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한 박자 늦는 금감원[현장에서/이건혁]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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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혁 경제부 기자
이건혁 경제부 기자
올해 3월 1일부터 이달 7일까지 외국인투자가는 유가증권시장에서 14조4400억 원어치를 팔았다. 이를 받아낸 건 연기금 같은 기관투자가(8400억 원 순매수)가 아니라 12조2600억 원어치를 사들인 개인투자자들이다. 이에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은 팔고 개인은 사는 흐름을 놓고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개인투자자를 향해 주의 메시지를 보낸 7일에도 개인투자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1500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금감원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심해 예측이 어려우니 신규 투자자의 현명한 투자가 필요” “‘몰빵(특정 종목만 매수) 투자’나 ‘묻지 마식 투자’는 위험하다”고 했다.

금감원 자료는 상식적이다. 분산 투자, 장기 여유자금 활용, 신용대출을 활용한 투자의 위험성 등 주식 투자와 관련된 기본 원칙을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자료가 발표된 시점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가 뚜렷해진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글로벌 대유행으로 금융시장이 흔들린 3월 초부터다. 코스피가 1,900 선으로 떨어지자 반등을 기대한 투자자가 대거 몰렸다. 빚을 내 투자하는 신용융자 거래 규모는 10조 원 선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가 변동성이 커지면서 신용융자 규모가 7조 원대로 줄었다. 융자금을 직접 갚았거나 증권사들이 담보주식을 팔아 치웠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투자자들의 투자가 정점을 찍고 하락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국의 한 박자 늦은 메시지 전달은 이달 초에도 있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2일 위기 대응 총괄회의에서 “각국 감독기관이 배당금 지급, 자사주 매입, 성과급 지급 중단을 권고하고 글로벌 은행은 동참하고 있다”며 국내 은행들도 사실상 동참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배당금 규모를 결정하는 주주총회가 이미 마무리돼 뒤집을 수 없는 시점이었다. 금감원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손실 흡수 능력을 키우라는 의미”라고 설명했지만 금융사들은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여도 타이밍이 안 맞으면 효과가 없다. 당국이 증시 변동성이 최고조에 이르던 3월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4월이 돼서야 슬그머니 투자자 주의 메시지를 내놓자 일각에서는 “뒷북 메시지를 보내 놓고 ‘시장에 경고는 했다’며 책임을 피하려는 것”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금감원 홈페이지에는 “급변하는 대내외 금융환경에 선제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문구가 있다. 적시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도 능력이자 책임임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이건혁 경제부 기자 gun@donga.com
#금융감독원#동학개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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