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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그의 본색, 우리의 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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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그의 본색, 우리의 본성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8-21 03:00수정 2019-08-21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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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쓴 얼굴, 소속감의 욕구 등 우리 안에 숨쉬는 원시적 본능
상대보다 도덕적, 우월하다 착각… 상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집단의 광기’라는 사실 자각해야
고미석 논설위원
이 나라의 시련은 끝이 없나 보다. 걸핏하면 국가 부도 소리가 나오는 아르헨티나의 이야기다. 최신판 위기는 10월 대선을 앞둔 예비선거에서 좌파 후보가 압승을 거두면서 시작됐다. 좌파 포퓰리즘의 부활 기미에 자국 화폐와 주가가 급락했다. 연임 실패의 위기를 감지한 우파 성향 현직 대통령이라고 가만있을 수 없다. 긴축정책의 소신을 팽개치고 감세, 최저임금 인상, 복지보조금 확대 같은 당근을 내밀었다. 정치생명을 위해서는 어떤 변신도 가능한 모양이다. 나라가 휘청거려도 선거 승리를 위해 물불 안 가리는 정치인, 포퓰리즘의 치명적 유혹에 취한 국민. 모두 눈앞의 잇속에만 눈먼 듯 보인다. 이러니 좌든 우든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리더의 얼굴만 바뀔 뿐 사회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도돌이표처럼 악순환이 반복된다. 좌우지간 팔면 된다는 상술로 포장만 바뀌어 출시되는 구제품처럼.

어쩌면 지금 아르헨티나에 필요한 것은 현역 직업정치인이 아니라 고대 아테네 민주정치를 이끈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일지 모른다. 그는 탐욕 자만심 이기심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아테네인의 본색을 직시하면서, 이들의 단합과 국가의 평화를 이끌어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모든 정치적 의사 결정의 기준을 사적 파벌적 영달이 아니라 ‘무엇이 진정 아테네를 위해 이익인가’로 통합한 덕이었다. ‘정치는 곧 덕(德)’이라는 동양의 옛 명제가 다 이런 뜻과 통하는 것이다. 페리클레스같이 탁월한 성취를 이룬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 자신과 약점을 정직하게 평가하고, 현실에 집중하며, 사람들에게 관대했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는 능력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이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 가능한 능력인데, 그 첫걸음은 자신에게 더 엄격하고, 타인에게 보다 너그러워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지도자 운이 없는 곳이 어디 아르헨티나뿐인가. 총체적 기능 부전에 빠진 사회에 대한 근원적 치료보다 단기적 사익 추구에 급급한 정치인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기염을 토하는 중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상황이 다르니 정도 차이가 있을 뿐 인간이란 특정한 종에게는 닮은 점이 무척 많기 때문이다. 현대판 군주론으로 알려진 ‘권력의 법칙’을 쓴 로버트 그린은 신간 ‘인간본성의 법칙‘에서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태곳적 본성의 노예로 살아간다고 단언한다. 인간 뇌 구조가 생존을 위한 진화 과정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결과 사회적 동물로 발전해 지구를 지배할 수 있었는데, 그 디딤돌이 여러모로 인류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 됐다는 것. 인간 본성에 자리한 비이성적 행동, 근시안, 자아도취, 과대망상, 가면의 욕구 등이 분출하며 활개를 치면서부터다. 자신이 동일시할 집단을 찾아 우리 편 아니면 적으로 단순화하는 부족 본능도 그 원시적 사고의 유전적 패턴이다. 말하자면 수렵시대의 원초적 욕망의 본능 구조가 현대문명의 유형에 맞춰 유통되는 모양새다.

‘인간은 과연 이성적인가’를 되묻게 하는 이 같은 의문과, ‘인간은 본인이 상상하거나 바라는 것만큼 훌륭하지 못하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심리학자 카를 융의 통찰력을 참조한다면 우리는 천성적으로 사람을 오판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가 이상화한 리더와 혐오하는 사람의 거리가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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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정권 막론하고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되는 풍성한 의혹은 이제 놀랍지도 않을 지경이다. ‘인간 본성의 법칙’에 의하면 사람들은 달과 같다. 일반 동물과 달리 대외 이미지, 즉 가면을 만드는 재주를 타고났기에 늘 한쪽 면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특히 공적 인물이 된다는 것은 가면을 적극 작동한다는 것과 동의어다. 진정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의 경우 진정성을 ‘보여주는’ 능력이 남보다 뛰어날 뿐이란다. 그래서 ‘권력의 법칙’의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우리가 서로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대부분 착각이다. 상상으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집단이 가진 광기의 일부다.’ 이념의 이름으로 빚어졌고 또 진행 중인 그 숱한 아수라장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자고 나면 의혹이 넝쿨처럼 쏟아지는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그 자리는 인간의 원시적 본성이 작동하는 방식을 관찰하는 국민적 학습 기회가 될 터이다. 여당은 ‘신상 털기’, 야당은 ‘가족사기단’으로 맞서고 벼르는 빅 이벤트, 인간 본성의 측면에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므로.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집단의 광기#본능#인사청문회#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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