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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동아일보를 사랑한, 동아일보가 사랑한 ‘석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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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동아일보를 사랑한, 동아일보가 사랑한 ‘석호필’

정경준 기자 입력 2020-02-10 16:00수정 2020-02-11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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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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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를 사랑한, 동아일보가 사랑한 ‘석호필’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
2000년대 ‘미드’ 열풍을 일으킨 폭스TV의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의 주인공 스코필드를 기억하십니까. 한국에선 그를 ‘석호필’이란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지요. 그런데 석호필의 시조는 그가 아닙니다. 한참 거슬러 올라가 한국을 조국처럼 사랑한 의학박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1889~1970)가 원조 석호필입니다.

스코필드는 1919년 3·1운동 직전에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하고 거사 당일에는 파고다공원 만세시위 현장을 사진에 담아 세계에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라고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도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 진상을 고발하는 등 일제의 만행을 여러 차례 폭로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 이름을 즐겨 사용했다 합니다. 발음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돌처럼 의지가 굳고(石), 호랑이 같이 강하며(虎),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아는(弼)’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죠.


고종 황제 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 대한문 앞을 지나는 황제의 대여. 스코필드 박사가 직접 촬영한 것이다.
그런 스코필드의 이름이 1920년 4월 1일 동아일보 창간호에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하나는 4월 1일부터 태형을 폐지한다는 보도에 이은 ‘구십도는 태심’이라는 기사입니다. 기사는 그의 말을 인용해 ‘태형으로 말하면 20대까지가 극상(極上)이라 말하겠고, 90대까지 때리는 것은 사람의 몸으로 이 형벌을 감당하기에 너무 혹독하다’고 돼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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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그가 직접 기고한 ‘조선발전의 요결’입니다. 세브란스 의전에서 세균학을 가르치던 스코필드 박사는 이 글에서 조선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네 가지 즉 교육, 근면과 실업(實業), 재정, 도덕을 역설했습니다. 특히 교육에 관해서는 단순히 ‘생각’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교육을 받고 민중을 위해 그 지식을 쓰지 않으면 정당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동아일보나 혹은 기타 선량한 신문을 애독하라’고 간곡히 권했습니다.

이 당시 스코필드 박사는 혈기왕성한 31세 청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글의 곳곳에서 그의 거침없는 생각과 행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한 예로 그는 조선의 저주는 나태함에 있다면서 끽연과 잡담으로 소일하는 조선 남자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심지어 추운 겨울 한 여자가 힘들게 시멘트를 섞는 모습을 조선 남자가 긴 담뱃대를 물고 수수방관하는 광경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구타한 일까지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동아일보 창간 49주년 기념일인 1969년 4월 1일자에 창간호 기고 ‘조선발전의 요결’에 대해 다시 한번 글을 보내왔습니다. 여기서 그는 창간호에 기고했던 까닭은 고등교육과 자유로운 신문의 보급으로 국민을 계몽한다는 이념을 갖고 있었던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 씨 등의 부탁 때문이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스코필드 박사를 주요 취재원으로 여겼습니다. 창간호 외에도 그가 일본에서 발행하는 영자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에 기고한 ‘한국에서의 개혁’을 번역해 1920년 4월 23일부터 ‘조선통치 개량에 대한 외국인의 관찰’이라는 칼럼을 15회 연재했습니다. 본질은 변하지 않은 채 기만적인 ‘문화주의’를 내세워 한국 국민을 억압하는 일제의 통치를 비판한 글이었습니다. 이 중에는 친일 선교사 헤런 스미스가 스코필드를 비판하고 일제를 옹호하는 글을 ‘재팬 애드버타이저’에 연재하자 이를 읽고 같은 신문에 기고한 반론을 번역한 ‘스미트 씨의 조선통치론에 대한 스코필트 씨의 논박’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제는 눈엣가시 같았던 스코필드 박사를 캐나다로 돌려보냈지만 1958년 국빈으로 한국에 돌아와 1970년 4월 12일 생을 마칩니다. 며칠 후인 4월 16일자 신문에 ‘스코필드 박사 병상 단상록’이 실릴 만큼 그와 동아일보의 관계는 각별했습니다.


