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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3.5%가 움직이면 사회 전체가 바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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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3.5%가 움직이면 사회 전체가 바뀌더라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19-12-14 03:00수정 2019-12-18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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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과학/김범준 지음/344쪽·1만5000원·동아시아
나라와 문화권마다 다르게 보이는 저항운동도 일정한 ‘임계점’을 넘으면 폭발적으로 확산되는 등 놀랄 만큼 유사한 특징을 갖는다. 구의원 선거 후 처음 대규모 시위가 열린 8일 홍콩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홍콩=AP 뉴시스
“그런 것도 물리학인가요?”

이 책의 부제는 ‘복잡한 세상의 연결고리를 읽는 통계물리학의 경이로움’이다. 통계물리학이라는 말이 낯설다면 목차를 살펴보자. ‘시민 저항운동, 비폭력이 이기는 순간’ ‘국회의원, 누가 누가 친할까’ ‘사라진 만취자를 찾는 과학적 방법’…. 물리학 책이 맞을까.

첫 장에서 물리 용어인 문턱값(임계값)을 설명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숲에 나무가 빽빽하면 산불 한 번으로 많은 나무가 타버린다. 나무 간격이 성글면 산불 피해를 적게 입어 나무가 많아진다. 이 때문에 나무의 밀도는 특정한 값으로 수렴하게 된다.


이렇게 문턱값에 도달한 숲을 살펴보면 나무들이 ‘프랙털’ 형태, 즉 불규칙적으로 보이지만 확대해 보면 부분이 전체를 닮은 모양으로 분포한다. 이렇게 물리학은 세계에 반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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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만 통계물리학이 관계될 리 없다. 어느 정치학자는 저항운동의 폭력성과 성공률을 통계로 접근한 결과 비폭력적인 저항이 2배 이상의 성공률을 보이는 것을 발견했다. 참여자가 인구의 3.5%를 넘은 ‘모든’ 저항운동이 성공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만 명 정도에 해당한다.

여기까지는 통계와 정치의 영역이다. 그런데 물리학자들은 한발 더 들어갔다. 두 대립하는 의견이 있는 사회에서 한쪽을 고수하는 강한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 13.4%를 넘어서는 순간 사회 전체가 변화하게 된다. 물리학 용어로 상전이(相轉移)에 해당한다.

그래도 이런 게 물리라는 걸 이해하기 쉽지는 않다. 저자는 ‘함께하면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많은 구성요소들이 모여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용할 때, 전체가 어떤 큰 특성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지’가 통계물리학이 흥미를 갖는 관심사다. 인간 사회의 모습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다수’로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가 개미 사회다. 개미들은 각자 협력하고 자기를 희생할 의지가 있을까? 그런 건 없다. 낱낱의 개미는 단순한 원칙에 의해 움직일 뿐이다. 개미들이 푹 팬 땅에서 다리(橋)를 만드는 것도 그렇다. ‘앞의 개미가 정지해 갈 곳이 없으면 그 등으로 오르고, 자기 위에 일정 수 이상 개미가 있으면 딱 멈추고, 없어지면 다시 간다’는 원칙을 따른 결과 ‘개미 브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다수가 복잡한 특성을 이루는 것은 창발(emergent) 현상으로 설명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통계물리학으로 설명되기도 하지만, 사실로 알고 있던 것이 통계물리학의 눈을 통해 본 결과 허구로 밝혀지기도 한다. 농구에는 ‘뜨거운 손’이라는 말이 있다. 한번 득점하면 연거푸 득점하기 쉽다는 뜻이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각각의 득점은 서로 시간상 독립적인 ‘푸아송분포’를 따른다는 것이 밝혀졌다.

행성의 운동이나 입자의 움직임을 추적하는 줄 알았던 고정관념 속의 물리학과는 다르다. 그러나 통계물리학은 주식시장의 추이를 들여다보는 데도, 인공신경망의 구조를 효과적으로 바꾸는 데도, 고속도로 정체를 개선하는 데도, 프로야구 경기 일정표를 효율적으로 짜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물리학자도 세상을 본다. 다른 사람들과는 좀 다르게 말이다. 인간 사유의 최전선에서 물리학은 철학과 등을 맞대고 사유의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 애쓰는 동반자다.”

‘세상 물정의 물리학’으로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을 받은 저자가 4년 만에 내놓은 책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관계의 과학#김범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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