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티켓[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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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기철 음악평론가·국방FM ‘힐링뮤직’ DJ
송기철 음악평론가·국방FM ‘힐링뮤직’ DJ
“서로에 대한 앎은 인간의 본분.” ―정수일 ‘이슬람 문명’

책 맨 앞에 나오는 문장이다. 처음부터 이 문장은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 소중한 진리를 가장 생생히 겪은 것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였다.

2006년 ‘세비야 월드뮤직 엑스포’에 참가한 다음,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스페인 문화예술의 심장인 바르셀로나를 꼭 보고 싶기도 했지만, 또 다른 큰 이유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축구 명문팀 FC 바르셀로나와 첼시 FC의 대결은 ‘별들의 전쟁’답게 티켓이 매진된 상태였다. 실망스러운 마음에 FC 바르셀로나의 홈구장 캄 노우라도 보고 싶어 발걸음을 옮겼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선 취소된 소량의 티켓을 현장판매하고 있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왔다.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멀리 한국에서 온 나에게 부디 좋은 자리를 달라고 매표 직원에게 간청을 한 다음, 바르셀로나가 자리한 카탈루냐 말로 “몰테스 그라시에스(대단히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눈길조차 주지 않던 직원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 표현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이때다 싶어 설명을 이어나갔다. “나는 카탈루냐의 슬픈 역사를 알고 있다. 카탈루냐의 문화예술을 사랑하며, 한국에서 방송을 통해 카탈루냐 음악도 소개하고 있다. 나는 FC 바르셀로나 팬이다.”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컴퓨터 모니터를 갑자기 내 쪽으로 돌리며 어느 한 자리를 가리켰다. “당신에게 이 자리를 주겠다. FC 바르셀로나 평생회원들만 앉을 수 있는 좌석이다.”

그날 밤 꿈같던 FC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고 호텔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속에 한 가지 질문이 맴돌았다. 만약 내가 매표원에게 카탈루냐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인사를 했으면 그렇게 좋은 티켓을 줬을까? 그것은 ‘서로에 대한 앎’이 가져다준 행운의 티켓이었다.

송기철 음악평론가·국방FM ‘힐링뮤직’ DJ
#이슬람 문명#바르셀로나#스페인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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