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안통하는 이상한 사람…억울한 아이를 위해 싸워야 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8일 16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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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아이를 데리고 키즈카페에 갔다. 볼풀장에서 아이가 볼풀공을 벽에 던지며 놀고 있는데 그 앞을 지나가던 다른 아이가 맞았다. 지켜보던 엄마가 깜짝 놀라 그 아이가 다쳤는지 살핀 후 “놀랐지 친구야, 미안해”라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잠깐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황당한 상황이 벌어져 있었다. 아까 그 아이 엄마가 볼풀장에 들어가서는 내 아이를 공으로 일부러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자기 아이와 놀아주면서 실수한 줄 알았다. 내 아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 아이 엄마를 바라보니 그 엄마가 “친구야 미안해” 했다. 그리고는 내 아이를 또 맞췄다. 순간 화가 확 치밀었다. 하지만 저런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상대하면 뭐하나 싶어 아이를 데리고 서둘러 키즈카페를 나왔다. 집으로 오는 길, 아이는 억울한 눈빛으로 엄마를 쳐다봤다. 기분이 좋지 않기는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이에게 해줄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어떤 엄마가 실제로 상담한 내용이다. 이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아이에게 옳고 그름을 가르쳐주기 위해서라도, 싸움을 하는 한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따져 물었어야 했던 것 아닌지 후회가 됐다고 했다.

살면서 이런 상황을 종종 만난다. 그럴 때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지만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냥 나와 버리는 것이 가장 잘 하는 거다. 그런 사람은 상대를 안 하는 것이 맞다. 분하고 억울한 생각이 들 때는 생각해야 한다. 이 사람의 성과 이름을 아는가, 이 사람이 나와 가까운 사이인가, 이 사람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다면 악연을 맺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 그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거다.

아이를 가르칠 때 우리는 ‘손해를 보지 말아라’보다 ‘할 말은 하고 살아라’고 가르쳐야 한다. 상대 눈치 보지 말고 “이것은 이렇게 하시면 안 될 것 같은데요”라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할 말을 해도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손해가 양의 개념이라면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다. 인간의 행복에는, 개인의 자존감에는, 이 무형의 가치가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할 말도 할 만한 사람일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 사례의 사람에게는 할 말을 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 말을 하는 순간 악연을 맺게 되고, 자칫하면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아이는 억울할 수 있다. 부모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이상한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맞지만, 아이에게는 부모의 행동을 좀 설명해줘야 한다.

“엄마가 왜 그 아줌마한테 따지지 않고 너를 그냥 데리고 나왔냐면, 저 사람은 대화를 할 상대가 안 되는 사람이야. 너한테 공을 일부러 맞춘 것은 나쁜 행동이거든. 너는 벽에 맞췄는데 그 공이 튕겨나가서 그 아이가 맞은 거잖아. 그건 어쩌다 일어난 실수야. 그럴 때는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해야 하는 거야. 그런데 그 아줌마는 어른이면서 의도적으로 너한테 공을 맞췄어. 아이에게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야. 잘못된 행동이지. 잘못된 행동을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그런 사람에게는 말 할 가치가 없어. 그 아줌마는 오히려 더 소리를 지르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거야. 너는 무척 놀라고 무섭겠지. 그것이 너한테 더 좋지 않아서 그냥 나온 거야. 엄마가 그 사람보다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야.”

아이는 여전히 분해하면서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혼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물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유머러스하게 대답해줬으면 좋겠다. “그 아줌마는 남편 말도 안 듣고, 그 아줌마의 엄마 말도 안 들을 것 같아. 그런 아줌마가 엄마 말을 들을까? 엄마 말도 안 들어. 입만 아파. 그런데 그 아줌마는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야.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그 아줌마가 그렇게 한 것에 우리는 아무런 영향 안 받아. 우리는 오늘 즐거웠고 너는 여전히 엄마에게 가장 귀중한 아이야.” 이렇게 말해주면, 아이들도 “아, 맞아” 하면서 넘어간다. 이렇게 키즈카페에서 만난 그 이상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내 아이에게 해주면 된다.

할 말도 할 만한 대상한테 해야지, 그렇지 않은 대상한테 하면 악연이 생긴다. 이것을 잘 파악해서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도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는 것이다. 이것 또한 아이들이 부모에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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