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이 불가능하니 대응에 나선 사람들[광화문에서/염희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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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희진 산업2부 차장
염희진 산업2부 차장
퇴근길 버스 안에서 기사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버스에 비치된 무료 마스크를 가져가는 일부 승객 때문이었다. ‘공짜 마스크를 가져가는 게 뭐가 잘못이냐’는 승객과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왜 굳이 가져가느냐’는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여 버스 안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요즘 한국 사회는 이렇게 마스크 한 장에 다들 예민해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예전 같으면 700∼800원 하던 마스크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일부 온라인에서는 KF94 방역용 마스크 가격이 장당 4000원을 넘어섰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사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스크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답답해진 사람들은 저마다 무리를 지어 마스크 제조 공장에 개별적으로 주문을 넣기도 하고, 필터 원단을 사서 직접 마스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아니면 시간이 날 때마다 곳곳을 돌며 마스크를 구하러 동네 약국이나 주민센터를 순회하고 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마스크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란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런데 마스크 품귀현상이 빚어진 원인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불안은 불만과 불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연이은 품절 사태로 소비자가 발을 동동 구르는 동안 중국으로는 상당량의 마스크가 수출되고 있었다. 비 오는 날 대구의 한 대형마트 매장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길게 선 모습은 인천국제공항에서 중국으로 수출을 기다리고 있는 마스크 상자들과 오버랩되며 소비자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비난이 일자 정부는 당장 판매업자의 해외 수출을 제한하고 27일부터 생산량의 절반을 우체국이나 하나로마트 등 공적 판매망을 통해 판매하겠다고 수습했다. 이마저 정부의 성급한 발표 탓에 마스크가 적재적소에 공급되지 않아 이날 마스크 몇 장 구하기 위해 매장을 찾은 시민들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치 코로나19를 예견한 듯 새로운 바이러스가 중국의 박쥐에서 시작됐다는 내용의 영화 ‘컨테이젼’에는 공포에 지친 사람들이 사재기와 약탈에 뛰어드는 모습이 나온다. 바이러스 특효약이라고 소문난 개나리꽃 치료제를 사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은 갑자기 50개만 한정 판매된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하며 약국을 턴다. 여기에 일부 지역의 봉쇄 사실을 지도부가 미리 알고 자기 가족을 대피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평범한 시민들이 폭군으로 변하는 건 이렇게 순식간이다.

궁지에 몰리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다. 아직 백신도 개발되지 않았고, 병원도 마음대로 갈 수 없으니 사람들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수단으로 마스크가 필요하다. 그런데 마스크 가격은 물론이고 공급마저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정부를 보며 ‘마스크 값 하나 제대로 못 잡는데 바이러스는 어떻게 잡겠느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마스크 대란이 하루 빨리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의 불안이 분노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일지 모른다.
 
염희진 산업2부 차장 salthj@donga.com
#마스크#품귀현상#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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