정경준기자 news91@donga.com

원문

朝鮮發展(조선 발전)의 要訣(요결) - 醫學博士(의학박사) 스코필트...1920년4월1일5면


余(여) 數朔(수삭) 前(전)에 一(일) 朝鮮靑年(조선 청년)과 談話(대화)를 交(교)할 時(시)에 그 靑年(청년)의 言(언)이 「우리는 覺醒(각성)하엿쇼」하기에 余(여)는 答(답)하기를 「깨고 말고 이후에는 다시 자지 말라」하얏노라. 그 靑年(청년)은 繼續(계속)하야 言(언)하되 「우리나라를 一層(일층) 더 善良(선량)한 나라를 맨들기 爲(위)하야 一部(일부) 나의 責任(책임)을 다하고자 工業學校(공업학교)에 入學(입학)하야 燭(촉)과 비누 製造法(제조법)을 硏究(연구)하는 中(중)이라」하도다. 靑年(청년)의 言(언)은 絶對(절대)로 事實(사실)이라. 朝鮮(조선)은 깨도다. 다시는 자지 안으려 하는 도다. 그러나 朝鮮(조선)은 累百年間(누 백년간)을 잠자도다. 至今(지금)하야 覺醒(각성)하매 他國(타국)의 各(각) 方面(방면) 進步(진보)는 實(실)로 可驚(가경)할 배오, 그 安眠(안면) 懈怠(해태) 中(중)에 虛費(허비)한 歲月(세월)을 補充(보충)하랴면 朝鮮人(조선인) 前途(전도)에 橫在(횡재)하는 努力(노력) 奮鬪(분투)의 事業(사업)은 實(실)로 巨大(거대)한 지라. 이에 數年(수년) 前(전)에 先覺(선각) 有志(유지) 幾個(기개) 男女(남녀)는 故國(고국) 「死亡(사망)의 잠」 그 安眠(안면) 長睡(장수)를 打破(타파)하야 一途(일도) 生命(생명)의 光(광)을 點入(점입)코자 努力(노력)하얏스나 그 努力(노력)은 水泡(수포)에 歸(귀)하고 말도다. 民衆(민중)은 깨기를 願(원)치 아니하고 如前(여전)히 平和(평화)롭게 잠을 繼續(계속)하며 一切(일절) 改革(개혁)을 拒絶(거절)한 바 朝鮮(조선)은 外國人(외국인)의게 「隱士國(은사국)」이란 名稱(명칭)으로 알이어젓도다.

朝鮮(조선) 將來(장래)에 對(대)한 一大(일대) 希望(희망)은 朝鮮人(조선인)이 自古(자고)로 惰怠(타태)하던 民族(민족)이 안인 事實(사실)에 存在(존재)하다. 過去(과거)의 歷史(역사)는 賢君達士(현군달사)와 勤勉(근면) 民衆(민중)의 事實(사실)로 充滿(충만)하얏스니 이는 吾人(오인)을 奬勵鼓舞(장려고무)하는 바이라. 一般(일반) 民衆(민중)이 한번 自己(자기)를 麻痺(마비)하며 破壞(파괴)하는 惡念敗風(악념패풍)을 擲棄(척기)코자만 하면 過去(과거)에 된 일이 엇지 將來(장래)에 可能(가능)하지 안으리오. 朝鮮人(조선인)이 萬一(만일) 成功(성공)을 期(기)할진대 그 道(도)가 오즉 하나이니 그는 곳 비누와 燭(촉)을 製造(제조)하는 余(여)와 談話(담화)한 그 靑年(청년)이 取(취)한 바 道(도)라. 곳 第一(제일)은 自己(자기)의 所能(소능)이 무엇인가를 覺(각)하고, 第二(제이)는 그를 盡心全力(진심전력)하야 行(행)하는 것이로다. 農夫(농부)는 最良法(최량법)으로 自己(자기)의 地(지)를 耕作(경작)할지며, 製靴者(제화자)는 市中(시중) 第一(제일)의 靴(화)를 製造(제조)할지며, 實業家(실업가)는 最新式(최신식)으로 事業(사업)을 經營(경영)할지며, 學生(학생)은 또한 全(전) 智力(지력)을 다하야 工夫(공부)할지며, 至於(지어) 淸潔軍(청결군)이라도 그 職分(직분)을 忠實(충실)히 施行(시행)하야써 一塵埃(일 진애)라도 餘存(여존)함이 無(무)하야 惡臭(악취)나 靑蠅(청승)이 發生(발생)치 못하게 할지니라. 能(능)히 行(행)치 못할 것을 行(행)치 안이함은 責(책)할 바가 아니로되 오즉 『하고자』만 하면 能(능)히 行(행)할 것을 行(행)치 안음은 크게 責(책)할 것이로다.

