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유승민 동반 불출마 선언하라[오늘과 내일/정연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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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文 정서만으로 위기 극복 못해… 자신을 던져 인적쇄신 물꼬 터야

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보수우파 정당의 기세는 박근혜 탄핵이 아니라 3년 전 20대 총선에서 이미 꺾였다. 공천권을 놓고 친박과 비박이 사생결단식으로 맞붙은 공천 파동에 실망한 지지층이 대거 등을 돌린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공천 파동은 친박-비박의 내전이었고, 결국 박근혜 정치의 실패였다. 그 상흔(傷痕)은 오래갔다. 비례대표 득표수만 보면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이 20대 총선에선 19대 총선 때에 비해 100만 표 이상 격감했다. 총선 이후 탈당과 보수 세력 분열, 탄핵이 이어졌고 2017년 대선과 이듬해 지방선거까지 ‘폭망 선거’의 길을 걸었다. 4월 재·보선에서 한국당이 선전해 보수 회생의 기대를 보였다지만 반문(反文) 정서에 기댄 ‘반짝 효과’ 수준에 그친 것 같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정치의 실패다. 하지만 그 실패가 보수 세력의 전리품은 아니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도 한국당은 여전히 비호감 1위 정당이다. 한국당에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 한국당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스스로 혁신하고 쇄신하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3년의 세월을 지나면서 공천 파동과 당세 몰락, 탈당 러시와 탄핵의 악순환이 줄줄이 이어졌는데도 어느 것 하나 매듭을 짓고 나아간 것이 없다. 친박이나 비박 모두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바빴다. 공천 파동이나 탄핵, 분당에 대한 책임 공유는 아예 없었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보수 세력의 회생은 기약할 수 없을 것이다.

황교안, 유승민이 던진 보수 통합의 화두는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다. 다음 달 본회의에 상정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협상을 포함해 박근혜 사면 가능성 등 하나하나가 인화성이 큰 뇌관이다. 통합 협상 당사자들은 통합 범위나 지분, 절차 등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지금 통합 논의가 당 간판을 내리는 ‘헤쳐 모여’식으로 급진전될 경우 공천권에 목을 맨 의원들의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달리는 열차에서 중간에 내릴 수는 없다. 보수 통합의 논의가 닻을 올린 이상 범진보 진영의 통합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어서다. 친문의 표적이었던 이재명과 친문의 핵심인 전해철 등이 10일 만찬을 한 것은 여권 내부 갈등의 봉합을 알리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총선이 임박할수록 조국 사태로 흔들린 범진보 연합의 복원이 시급했을 것이다.

보수 진영의 통합 논의는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서로 감정의 골이 깊고 반목이 심해진 탓이다. 대통령 권력이 배후에 있는 여당과 단순 비교할 수도 없다. 협상의 걸음마는 뗐지만 또 다른 파국의 시작일 수도 있다. 더욱이 협상의 주축인 황교안-유승민은 과거 3김(金)형 보스가 아니다. 자신의 한마디로 의원들이 정치적 명줄을 내던질 이유가 없을 것이다.

보수우파의 미래 비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과감한 인적 쇄신으로 과거 청산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게 절실하다. 보수 세력 몰락의 기폭제가 된 공천 파동과 분당, 탄핵 관련 책임자들까지 인적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두 사람이 총선 불출마를 선언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 참회와 희생의 결단으로 정치적 동력을 만들어내야 난마처럼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보수 통합이 없으면 총선 승리는 힘들어진다. 이후 두 사람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복잡한 길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게 리더의 능력이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담대하게 헤쳐 나가야 한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황교안#유승민#보수 통합#반문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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