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뜨고 진다고[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239〉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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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뜨고 진다고 ―이수정(1974∼)

달이 뜨고 진다고 너는 말했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질 것이다 …(중략)…


은지느러미의 분수 공중에서 반짝일 때,

지구 반대편에서 손을 놓고 떠난 바다가
내게 밀려오고 있을 것이다

심해어들을 몰고
밤새 내게


한 사람의 목숨은 하나지만 한 시의 생명은 하나가 아니다. 시의 생명은 시인이 쓸 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읽을 때 태어난다. 읽을 때마다 거듭해서 태어난다. 마치 매일 뜨는 달이 같은 달이면서 같은 달이 아니듯, 매일 읽는 같은 시도 같은 시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시는 언어로 되어 있다. 물론 언어 그대로 우리에게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시를 읽는 과정은 일종의 변신이다. 기호는 이미지로, 이미지는 다시 정서로 변화해서 우리에게 스며든다. 스며들 곳이 있으면 스며들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므로 서로 다른 균열을 지닌 우리는 같은 시를 서로 다르게 흡수한다. 찬란한 날에는 찬란한 방식으로, 서글픈 날에는 서글픈 어조로 읽는다.

이 시도 그렇다. 막막한 밤에 읽으면 밤이 마치 해일이 된 것처럼 밀려온다. 희망찬 새벽녘에 읽노라면 잔물결에 햇빛 부서지듯 눈이 환하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져서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되었다는 내용이다. 수천 마리의 물고기가 수천 개의 은빛 반짝임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수천 개 달의 수만큼 이 시는 계속 다르게 태어날 것이다. 사람 안에는 저마다의 작은 우주가 존재한다. 작은 우주의 존재를 가장 열렬하게 믿는 자들이 바로 시인이다. 이 아름다운 시를 읽는 동안 당신은 시인의 믿음을 경험할지도 모르겠다. 수천 개의 달이 뜨고 수천 마리 물고기가 반짝이는 바다가 바로 내 안에 있다고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달이 뜨고 진다고#이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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