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피하라” 두 팀 훈련시간 - 동선 철저 분리… 식사도 따로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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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구장 한 지붕 두 가족’ 두산-LG의 코로나 생활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서울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나눠 쓰는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훈련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혹시 모를 확산을 막기 위해 두 팀은 철저하게 분리된 일정 속에 언제 올지 모를 시즌 개막에 대비하고 있다. 오후 훈련이 예정된 두산 2루수 최주환이 두산 불펜 뒤편에서 LG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사진). 경기장은 관계자들이 오가는 동선을 따라 매일 물청소를 하고 주기적으로 방역을 한다(가운데 사진). 잠실구장 중앙출입구에서는 선수 및 출입자 모두를 대상으로 체온을 잰다. 37.5도 이상이면 코로나19 의심자로 경기장에 출입할 수 없다(오른쪽 사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두산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서울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나눠 쓰는 프로야구 두산과 LG의 훈련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다. 혹시 모를 확산을 막기 위해 두 팀은 철저하게 분리된 일정 속에 언제 올지 모를 시즌 개막에 대비하고 있다. 오후 훈련이 예정된 두산 2루수 최주환이 두산 불펜 뒤편에서 LG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사진). 경기장은 관계자들이 오가는 동선을 따라 매일 물청소를 하고 주기적으로 방역을 한다(가운데 사진). 잠실구장 중앙출입구에서는 선수 및 출입자 모두를 대상으로 체온을 잰다. 37.5도 이상이면 코로나19 의심자로 경기장에 출입할 수 없다(오른쪽 사진).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두산 제공
전 세계 주요 스포츠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라 멈췄다. 하지만 한국 프로야구는 정규시즌 개막은 미뤄졌어도 팀 훈련, 자체 청백전을 진행하며 2020시즌 “플레이 볼”을 향한 ‘행복회로’를 가동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소수의 열성 팬들에게만 의미 있을 각 팀의 청백전은 다른 볼거리가 없어 스포츠를 갈구하는 사람들에게 단비 같은 존재가 됐다. 팀별로 유튜브 등 온라인 채널을 통해 자체 중계되던 청백전이 TV채널 생중계까지 되며 위상이 높아졌다. 경기 전 야구장에는 각종 중계 장비들이 드나드느라 분주하다. 감염 예방 조치로 경기 전 선수 접촉이 불가해진 해설위원들도 청백전에 나서는 무명 선수들의 이야깃거리를 수집하느라 열심이다.

○ 철저한 선수단 관리, 청백전은 한류 콘텐츠?

자체 청백전은 스포츠 한류를 이끌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태세다. 미국의 유명 메이저리그(MLB) 칼럼니스트 제프 패산은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롯데 청백전 중계 온라인 주소를 링크하고 캡처 사진과 함께 “한국의 롯데 선수들이 마스크를 끼고 연습 경기를 하고 있다. 꽤 볼만하다”는 평가를 남겼다. 2일 기준 확진자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미국에서는 MLB 구단들이 일찌감치 스프링캠프 훈련장 문을 걸어 잠그고 선수들의 귀가를 권장했다. 탬파베이에서 뛰는 최지만은 귀국을 택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 개막이 연기된 데 이어 시즌 전체 취소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 야구팬들이 볼거리를 찾아 KBO리그 청백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구단들은 저마다 철저한 방역을 하며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각 구단 훈련장마다 출입구에 열 감지 카메라를 둬 선수, 관계자 가릴 것 없이 체온이 37.5도 이상이면 출입을 통제한다. 경기장도 주기적으로 자체 방역을 하고 있다. 고열, 인후통 등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보이는 선수나 관계자 등이 나올 경우 훈련을 즉시 중단하고 의심 증상자에 대한 검사를 진행해 ‘음성’ 판정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벌써 두산, SK, NC, KIA 등 몇몇 구단이 ‘훈련 중단→재개’ 경험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자체 훈련만으로는 선수들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없기에 약 3일 간격으로 청백전도 진행한다. 선수들은 “타 팀과 경기를 치르는 것보다는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자평한다. 하지만 1군 붙박이들과 이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백업 간의 치열한 포지션 경쟁은 실전 같은 열기를 뿜어낸다. KIA 외야수 김호령(28)은 수비 중 다이빙캐치를 선보이며 보는 이들을 열광하게 했다. 두산 포수 정상호(38)는 타석에 서서 2차례 투수가 던진 몸쪽 공에 맞았다. 정규시즌 경기에서나 나올 법한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들은 국내뿐 아니라 국외 시청자들에게 쏠쏠한 볼거리가 된다.

