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골 아파트와 세계 아동 성착취물[오늘과 내일/정원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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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우 사건의 미온적 처벌과 대응… 국제 수준 무관용 원칙으로 바꿔야

정원수 사회부장
정원수 사회부장
2018년 4월경 충남의 한 시골 마을 아파트에 경찰관이 들이닥쳤다. 한국 경찰청이 영국 국가범죄청(NCA), 미국 국토안보수사국(HSI) 등과의 공조 수사 끝에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한 범인의 거주지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에서 20대 청년을 체포한 경찰은 피의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동한 뒤 이 청년의 방에 있던 다크웹의 서버를 압수수색했다.

함께 살던 가족도 몰랐지만 이 청년은 자신의 방에서 2015년 6월∼2018년 3월 ‘웰컴 투 비디오’라는 이름의 다크웹 사이트를 운영했다. 검거 직전에도 8테라바이트 분량의 영상 2만 개가 저장된 서버가 작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CNN이 세계 아동 성 착취물의 ‘은밀한 소굴(a covert den)’이라고 한 곳이 20년 정도 된 아파트의 조그만 방이었던 것이다.

이 청년은 전 세계 4000여 명으로부터 7300여 회에 걸쳐 37만 달러(약 4억 원)의 가상화폐를 받고 아동 성 착취물을 제공했는데, 영상물에는 생후 6개월 된 기저귀를 찬 영아도 있었다. 이 사이트엔 한글이 한 글자도 없었다. 그래서 한국 수사당국이 이곳을 처음 적발한 게 아니다. 영국 NCA가 케임브리지대 출신의 소아성애자 매슈 팔더를 조사하던 중에 한국 IP주소를 찾아냈다. 한국 경찰도 처음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범행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친구도, 직업도 없던 이 청년이 독학으로 다크웹과 가상화폐를 연구해 세계를 상대로 하루 24시간 불법 성 착취물 영업을 한 것이다.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성인 음란물이 아닌 아동 성 착취물만 취급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신의 행위가 ‘아동 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 청년은 곧바로 수감됐고, 이어 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부터 그는 다른 사람이 된다. 다른 범죄 경력이 없던 그는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하고, 불우한 성장 과정과 가정 형편을 강조했다. 2018년 9월 1심 재판부가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그는 풀려났다.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면서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하지만 항소심 선고 보름 전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해 부양할 가족이 생긴 점 등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사정으로 감안되면서 형량이 깎였다. “성 인지 감수성 측면에서는 걸림돌 판결”이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피고인과 검찰 모두 상고하지 않아 그대로 형이 확정됐다.

한국 재판은 끝났지만 국제 공조 수사는 계속됐다. 미 법무부는 지난해 8월 한국 경찰청 등과 최종 수사 결과를 동시에 발표했다. 이때 한국에선 익명이던 이 청년의 실명 손정우를 미 법무부가 공소장과 함께 공개했다.

손정우는 27일 한국에선 만기 출소하지만 미국에서는 자국 피해자가 있는 만큼 미국 법에 따라 손정우를 처벌해야 한다며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른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피해 아동의 국적은 미국과 영국, 스페인 등이었다. 미국에서는 손정우가 유포한 성 착취물을 1회 다운로드, 1회 접속한 혐의만으로도 징역 70개월이 선고됐다고 한다.

언제까지 반문명적인 범죄자에게 세계인의 눈높이에 훨씬 못 미치는 처벌을 하고도 자국민 보호만을 앞세워야 하나. 유엔 총회에서 아동 성 착취물 등에 관한 선택의정서가 채택된 것이 2000년이고, 이를 한국은 2004년 비준했다. 그 이후에도 우리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그것이 악마를 자칭한 ‘박사방’ 조주빈을 다시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
#손정우 사건#무관용 원칙#박사방#조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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