大槪(대개) 發展(발전)의 必要條件(필요조건)이 四項(사항)이 有(유)하니 (一·일)은 敎育(교육)이오 (二·이)는 勤勉(근면)이오 (三·삼)은 財政(재정)이오 (四·사)는 道德(도덕)이라. 余(여)는 以下(이하) 各項(각항)에 分(분)하야 數言(수언)을 □코자 하노라.

(一·일) 敎育(교육)

朝鮮(조선)은 이 方面(방면)에 있셔 人後(인후)에 落(낙)함이 大(대)하도다. 故(고)로 多大(다대)한 年月(연월)이 안이면 充分(충분)한 學校(학교)를 設備(설비)치 못하리로다. 敎育(교육)의 一大(일대) 價値(가치)는 사람으로 하야곰 『생각』케 함에 在(재)하니 個中(개중) 『正當(정당)히 생각』케 하는 것은 더욱 重要(중요)하니라. 獨逸人(독일인)은 일즉히 高等(고등)한 敎育(교육)을 受(수)하얏스나 『正當(정당)히 생각』할 줄은 學(학)치 못하얏도다. 獨逸(독일)은 天下(천하)에 가장 偉大(위대)한 國民(국민)이라 故(고)로 世界(세계)를 支配(지배)치 안으면 아니 되리라고 一般(일반)이 思考(사고)하게 敎育(교육)을 受(수)하얏스니 그 往事(왕사)는 世界(세계)의 民族(민족)을 征服(정복)하야 自己(자기)의게 隸屬(예속)케 하리라 하는 野心(야심)으로써 敢(감)히 天下(천하)에 戰(전)을 宣(선)함에 至(지)하니라. 이 엇지 正當(정당)하다 하리오. 余(여)는 朝鮮人(조선인) 중 敎育(교육)이 有(유)한 多少人(다소인)을 會見(회견)한 中(중) 그들이 敎育(교육)의 大(대) 目的(목적)을 正當(정당)히 理解(이해)치 못함을 可惜(가석)히 녀기엿노라. 그들은 學校(학교)의 卒業證(졸업증)을 得(득)하다. 그러나 하는 것은 『紳士(신사)인 체』할 뿐이로되 오히려 自己(자기)는 一般(일반) 民衆(민중)보다 聰明(총명)하며 賢哲(현철)하다 自負(자부)하는 도다. 敎育(교육)을 受(수)하면 同時(동시)에 『奉仕(봉사)』란 一大(일대) 責任(책임)을 負擔(부담)함을 엇지 忘却(망각)하엿나뇨. 諸君(제군)이 엇고자 願(원)하던 그 知識(지식)은 곳 他(타)를 爲(위)하야 使用(사용)할 義務(의무)가 有(유)하니라.

有敎育者(유교육자)로서 一般(일반) 民衆(민중)을 爲(위)하야 그 知識(지식)을 使用(사용)치 안으면 그는 國家(국가)에 對(대)하야 『씨례기』桶(통) 끄는 驅累馬君(구루마군)(씨러기통 끄는 구두마군)보다도 그 價値(가치)가 無(무)한 것이로다. 그러면 敎育(교육)밧은 者(자)는 無敎育者(무교육자)를 爲(위)하야 助力(조력)할 것이오, 無敎育者(무교육자)는 知識(지식)을 엇기에 全力(전력)을 다할 지니라. 諸君(제군)의 貴重(귀중)한 時間(시간)을 喫煙(끽연)과 雜談(잡담)으로 虛費(허비)치 말고 東亞日報(동아일보)나 或(혹)은 其他(기타) 善良(선량)한 新聞(신문)을 愛讀(애독)하라.

