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보낸 한철… ‘아버지’인 그들은 일어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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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슨 퓨리(왼쪽)가 2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디언테이 와일더와의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은 경기 전 계체량 때의 와일더. 링에서의 승패는 갈렸지만 둘 모두 생의 어두웠던 시기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애로 이겨내왔다.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타이슨 퓨리(왼쪽)가 23일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디언테이 와일더와의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타이틀전에서 승리한 뒤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은 경기 전 계체량 때의 와일더. 링에서의 승패는 갈렸지만 둘 모두 생의 어두웠던 시기를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가족애로 이겨내왔다. 라스베이거스=AP 뉴시스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세계 최강 주먹들의 대결이었지만 절실한 삶의 끝에 섰던 아버지와 아버지의 대결이기도 했다.

23일 세계복싱평의회(WBC) 헤비급 챔피언에 오른 타이슨 퓨리(32·영국)는 어느 유명한 시인의 표현처럼 ‘지옥에서의 한철’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말하자면 집시의 아들이다. 아일랜드에는 ‘아일랜드 트래블러’라는 유랑민들이 있다. 유럽 전역을 떠도는 집시와 비슷하다. 그의 집안은 이 유랑민 출신이다. 복서였던 아버지 존 퓨리는 링에 오를 때면 자신의 이름 앞에 ‘집시’라는 표현을 썼다. ‘집시’나 ‘아일랜드 트래블러’나 같은 유랑민이라는 동질감을 느낀 데다 유랑민을 나타내는 표현 중에는 집시가 더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키 206cm, 몸무게 124kg의 거구인 타이슨이지만 태어날 때는 450g밖에 되지 않았다. 의사는 예정보다 3개월 먼저 태어난 칠삭둥이인 그가 곧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가 살아남자 아버지는 당시 무패 복서였던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의 이름을 따서 ‘타이슨’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마도 무슨 일이든 이겨내라는 뜻이었으리라.

11세 때 학교를 그만두고 도로 공사장 등에서 험한 일을 하며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를 따라 10세 때부터 복싱을 시작했고 승승장구했다. 2015년 당시 천하무적이던 블라디미르 클리치코를 꺾고 세계복싱협회(WBA) 국제복싱연맹(IBF) 세계복싱기구(WBO) 국제복싱기구(IBO) 통합 챔피언에 오르며 생의 정점에 섰다.

하지만 최대 위기가 찾아왔다. 집시(아일랜드 트래블러) 출신이라며 온갖 비아냥거림과 욕설이 쏟아졌다. 챔피언이 됐지만 식당에서 가족이 모두 입장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얼굴이 알려져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이다.

어려서부터 같은 이유로 온갖 수모를 당해 온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빠졌고 잡지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처절하게 절규했다. “나는 매일 악마들과 싸우고 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세상의 모든 돈과 명예도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술 없이 살지 못했고 코카인에 빠져 지냈다. 몸무게는 50kg 이상 불어났다. 도핑 테스트에 걸려 타이틀은 모두 박탈당했다. 수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던 그를 절망에서 건져 낸 건 ‘아버지’라는 자각이었다. 3명의 자녀를 둔 그는 ‘아빠가 없어지면 애들이 어떻게 되겠나. 애들이 무슨 잘못이 있나’라며 괴로워했다. 자신의 우울증 때문에 부인이 떠나려 하자 ‘내가 가족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는 ‘가족을 지키고 싶다’며 재기를 다짐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도전에서 반드시 승리하겠다”며 자신의 우울증을 공개하고 치료에 전념했다. 모든 활동을 자제하며 술과 코카인을 끊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결국 가족의 품속에서 그는 재기에 성공했다.

그가 이번 대결에서 맞선 전 챔피언 디언테이 와일더(35·미국) 역시 ‘아버지’로서 링에 올라왔다. 19세 때 여자친구가 임신했다. 20세에 아버지가 되었으나 딸은 척추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트럭 운전 등 온갖 일을 하며 치료비를 벌었으나 턱없이 부족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던 그때 그도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했다.

하지만 ‘딸을 두고 떠나는 건 너무 이기적이다’는 생각이 그를 멈췄다. 많은 돈을 벌어 딸을 치료하겠다는 생각에 20세의 늦은 나이에 복싱을 시작했다. 너무 늦게 배운 탓인지 그의 기본기는 엉성했다. 하지만 KO율 98%의 펀치 한 방이 있었다. 2015년 마침내 WBC 챔피언이 됐을 때 그는 딸(나이야)의 이름을 부르며 링 위에서 흐느꼈다. “아빠가 언젠가는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고 약속했지? 아빠가 세계 챔프가 됐어….” 딸은 이후 5번의 수술 끝에 조금씩 걷게 됐다.

두 선수의 대결에서 승자는 타이슨이었다. 7회 TKO 승. 별명대로 ‘집시 킹’이 됐다. 하지만 ‘두 아버지’의 대결에서 패자는 없었다. 링이 아닌 삶 위에서 가족과 함께할 긴 여정이 그들에게 남아 있다. 경기 후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은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원홍 스포츠전문기자 bluesky@donga.com
#타이슨 퓨리#디언테이 와일더#wbc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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