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 더 이상 필요없어”…트럼프, ‘전쟁광’ 낙인 볼턴 전격 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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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9월 11일 16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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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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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트위터로 전격 경질했다. 대북 초강경파이자 네오콘의 핵심이었던 볼턴 보좌관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잇단 충돌 끝에 해임되면서 향후 북핵 협상을 비롯한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미칠 파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전쟁광’ 낙인찍힌 볼턴의 퇴장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어젯밤 볼턴 보좌관에게 더 이상 그가 백악관에 필요하지 않다고 알렸다. 나는 그의 (정책) 제안에 매우 동의하지 않았고 행정부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며 거칠게 불만을 표시했다. 이어 “그에게 사임을 요구했고, (사직서를) 오늘 아침에 받았다”며 “다음 주 새로운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볼턴 보좌관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사임 사실을 확인했으나 “내가 어젯밤 대통령에게 사임 의사를 밝혔고, 그가 ‘내일 이야기하자’고 했던 것”이라며 반박했다. 백악관 핵심 참모들도 상황을 모르는 분위기였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급작스러운 발표 방식이나 시점과는 별개로 볼턴 보좌관의 경질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백악관 안팎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북한과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등의 주요 외교안보 정책을 놓고 강경론을 고수하며 트럼프 대통령과 사사건건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에게 상황을 맡겼다면 우리는 지금 4개의 전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의 호전성에 불만을 표시했고, 사석에서 그를 ‘전쟁광(warmonger)’처럼 묘사하며 조롱했다. 결정적인 계기는 최근 아프간 평화협정을 둘러싼 불협화음이었다. 탈레반 지도부와의 협상을 원하며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의 비밀회동까지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이 이에 반대했다는 내용이 언론에 알려지자 분노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탈레반과의 협상 중단을 선언했지만, 직후 볼턴 보좌관을 내치는 것으로 책임을 물은 셈이다.

볼턴 보좌관은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과도 점점 사이가 틀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백악관에서 테러 정책 관련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에게 관련 질문을 받고 “(경질 소식에) 전혀 놀라지 않았다”며 “대통령은 그가 신뢰하고 가치를 두는 사람들과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미 정치권의 반응은 엇갈린다.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옹호한 반면,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는 성명에서 “미국이 더 심각한 혼란의 시대로 향하고 있다”며 잇단 인사교체로 인한 외교안보 정책의 불안정성을 비판했다.

● 북-미 협상 유연성 발휘되나


볼턴 전 보좌관이 경질되면서 미국이 추후 북-미 협상에서 유연성을 발휘할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식 ‘새로운 셈법’을 받아들이는 걸 가장 강력하게 반대해줄 사람이 백악관에서 사라진 것”이라며 “승부처는 (북한이 사실상 협상 데드라인으로 설정해 둔) 12월 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내에서도 북-미 실무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담화를 내고 북-미 대화 재개를 제안한 가운데 ‘리비아식 모델’을 내걸고 선(先)핵포기를 요구해온 볼턴 전 보좌관이 교체되면서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

청와대는 이날 “우리 정부가 얘기할 사안은 아니다”라며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하지만 9월 말 유엔 총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이 나오고 있는 10월 북중 수교 기념일, 11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 등 굵직한 외교일정 등을 앞둔 가운데 청와대 내부에선 북한이 껄끄러워했던 볼턴 보좌관 교체가 북-미 대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전임 허버트 맥매스터 전 국가안보보좌관 때에 비해 느슨해졌던 한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라인 간 소통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북한에 좋은 메시지”라묘 “미국이 주장한 ‘빅딜’이 선 핵폐기, 후 보상 순서였는데 (볼턴 전 보좌관 경질은) 그 방식으로는 안 하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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