부 측은 “책임 소재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② 비상 상황에도 거북이 보증 심사

어렵게 확인서를 발급받은 뒤에도 보증이라는 산을 또 넘어야 한다. 당장 하루가 급해 ‘긴급자금’을 신청하지만 두 달 가까이 걸리는 보증 절차 때문에 “파산한 뒤에 돈 나오면 뭐하느냐”는 한숨이 나오고 있다.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보증 과정은 상담에서 서류심사, 현장실사, 심사, 승인까지 총 5단계를 거친다. 이 가운데 상담 및 서류심사는 8개 시중은행에 위탁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어서 상담 예약 뒤 대기시간만 3~4주 가까이 걸린다. 그나마 경력이 1년 이하인 자영업자들은 현장실사까지도 받아야 한다. 비상 상황에서 지나치게 기존 원칙대로 절차를 이행하다보니 소상공인의 연쇄 파산을 막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없애고 보증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대출 대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일부 부적합한 수요자에게 대출이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정 수준의 서류를 갖추면 자동으로 보증을 해주거나 우선 대출부터 해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며 “생계가 급한 소상공인이 마스크 줄 서기 하듯 대출 받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③ 유명무실 ‘패스트트랙 대출’


자금지원 수요가 급증하자 정부는 소진공 센터에서 바로 일주일 안에 최고 1000만 원까지 내주는 직접대출을 접수받고 있다. ‘확인서 발급-보증 심사-은행 대출’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일종의 ‘패스트트랙’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접수가 가능해 신속한 대출을 기대했던 소상공인들은 또다시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게다가 대출 가능액(1000만 원)이 너무 적고, 이 대출을 받으면 은행 대출을 함께 받지 못하게 해놨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비상 상황이라면 시중은행이 보증 없이 긴급 대출을 해주는 정책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은행 여신담당자들은 “그러다가 부실이 나면 누가 책임을 지겠느냐”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세종=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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