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잠은 푹 자둡시다”[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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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전 5시경 함남 호도반도에 나타난 김정은이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지난달 25일 오전 5시경 함남 호도반도에 나타난 김정은이 피곤해 보이는 표정으로 미사일 시험발사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조선중앙통신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미사일과 방사포 시험 발사에 몰두하던 북한이 최근 청와대를 향해 “새벽잠까지 설쳐대며 허우적거리는 꼴” “겁먹은 개”라며 비아냥거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을 해봤다. “새벽잠 설치지 말고 그냥 푹 자도 되지 않을까?”

찾아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북한 미사일 도발로 새벽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적이 없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참석한 NSC 상임위 회의나 안보관계 장관 회의만 열렸을 뿐이다.

기자 생활 17년간 북한 문제로 NSC 새벽회의가 열리는 장면을 수없이 봤지만 그 자리에서 뾰족한 대책을 내놓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또 북한이 핵미사일 같은 파장이 큰 무기를 쏘는 것이 아니고 지금처럼 며칠마다 비슷한 계열의 미사일이나 방사포만 시험하는 상황이라면 국방부 차원의 대응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더 나아가 북한이 새벽에 뭔가를 쐈다고 무조건 대통령부터 장관까지 뛰쳐나와 긴급회의를 여는 방식도 바꾸는 것을 고려해볼 만하다. 북한이 새벽마다 미사일을 쏘는 데는 청와대를 조롱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이는데, 만약 그렇다면 무시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응일 수 있다.

게다가 북한군 전력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김정은이 집권 후 오로지 미사일과 조종 방사포 무력이 포함된 ‘전략군’에만 관심을 집중한 탓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사일과 방사포를 멀리, 정확히 쏘는 데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국방력은 미사일과 방사포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전쟁은 결국 상대의 땅을 딛는 쪽이 이긴다. 이를 위해선 육해공군이 종합적으로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북한은 오래전에 육해공군의 전력 증강 노력을 팽개쳤다. 그 대신 미사일을 쏘고 숨어버리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나 다름없는 전형적인 약자의 군사전략으로 가고 있다. 30∼40년 전만 해도 북한군은 매우 위협적이었다.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도 컸다. 지금 북한은 그럴 군사적 능력을 잃었다.

북한 육군의 상황을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대까지 육군의 핵심 전력인 기갑은 북한이 더 강했다. 그때까지 한국군은 1952년 양산하기 시작한 미국제 M48 계열 전차로 무장했다. 반면 북한은 1960년대부터 탱크를 자체 생산했고, 수량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의 탱크는 1972년 생산된 소련의 T72 계열 전차에서 진화를 멈췄다. 이 탱크는 1990년대에 이미 ‘강철의 과부 제조기’란 오명을 뒤집어썼다. 걸프전 때 첨단 장비로 무장한 미군에 손쉬운 먹잇감이 되면서 붙여진 별명이다. 반면 현재 한국군의 주력 탱크인 K1A1은 북한군 탱크보다 사거리나 관통력이 2배 이상 차이 나고 다른 성능도 월등하다.

제공권을 잃는다면 기갑부대는 무용지물이다. 제공권을 결정짓는 북한의 공군력도 이미 한국에 뒤진다. 1980년대 북한은 한국과 동일한 세대의 전투기를 운용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북한은 4세대 전투기 초기 모델로 1980년대 초반 생산된 미그29를 불과 수십 대만 갖고 있다. 공군의 주력은 여전히 2, 3세대 전투기들이다. 반면 한국은 5세대 모델인 F35 스텔스기를 보유하고 있다. 공중전에서 전투기 한 세대의 차이는 일방적 학살로 이어진다.

해군의 격차는 육군이나 공군보다 훨씬 크다. 북한 잠수함이 남쪽 바다를 휘젓고 다니던 1980년대 한국엔 작전 능력을 가진 잠수함이 없었다. 지금은 전면전이 벌어질 경우 이지스함 등 각종 최신 함정으로 무장한 한국 해군 앞에 북한의 해군은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북한이 미사일, 방사포 전력을 기형적으로 키워도 전세를 뒤집을 능력은 안 된다. 이런 무기들은 기습 발사는 가능하지만 제공권을 상실한 상태에선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 모든 분야에서 열세인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핵무기를 쓰는 순간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김정은도 잘 안다. 따라서 핵무기 하나만 믿고 북한이 남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10년쯤 더 지나 신형 무기를 살 돈이 떨어진 북한군과 계속 최신 무기로 업그레이드하는 한국군의 격차가 얼마나 더 벌어져 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서 핵실험 정도가 아니고 재래식 무기 시험 수준이라면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잠을 푹 자도 좋다고 생각한다. 김정은에겐 요즘 할 일이 그것밖에 없지만, 우린 다른 할 일이 많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북한군#북한 미사일#국가안보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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