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주공 1단지[횡설수설/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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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이란 개념도 희박하던 1971년 9월 ‘남서울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대단지 아파트 분양광고가 나갔다. 지금의 반포주공 1단지다. 강남 아파트 시대의 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한국 주택사에서도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지금은 40년이 훌쩍 넘은 구식 설계와 시공으로 엘리베이터도 없고 집 안은 낡고 불편하다. 하지만 오래 거주한 주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분양 당시 서울대 교수, KDI(한국개발연구원) 박사, 고위 공무원들이 사택으로 많이 배정받았다. 이후에도 동(棟) 간 거리가 넓고 큰 수목이 많은 차분한 주거여건으로 법조인, 의사, 기업 임원이 많이 들어왔다. 명문이라 불리는 학교들이 많아 자녀 교육 때문에 이사 온 30, 40대의 비중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초기에 입주한 70대 이상 고령층이 많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재건축 바람이 불 때도 “생활 기반이 다 여기 있고, 오래 정든 이웃들과 헤어지기도 싫고, 이사 다니기도 귀찮다”면서 재건축 추진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이 많아 번번이 재건축이 무산됐다.

▷총사업비 10조 원으로 역대 최대의 재건축사업이라던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이 최근 수년간 급가속 페달을 밟아 결실을 보나 했더니 지난주 서울행정법원의 관리처분계획 취소 판결로 인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같은 평형 조합원 내에서 누구는 많이 배정받고 누구는 적게 배정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취지였다. 재건축은 정해진 층고, 용적률 범위 내에서 조합원들이 서로 나눠 가져야 한다. 한쪽이 많이 가져가면 다른 쪽의 몫이 줄어든다. 조합원 간 이해 대립이 격렬할 수밖에 없다. 작은 평형, 큰 평형 이해관계가 달라 평형대별로 모임이 따로 있다. 대형 평형 조합원은 제시된 감정평가액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책정됐다며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다. 한강 조망권이 있는 조합원과 그렇지 않은 조합원의 주장이 또 서로 다르다.

▷이번 판결에 대해 조합 측은 항소할 뜻을 밝히고 있는데 이 재판이 만약 대법원까지 가면 언제 결론이 날지 알 수 없다. 자칫하면 어렵사리 피한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폭탄을 다시 맞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분양가상한제까지 발표됐다. 추가 분담금을 많게는 가구당 10억 원 가까이 부담해야 한다면 차라리 재건축을 포기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이주비 지급 문제도 있고 시공사에 대한 마찰도 끊이지 않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게 재건축사업이라지만, 강남 최초의 아파트 반포주공 1단지는 재건축사업에서도 ‘새로운 역사’를 쓸 모양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반포주공 1단지#재건축사업#강남 최초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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