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 90만개 필요한데… 美 병원 보유량은 16만개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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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의료용품 부족 사태 심각
연간 생산량 5만대 수준 그쳐… 뉴욕주서만 현재 3만개 있어야
포드-FCA 등 美산업계 두팔 걷어 인공호흡기-안면마스크 생산 나서
트럼프 “미국 검사 한국보다 정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 한국에 마스크, 인공호흡기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의료장비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국의 의료물품 부족 실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미병원협회(AHA)에 따르면 현재 주요 병원은 집중치료를 위한 고성능 인공호흡기 6만2000개, 일반 인공호흡기 10만 개 등 총 16만2000개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전체의 연간 생산량도 5만 대 수준에 불과하다. 코로나19가 현 속도로 퍼지면 최소 90만 명 이상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사용해야 하므로 호흡기 부족 현상이 심각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는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위상, 3억3000만 인구 등을 감안할 때 상당히 적은 숫자라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 내 환자가 가장 많은 뉴욕주에서만 최소 3만 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낸시 포스터 AHA 부회장은 “어느 지역에서 얼마의 용품이 부족한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일단 환자가 많은 곳에 인공호흡기를 집중 배치하고 구형 호흡기도 다시 쓰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병원은 개당 2만5000∼5만 달러에 이르는 인공호흡기를 구입할 여력이 없어 쩔쩔매고 있다. 신형 호흡기를 구입한다고 해도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고 이들에게 적절한 교육을 시키는 데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사태 초기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하면서 연방정부가 50개 주의 의료용품 수요 및 공급을 조사하고 배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잇따른다. 연방정부는 전략국가비축 물자용으로 1만3000개의 구형 인공호흡기를 별도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주 정부에서 구체적인 요청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최근까지도 이 물량을 거의 배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서부 워싱턴과 오리건주가 일부 물량을 공급받았지만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미 산업계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포드자동차는 이날 3M, GE헬스케어 등과 손잡고 인공호흡기 생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포드는 전미자동차노조(UAW)와 협력해 플라스틱 안면 보호경을 주당 10만 개씩 생산하기로 했다. 또 자사 3차원(3D) 프린터 시설을 이용해 일회성 인공호흡기도 만들겠다고 밝혔다. 피아트 크라이슬러(FCA) 역시 경찰, 응급 구조대원, 소방관, 의료시설 종사자 등을 위해 매달 100만 개 이상의 보호용 안면 마스크를 제조해 기부하기로 했다.

GE헬스케어, 필립스, 벡턴 딕킨슨, 메드토닉 등 의료용 중장비를 만드는 회사들은 구체적인 수치를 밝히지 않은 채 “생산량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행정부가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함에 따라 생산량 증가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국방부 역시 최근 2000개의 인공호흡기를 지원하기로 했다. 뉴욕주는 건설현장의 먼지 방지 용도로 만든 N95 마스크를 의료진에 한시적으로 제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 인터뷰에서 지난 8일간 미국이 진행한 코로나19 확진 검사 건수가 한국보다 많았다는 점을 자랑하며 “미국 검사가 더 좋고 정교하다”면서 행정부의 대응이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미국#인공호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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