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분쟁 심판관’ WTO, 美 견제에 식물기구 전락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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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中제재에 미온적” 불만 표명
상소위원 임기 종료에도 뒷짐, 7명중 1명만 남아 ‘기능 상실’
EU 등 임시 대체기구 설립 검토

11일은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지 꼭 18년이 되는 날이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이날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견제, 미중 무역 전쟁을 비롯한 각국 무역 분쟁 증가 등으로 다자간 세계무역 체제의 근간인 WTO가 1995년 창립 후 24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WTO의 ‘개점휴업’ 상태가 장기화되면 세계 곳곳에서 무역 보복이 난무할 위험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WTO의 최고 분쟁 해결 기구인 상소기구의 상소 위원 2명의 임기는 10일로 끝난다. 전체 위원 7명 중 현재 3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에 2명이 추가로 이탈하면 남은 위원은 1명으로 줄어든다. WTO 규정에 따라 사건 심리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위원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1명만 남은 상태에선 WTO가 사실상 ‘식물 기구’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는 의미다.

WTO는 창립 이후 불공정 무역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게 허용해 왔다. 이 강력한 권한을 이용해 시장 개방과 무역 분쟁 해결 등 다자간 무역체제의 기틀을 세웠다. 따라서 무역 분쟁 조정 기능을 상실하면 WTO는 사실상 이름만 남은 ‘종이호랑이’가 되는 셈이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WTO가 심리 중인 무역 분쟁 안건은 2009년 월평균 15건에서 현재 44건으로 3배가량으로 증가했다. 필 호건 유럽연합(EU) 무역담당 집행위원은 “WTO는 창립 이후 최대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무역을 관장하는 법률을 더는 이행할 수 없다면 우리는 ‘정글’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파국을 막으려면 위원 임기 연장이나 후임 임명 등에서 미국이 협조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미 행정부는 임기가 끝나는 상소위원의 후임 선임 안건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고 WTO를 사실상 고사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WTO가 중국의 보조금 지급 등 불공정 무역 관행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거센 불만을 표시해 왔다.

최근 호베르투 아제베두 WTO 사무총장은 “상소 기능 중단이 다자간 무역 체제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등 회원국들은 상소기구 기능 중단에 대비해 이를 대체할 임시 비공식 기구를 검토하고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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