○ 한 지붕 두 가족 시간-동선 나눠 철저히 분리

야구장을 한 구단이 전용하는 다른 곳과 달리 두산, LG가 안방으로 나눠 쓰고 있는 서울 잠실구장의 풍경은 이색적이다. 지난달 19일 경기 이천 2군 구장 합숙훈련을 마친 LG가 안방인 잠실구장 훈련을 시작해 공유하기 시작한 두 팀은 팀 간 접촉을 피하라는 한국야구위원회(KBO)의 권고에 따라 한 공간 안에서 철저한 분리 생활을 하고 있다. 한 팀이 오전에 야외훈련을 하면 다른 팀이 오전 시간을 피해 스케줄을 잡는 ‘촘촘한’ 일정표를 따르고 있다. 한 팀이 야구장을 마음껏 쓸 수 있는 날은 다른 팀 훈련이 없는 날뿐이다. LG의 휴식일이었던 지난달 31일 두산은 청백전과 함께 훈련을 진행했다. 반대로 두산이 잠실구장을 비운 2일에는 LG가 청백전 등을 하며 마음껏 경기장을 사용했다.

두 팀의 훈련 일정이 겹친 1일은 각본이 잘 짜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약 2시간 동안 LG의, 오후 1시부터 두산의 훈련이 예정됐기에 양 팀 선수 및 관계자들의 접촉은 불가피해 보였다.

하지만 양 팀 선수들이 주차장에 차를 대는 시간부터 달랐다. LG 선수들은 훈련 시작 약 2시간 전 출근을 마치고 잠실구장 3루 뒤편에 있는 구단 웨이트트레이닝 훈련장에서 몸을 풀었다. 공식 훈련 시작은 오전 10시. 훈련 시작 30분 전 준비운동인 웜업(Warm up)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일찍이 더그아웃에 짐을 풀기 시작한 선수들은 9시 반 무렵부터 몸을 다 풀고 타석에 서서 투구 기계에서 나오는 공을 타격하는 모습을 보였다. 타석 옆 빈 공간에서는 다른 선수 2명이 받침대 위에 공을 놓고 타격하는 티배팅으로 타격 자세를 가다듬고 있었다. 외야 워닝트랙 근처에서는 투수조 선수들이 러닝을 하거나 롱토스 훈련을 하는 등 경기장 구석구석을 빈틈없이 쓰고 있었다.

같은 시간 잠실구장 중앙출입구는 두산의 청색 점퍼를 입은 구단 직원들이 출입자를 통제하고 있었다. 일찍 출근하는 두산 선수들을 위해서다. 오전 10시 무렵부터 신인급 선수들이 하나둘씩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건강을 책임지는 트레이너들은 체온계를 들고 체온을 체크한 뒤 이들에게 훈련장에서 사용할 마스크를 나눠줬다. 두산의 한 관계자는 “열 감지기에도 온도가 표시된다. 하지만 돌다리도 두들기자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체크하고 기록해 매일 선수들의 체온 변화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일찍 경기장을 찾은 선수들은 약 2시간 전 LG 선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구단 웨이트트레이닝 훈련장에서 몸을 풀며 야구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양 팀 선수단의 사이클이 다르지만 접촉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 수 있었다. 낮 12시, 오후 6시 등으로 정해진 식사시간 때다. 두 구단이 잠실구장을 안방으로 쓰기 시작한 뒤 LG가 잠실구장 3루 방향, 두산이 1루 방향에 구단 사무실, 실내 훈련장 등을 만들었다. 중앙출입구를 통과한 두 팀 선수들은 각기 왼쪽(LG), 오른쪽(두산)을 향하기에 잠실구장 안에서 실내훈련을 하면서 마주칠 일은 없다. 야외훈련 때도 두 팀은 각기 실내훈련장이 가까운 3루(LG), 1루(두산) 쪽 더그아웃을 쓴다. 하지만 구내식당은 ‘두산 구역’ 한 곳에만 있다. 과거 경기하는 날, 훈련하는 날이면 두 팀 선수들은 식사시간에 한 곳에서 마주치며 정보를 교류하거나 친분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두 팀은 ‘식당 접촉’도 사전에 시간을 조율해 차단했다. 오후 야외훈련 팀은 오전 11시 반부터 약 1시간 동안, 오전 훈련 팀은 훈련을 마치고 낮 12시 반부터 식사를 하는 방식이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 한 팀 선수들끼리도 마주 보지 않고 한 방향으로 앉아 식사하고 있다.