朝鮮(조선)의 尊貴(존귀)한 女子(여자) 中(중) 一人(일인)은 開城(개성) 사는 金貞蕙(김정혜) 女史(여사)라. 그는 비록 親(친)히 敎育(교육)을 受(수)한 바 無(무)하나 最初(최초) 開城(개성)의 靑年(청년) 未亡人(미망인)을 敎育(교육)하고 其後(기후) 貞和女學校(정화여학교)라는 普通學校(보통학교)를 設立(설립) 經營(경영)하기에 그 金錢(금전)과 生命(생명)을 밧쳣도다. 至今(지금) 그 女史(여사)에 對(대)하야 詳說(상설)할 餘裕(여유)가 無(무)함은 遺憾(유감)이나 萬一(만일) 讀者諸君(독자 제군)이 開城(개성)을 訪問(방문)하는 機會(기회)가 有(유)하거든 그 女史(여사)를 尋訪(심방)하고 그가 엇더하게 敎育(교육)밧고져 熱望(열망)하는 者(자)를 爲(위)하야 自己(자기) 힘을 다하는가를 學(학)하기를 바라노라.

實(실)로 朝鮮人(조선인)의 發展(발전)은 교육에 잇스니 이에셔 더 急先務(급선무)가 無(무)하도다.

(二·이) 勤勉(근면)과 實業(실업)

朝鮮(조선)의 咀呪(저주)는 惰怠(타태)니, 從來(종래)는 그러하엿거니와 現在(현재)도 그러하도다. 余(여)는 一生(일생) 中(중)에 京城(경성)에서갓치 만흔 惰怠漢(타태한)을 본 곳이 無(무)하노라. 언의 市街(시가)를 勿論(물론)이고 가보라. 徒(도)히 喫煙(끽연) 雜談(잡담)으로 消日(소일)하고 섯는 許多(허다)한 群衆(군중)을 發見(발견)하리라. 그들의 唯一(유일) 생각은 「이 다음 이야기」는 무엇 할까, 「한 대 담배」나 「한잔 술」이 어데로서 나올가 하는데 在(재)하도다.

余(여)는 數週日(수주일) 前(전)에 女子(여자)가 寒天(한천)에 「세멘트」를 混合(혼합)하는 것을 朝鮮(조선) 男子(남자)가 입에 긴 담배대를 물고 閑暇(한가)히 서 袖手傍觀(수수방관)하는 것을 보고 怒(노)를 禁(금)치 못하야 毆打(구타)까지 한 事(사)가 有(유)하도다. 噫(희)라, 思(사)하라. 寒天(한천)에 「세멘트」를 作(작)함에 勞動(노동)하는 女子(여자)를 閑暇(한가)히셔, 傍觀(방관)하는 男子(남자)들. 朝鮮(조선) 靑年(청년)이 「勞動(노동)은 賤(천)하다」는 思想(사상)을 一擲(일척)하기 前(전)에는 鮮(선)의 希望(희망)은 無(무)하도다.

數朔(수삭) 前(전)에 余(여)를 爲(위)하야 勞動(노동)하든 一(일) 朝鮮(조선) 靑年(청년)이 有(유)하얏스니 一日(일일)은 余(여)를 對(대)하야 言(언)하기를 「더 일할 수 업다. 일이 넘어 어렵다」하과 그 兩親(양친)은 또한 그가 獨子(독자)인 故(고)로 歸家(귀가)하야 靜養(정양)을 要(요)한다 하도다. 아ㅣ 勞動(노동)이 그대를 殺(살)할가 져허하지 말지어다. 萬一(만일) 勞動(노동)이 사람을 殺(살)할 것 갓흐면 朝鮮(조선)女子(여자)는 발셔 다 死(사)하얏스리로다. 朝鮮(조선)의 一大(일대) 必要(필요)는 곳 産業(산업)의 發展(발전)이라. 그러나 이는 「勞動(노동)하고자 하는」 人民(인민)으로 말미암아서만 何能(하능)한 것이로다. 朝鮮(조선)이 要(요)하는 바는 敎育(교육) 잇는 男女(남녀)의 多數(다수)가 農村(농촌)에 散在(산재)하야 農業(농업)의 最善(최선)方法(방법)을 適用(적용)함으로 現今(현금) 一石(일석) 收穫(수확)하는 곳에셔 一石(일석) 半(반)을 收穫(수확)하도록 하는 것이라. 朝鮮(조선)의 富源(부원)은 農場(농장)에 在(재)하도다. 그러나 이는 朝鮮人(조선인) 中(중) 가장 無知(무지)한 者(자)의 手中(수중)에 在(재)하지 안이한가.

