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은 장애가 아니다[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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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 푸드컨설턴트
강지영 푸드컨설턴트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순 없지만, 그 배경이 장애가 될 수는 없다.”―영화 ‘라따뚜이’에서 음식 평론가 앙통 에고의 대사

라따뚜이는 2007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로 프랑스 파리의 레스토랑 주방에 상상할 수 없는 쥐가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스토리다. 항상 주눅 들어 있던 말단 요리사 링귀니는 천재 생쥐 레미의 도움으로 프랑스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평론가 앙통 에고에게까지 맛있는 감동을 선사하게 된다. 유럽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했는데, 이를 보면서 예전 기억들이 떠올랐다.

언어학으로는 유럽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것 같았고 취직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을 중도 포기하고 요리학교에 다녔다. 졸업 뒤 식당 견습을 거쳐 런던 유명 레스토랑의 말단 요리사가 됐다. 1990년대 초반이라 해도 유럽의 주방에서 동양인 여자로 일하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다. 다른 요리사들의 욕설과 비아냥거림이 나에게 향해도, 꿋꿋하게 내 의사를 표시했는데 이러한 나의 행동이 셰프에게 알려졌다. 감자를 깎고 허브나 식재료를 손질하는 것이 당시 나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주제넘게 음식과 그릇, 소스, 가니시의 조화에 대한 의견을 스스럼없이 말했다. 두어 달 지났을 무렵 셰프와의 저녁 식사 자리가 마련됐다. 셰프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내 의견들을 들은 뒤 새로운 직업을 소개해줬다. 바로 음식평론가라는 직업이었다. 그 후 나는 식문화학교와 와인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며 음식 문화와 푸드 마케팅에 대한 소양을 넓혀 갔다.

영화 속 대사처럼 미래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누구라도 원하는 일을 시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줘야 한다. 요리사로는 자질이 없었지만 다른 재능이 있었던 나를 편견 없이 대해주고 상담해준 셰프, 그가 준 기회는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강지영 푸드컨설턴트
#라따뚜이#레스토랑#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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