철저한 분리 생활이 이뤄지다 보니 야구장 안팎에서 선수들 일상도 조금 바뀌었다. 과거 경기장 중앙출입구 앞 주차장에서 마주치면 웃으며 악수라도 하던 양 팀 선수들이 ‘어쩌다’ 마주치면 어색한 표정 속에서 멀리서 눈인사 정도만 한단다. 중앙출입구 앞 각 팀 선수들의 주차 구역도 과거보다 철저하게 지킨다.

야외훈련 때도 양 팀은 최대한 접촉을 피하려고 노력한다. 오후 훈련 팀 선수가 조금 일찍 몸을 풀고 나오면 각 팀 더그아웃 깊숙한 곳 혹은 불펜 공간 뒤편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조용히 앉아 상대 팀 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두산에서 10시즌 동안 활약한 뒤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했다 LG로 복귀해 두산 선수들과도 친한 김현수(32)는 “요새는 집, 훈련장만 오가는 생활을 한다. (두산 선수들과) 만나지 않으니 연락도 잘 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도 있다. 1일 오후 두산은 예정됐던 훈련을 갑자기 취소했다. 선수단에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나온 게 이유였다. 두산은 “소속 선수가 전날 옆구리에 불편함을 호소해 1일 아침 병원에서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폐렴 소견이 나왔다. 발열 등 다른 증상이 없지만 선별진료소 검사를 마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점심 식사까지 마치고 야외훈련을 기다리던 두산 선수들도 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돌아간 뒤 구단의 권고에 따라 자택에서 대기했다.

반면 LG의 훈련 일정에는 지장이 없었다. 1일 오전 훈련을 치른 LG는 이튿날 오후에 갖기로 했던 청백전도 예정대로 진행했다. LG 관계자는 “두산과 경기장 사용 시간, 동선 등을 철저하게 분리해 훈련을 진행해 왔다. 우리 팀 훈련에 영향을 받을 일이 없다”고 말했다. 두산도 해당 선수가 검사 결과 음성 판정을 받아 3일 잠실구장 공사로 인한 휴식 이후 4일부터 훈련을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 출구 없는 현실, 꿋꿋이 극복 중인 선수들

안방구장을 마음껏 사용할 수도 없고 의심 환자가 생기기라도 하면 계획을 통째로 바꿔야 하는 날들의 연속이라 답답할 만도 하다. 하지만 김태형 두산 감독은 “훈련 환경이나 개막에 차질이 생기는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위험한 상황이 빨리 지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두산 최주환(32)은 자신의 라커룸에 팀 후배 허경민에게 받은 피카추 인형을 뒀다. 최주환은 “내 별명이 피카추인데 봄 색깔(노랑)이라 팀 분위기가 더 밝아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기분 전환을 위해 뭐라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동료들끼리 치고받다(?) 보니 나름의 이점도 있단다. 보통 같으면 해외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국내에 들어와 시범경기가 열리기 전 한두 차례 청백전을 치른다. 하지만 시범경기가 취소되고 대안으로 예정됐던 ‘팀 간 연습경기’도 미뤄지자 자체 청백전은 선수들의 실전 감각 유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 여러 번 치러지고 있다. 지난달 16일 국내에서 처음 청백전을 치른 두산도 벌써 7경기를 소화했다. 이로 인해 타 팀 투수, 타자들을 주로 상대했던 선수들이 팀 동료들의 기량을 확실히 체감하게 됐다. 두산 오재일(34)은 “청백전을 여러 번 치러 타석에서 우리 팀 투수들의 공을 모두 봤다. 처음이다. 동료들의 구위가 이렇게 좋은지 이번에 알았다”며 마운드를 향해 신뢰를 보냈다.

시즌 개막 시기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매주 KBO는 실행위원회와 이사회를 열며 코로나19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아직은 뾰족한 대안이 없어 기약 없이 관망해야 할 형편. 하지만 각 팀 선수들은 무대에 다시 설 그날을 조심스럽게 기다리며 구슬땀을 쏟고 있다.

김배중 wanted@donga.com·강홍구 기자
#코로나19#lg#두산#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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