工場(공장)의 設立(설립)이 또한 必要(필요)하도다. 그리하야 土産(토산) 原料(원료)로 有用品(유용품)을 朝鮮(조선)셔 製造(제조)하야써 (一·일) 原料(원료)가 外國(외국)으로 輸出(수출)되야 外國人(외국인)의게 職業(직업)을 供給(공급)하는 代身(대신)에 (二·이) 外國(외국) 製造品(제조품)의 輸入(수입)을 許(허)치 안코 朝鮮人(조선인)의게 職業(직업)을 供給(공급)할 것이라. 現今(현금) 若干(약간) 工場(공장)에 朝鮮(조선) 少年(소년)女子(여자)가 充滿(충만)하고 靑年(청년) 少年(소년) 등 男子(남자)는 徒(도)히 歲月(세월)을 虛送(허송)함은 朝鮮(조선)의 一大(일대) 羞恥(수치)로다!

(三·삼) 財政(재정)

可驚(가경)할 許多事(허다사)가 輓近(만근)하야 朝鮮(조선)에 起(기)하도다. 過去(과거) 數朔(수삭) 間(간)에 富豪(부호)人士(인사)ㅣ 巨財(거재)를 投(투)하야 新(신)企業(기업)을 開始(개시)하다. 이는 實(실)노 好(호)消息(소식)이라. 그러나 敎育(교육)과 産業(산업) 發達(발달)에는 多大(다대)한 金錢(금전)의 支出(지출)이 必要(필요)하니 따라서 兩者(양자) 發達(발달)이 富豪(부호)의게 待(대)하는 바 大(대)하다 云(운)할 지로다.

万一(만일) 그들이 金錢(금전)을 너그려히 使用(사용)하면 萬事(만사)가 好(호) 結果(결과)를 得(득)하려니와 若(약) 不然(불연)하면 進步(진보)發達(발달)은 遲遲(지지)하리라. 富者(부자)는 大(대) 利益(이익)을 收(수)할 企業(기업)에만 投資(투자)할 것이 아니라 아 또한 必要(필요)한 企業(기업)이면 利益(이익)이 少(소)할 지라도 이에 投資(투자)해야 發達(발달)을 奬勵(장려)함이 可(가)하니라.

日前(일전)에 「닥마리다 女史(여사)」(김)를 相逢(상봉)하얏노라. 그는 以前(이전)에 看護婦(간호부)로 잇다가 其後(기후)에 『주진면, 한동리』에 一個(일개) 小學校(소학교)를 創設(창설)하고 現今(현금) 經營(경영)하는 中(중)이라. 余(여)는 問(문)하기를 近況(근황)이 하여오 한즉 女史(여사)는 答(답)하되 『旺盛(왕성)치 못하다. 兩面(양면) 人士(인사)의 同情(동정)이 無(무)하며 多少間(다소간)이라도 財政(재정)의 補助(보조)가 無(무)하다』하얏스며 또한 余(여)는 過去(과거) 數朔(수삭)間(간)에 十餘人(십여인) 靑年(청년)을 回(회)하얏노라. 그는 모다 聰明(총명)하고 將來(장래) 有望(유망)한 靑年(청년)들이로되 오즉 金錢(금전)이 無(무)함으로 敎育(교육)을 完成(완성)치 못하는 者(자)라. 엇지 學校(학교)를 設立(설립)할 만으로 能事畢矣(능사필의)라 하리오. 學費(학비)가 無(무)하야 英才(영재)를 發揮(발휘)치 못하는 者(자)의게 金錢(금전)을 供給(공급)함이 또한 必要(필요)하도다. 噫(희)라. 富豪(부호)의 責任(책임)이 大(대)하도다. 그들은 能(능)히 그를 實行(실행)하랴?

(四·사) 道德(도덕)

現時(현시)의 가장 感奮激勵(감분격려)되는 바 特徵(특징)은 道德維新(도덕유신) 方面(방면)의 各種(각종) 運動(운동)이라. 物質的(물질적) 進步(진보)와 偉大(위대)는 國民的(국민적) 道德(도덕), 곳 銳敏(예민)한 國民的(국민적) 良心(양심)과 幷存(병존) 同在(동재)치 아니하면 何等(하등) 價値(가치)가 無(무)한 것이로다. 無德(무덕) 國民(국민)은 永榮(영영)치 못할지니. 勿論(물론) 一時(일시) 强國(강국)이 될 수 잇슬지라도 마츰내 破滅(파멸)을 免(면)치 못하리로다. 外部(외부)로셔 攻擊(공격)을 受(수)치 않을지라도 內部(내부)로서 自滅(자멸)하리. 國民(국민)을 眞(진)노 偉大(위대)케 하는 一個(일개) 要素(요소)가 有(유)하니 그는 곳 正義(정의)로다. 英國(영국)이 國民的(국민적)으로 偉大(위대)한 그 原因(원인)이 何在(하재)리오. 代代(대대)로 그를 引導(인도)하는 政治家(정치가)ㅣ 眞(진)□한 基督敎(기독교) 信者(신자)임이라. 同情(동정)이 저와 갓치 博大(박대)하고 理想(이상)이 저와 갓치 高尙(고상)한 『윌손』 大統領(대통령)을 産出(산출)한 것은 곳 基督敎(기독교) 아니뇨?

人民(인민)의 道德(도덕)이 健全(건전)하면 萬事亨通(만사형통)하리라. 有德者(유덕자) 엇지 惰怠(타태)하리오, 故(고)로 産業(산업)이 發達(발달)할지며. 有德者(유덕자) 엇지 吝嗇(인색)하리오, 故(고)로 必要(필요) 金錢(금전)의 支出(지출)이 豊富(풍부)할지라. 이에 吾人(오인)은 斷言(단언)하노니 道德(도덕)은 健全(건전)한 發達(발달)을 期(기)함에 가장 重要(중요)한 要素(요소)라 하노라.

此後(차후)에 機會(기회) 잇스면 余(여)는 또한 『假(가) 發展(발전)』에 對(대)하야 論評(논평)하고자 하나 大槪(대개) 此等(차등) 論文(논문)으로 余(여)가 發表(발표)코자 하는 바는 엇지 不親切(불친절)한 말을 하랴 함이리오. 오즉 余(여)가 切切(절절)히 사랑하도 그 國民(국민)을 爲(위)하야 有助(유조)한 말은 忌憚(기탄)업시 하고자 함이로다. 余(여)의 言辭(언사)에 不快(불쾌)한 點(점)이 잇섯스면 사랑하는 兄弟(형제)여, 그대 나라의 아름다운 格言(격언) 「毒藥(독약)이 苦口(고구)나 以於病(이어병)」이라는 眞理(진리)를 생각하고 余(여)를 容恕(용서)하라.
현대문

조선 발전의 지름길 - 의학박사 스코필드


몇 달 전 한 조선 청년과 대화를 나눌 때 그 청년이 “우리는 각성하였소”라 말하기에 나는 “깨고 말고, 앞으로는 다시 잠들지 말라”고 답했다. 그 청년은 계속해서 “우리나라를 한층 더 선량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일부 내 책임을 다하려고 공업학교에 들어가 양초와 비누 제조법을 연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청년의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조선은 깨어 다시는 자지 않으려 한다. 그러나 조선은 수백 년간 잠들어 있었다. 지금에야 깨어났는데 다른 나라의 각 방면에서의 진보는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라 그 편하게 잠자며 게으름 부리다 허비한 세월을 보충하려면 조선 사람들의 앞길에 가로놓인 노력과 분투할 일은 실로 거대하다.

이에 수년 전 뜻있는 남녀 선각자 몇 명이 고국의 ‘사망의 잠’, 곧 오랫동안 편히 든 잠을 깨뜨려 한 줄기 생명의 빛을 점찍어 넣고자 했지만 그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민중은 깨기를 원치 않고 여전히 평화롭게 잠자며 개혁을 일절 거절하는 바람에 조선은 외국인에게 ‘은둔하는 선비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조선 장래에 대한 일대 희망은 조선 사람이 예로부터 게으른 민족이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과거 조선의 역사를 보면 어진 임금과 사물의 도리에 통달한 선비, 근면한 민중으로 가득했으니 이는 우리를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우는 일이다. 일반 민중이 자기를 마비시키며 파괴하는 잘못된 생각과 풍습을 한번 내던지고자만 하면 과거에 됐던 일이 어찌 장래에 가능하지 않겠는가.

조선 사람이 만일 성공하고자 한다면 그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으니 그것은 비누와 양초를 만드는, 나와 대화한 그 청년이 택한 길이다. 곧 첫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둘째는 그것을 온 마음으로 힘을 쏟아 행하는 것이다. 농부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기의 땅을 경작하고, 신발 만드는 사람은 시중 제일의 신발을 만들고, 실업가는 최신식으로 사업을 경영하고, 학생은 모든 지력을 다해 공부하고, 심지어 청소부라도 그 직분을 충실히 해 한점 티끌이라도 남기지 않아 악취나 벌레가 생기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능히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책할 바가 아니지만, 오직 하고자만 하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크게 꾸짖어야 한다.

대개 발전의 필요조건으로 네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교육이오, 둘은 근면이오, 셋은 재정이오, 넷은 도덕이다. 나는 이하 각 항으로 나눠 몇 마디 하려 한다.

1. 교육

조선은 이 방면에서 다른 이들에 크게 뒤쳐져 있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아니면 충분한 학교를 갖출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의 큰 가치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데 있는데 그 중에서도 ‘정당하게 생각’하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독일인은 일찍이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정당히 생각’할 줄은 배우지 못했다. 독일은 천하에 가장 위대한 국민이기 때문에 세계를 지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일반이 사고하도록 교육받은 탓에 세계의 민족을 정복해 자기에게 예속시키겠다는 야심으로 감히 천하에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르는 길을 걸었다. 이 어찌 정당하다 하겠는가.

나는 조선사람 중 교육을 받은 상당수를 만났는데 그들이 교육의 큰 목적을 정당하게 이해하지 못한 것을 애석하게 여겼다. 그들은 학교의 졸업장을 받았지만 ‘신사인 척’ 할뿐, 오히려 자기는 일반 민중보다 총명하며 현명하다고 자부하는 것이었다. 교육을 받으면 동시에 ‘봉사’라는 큰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을 어찌 잊었는가. 여러분이 얻고자 원하던 지식은 곧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교육을 받고도 일반 민중을 위해 그 지식을 쓰지 않는 사람은 국가에 대해 쓰레기통 끄는 ‘구루마군’보다 가치가 없다. 그러면 교육받은 사람은 무교육자를 위해 힘을 보태야 하고, 무교육자는 지식을 얻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여러분의 귀중한 시간을 끽연과 잡담으로 허비하지 말고 동아일보나 혹은 기타 선량한 신문을 애독하라.

조선의 존귀한 여자 가운데 한 명은 개성에 사는 김정혜 여사다. 그는 비록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처음에는 개성의 젊은 미망인들을 교육하고, 그 후 정화여학교라는 보통학교를 설립해 경영하는데 가진 돈과 생명을 모두 바쳤다. 지금 그 여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여유가 없어 유감이지만 만일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개성을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그 여사를 찾아뵙고 교육을 받으려 열망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어떻게 자기 힘을 다하는지 배우기 바란다. 참으로 조선 사람의 발전은 교육에 있으니 이보다 더 급선무는 없다.

2. 근면과 실업

조선의 저주는 나태함에 있다. 본래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평생 경성에서만큼 많은 게으름뱅이를 본 곳이 없다. 어느 거리를 가 봐도 무리 지어 끽연과 잡담으로 소일하는 허다한 군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생각은 ‘이 다음 이야기’는 뭘 할까, ‘담배 한 대’, ‘술 한 잔’이 어디서 나올까 하는 데 있다.

나는 몇 주 전 추운 겨울에 여자가 시멘트를 섞는 것을 조선 남자가 입에 긴 담뱃대를 물고 한가하게 서 수수방관하는 걸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구타까지 한 일이 있었다. 슬프다, 생각해보라. 추운 겨울 시멘트를 만들려고 노동하는 여자를 한가히 방관하는 남자들을. 조선 젊은이들이 ‘노동은 천하다’는 생각을 내던지기 전에는 조선의 희망은 없다.

몇 달 전에 나를 위해 일하던 한 조선 청년이 있었는데 하루는 나에게 “더 일할 수 없다. 일이 너무 어렵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 또한 그가 외아들이라서 집에서 정양해야 한다고 했다. 아! 노동이 그대를 죽일 것인가 겁내지 말라. 만일 노동이 사람을 죽일 것 같으면 조선 여자는 벌써 모두 죽었을 것이다.

조선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곧 산업의 발전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하고자 하는 인민’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조선에 필요한 것은 교육받은 많은 남녀가 농촌에 흩어져 가장 좋은 농법을 적용해 현재 1석 수확하는 곳에서 1석 반을 수확하도록 하는 것이다. 조선의 부의 원천은 농장에 있다. 그러나 현실은 농장이 조선 사람 중 가장 못 배운 자의 수중에 있는 것 아닌가.

공장의 설립 또한 필요하다. 토산 원료로 쓸모 있는 물건을 조선에서 만들어야 원료가 외국으로 수출돼 외국인에게 직업을 공급하는 대신, 외국에서 만든 물품의 수입을 허용치 않고 조선인에게 일자리를 공급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약간의 공장에 조선의 어린 여자만 가득하고 청년, 소년 등 남자는 모여 세월을 허송하는 것은 조선의 크나큰 수치다.

3. 재정

놀랄 만한 일들이 근래 조선에 허다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거 몇 달 사이에 돈 많은 인사들이 큰 재산을 투자해 새로운 기업을 시작했다. 이는 참으로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교육과 산업의 발달에는 엄청난 재원의 지출이 필요하니 교육과 산업은 부호에게 기대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만일 부호들이 금전을 너그럽게 쓰면 만사가 좋은 결과를 얻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진보와 발달은 지지부진할 것이다. 부자는 큰 이익을 거둘 수 있는 기업에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이익이 적더라도 필요한 기업이면 투자해야 발달을 장려할 수 있다.

일전에 닥마리다 여사를 만났다. 그는 전에 간호사로 있다가 그 후 주진면 한동리에 소학교를 세워 지금 경영하는 중이다. 내가 “근황이 어떠냐?”고 묻자 여사는 “활발하지 못하다. 안팎 인사들의 도움이 없고, 얼마라도 재정 지원도 없다”고 대답하더라. 나는 또 몇 달 사이에 10여 명의 청년을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총명하고 장래 유망하지만 돈이 없어 학업을 끝내지 못한 이들이었다. 어찌 학교를 설립하는 것만으로 일을 다 했다고 할까. 학비가 없어 뛰어난 자질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금전을 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 슬프다. 부자들의 책임이 크구나. 그들은 능히 그 책임을 실행할 수 있을까.

4. 도덕

지금 이때 가장 기쁜 마음으로 격려할 일은 도덕을 새롭게 하는 방면의 각종 운동이다. 물질적 진보와 위대함은 국민적 도덕, 곧 예민한 국민적 양심과 함께 존재하지 않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덕이 없는 국민은 오래 번영하지 못한다. 물론 일시적으로 강한 나라가 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파멸을 면치 못할 것이다. 외부의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내부에서 자멸할 것이다.

참으로 국민을 위대하게 하는 한 요소가 있으니 그것은 곧 정의이다. 영국이 국민적으로 위대한 원인이 어디 있겠는가. 대대로 그들을 인도하는 정치가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동정하는 마음이 저 같이 크고, 이상이 저 같이 고상한 윌슨 대통령을 배출한 것이 기독교가 아닌가.

인민의 도덕이 건전하면 모든 일이 뜻한 대로 잘 이뤄지는 법이다. 덕이 있는 자가 어찌 게으르겠는가, 고로 산업이 발달할 것이며, 덕 있는 자 어찌 인색하겠는가, 자연히 필요한 돈을 풍부하게 지출할 것이다. 이에 우리는 건전한 발달을 기약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도덕이라고 단언한다.

차후 기회가 있으면 나는 ‘거짓 발전’에 대해 논평하려 하는데 대개 이들 논문으로 내가 발표하고자 하는 것은 어찌 불친절한 말을 하려는 것이겠는가. 오직 내가 절절하게 사랑하는 그 국민을 위해 도움이 될 만한 말은 기탄없이 하려는 것이다. 내 언사에 불쾌한 점이 있었으면, 사랑하는 나의 형제여, 그대 나라의 아름다운 격언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이롭다’는 진리를 생각하고 날 용서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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