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들 존스 “한국 中企생산성 낙제점… 규제 풀고 보호막 걷어야 강해져”[파워 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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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간 OECD 한국 담당관 ‘한국경제 과외교사’ 랜들 존스

정년 은퇴를 앞둔 랜들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일본담당관이 3일 프랑스 파리 OECD본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지기 전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명패에는 그의 한국 이름인 ‘조은수’가 한자로 쓰여 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 관련 연구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수차례 밝혔다. 파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정년 은퇴를 앞둔 랜들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일본담당관이 3일 프랑스 파리 OECD본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가지기 전 벽에 걸린 한반도 지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가 들고 있는 명패에는 그의 한국 이름인 ‘조은수’가 한자로 쓰여 있다. 그는 “은퇴 후에도 한국 관련 연구를 놓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수차례 밝혔다. 파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이달 말 정년 은퇴를 앞둔 랜들 존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일본담당관(64)은 ‘한국경제 과외교사’로 불린다. 그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 1996년부터 23년간 한국 경제를 연구하고 조언해 왔다. 지난달 12일 프랑스 파리 OECD 본부에서는 앙헬 구리아 OECD사무총장과 고형권 주OECD 한국대사가 참여한 가운데 그의 은퇴식이 성대하게 열렸다. 3일 파리 OECD 본부에서 만난 존스 담당관은 한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하면서도 향후 시급히 풀어야 할 세 가지 숙제를 제안했다.》

○ 경제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 잘한 경제정책

―한국 경제 과외교사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가.

“고마운 표현이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뿐 아니라 지속가능성과 삶의 질까지 총괄해 다룬다. 연금 부담액을 더 올려야 한다는 것처럼 정부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도 솔직히 조언해 왔다.”

―OECD에서 한국 경제를 지켜보면서 가장 결정적이었던 순간은….

“1997년 외환위기다. 주식시장이 반 토막 나고 재벌기업이 무너지면서 한국이 일군 기적이 사라져가는 듯했다. 그러나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는 영어 속담처럼 정부개혁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이뤄내 한국 경제는 더 강해졌다.”

―역대 한국 정부가 잘한 경제 정책을 꼽는다면….

“외환위기 이후 실시한 글로벌 경제 개방과 노동시장 유연화다. 세계 공급망과 연결되며 한국 경제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폐쇄적인 북한 경제와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 2016년 수출액을 비교하면 한국이 4954억 달러(약 583조5000억 원)인데 북한은 28억 달러(약 3조3000억 원)로 175배 차이가 난다. 또 국가는 사람은 보호하되 일자리를 보존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노동 유연성이 높아지면 생산성도 오른다. 다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녀 임금 격차가 너무 큰 건 여전히 문제다.”

○ 한국에 닥친 세 가지 도전 과제

존스 담당관은 한국 경제에 가장 시급한 도전 과제로 세 가지를 꼽았다. 그 첫 번째가 저출산 고령화였다. 그는 “한국은 2016년 기준 노동 가능 인구 대비 65세 이상 고령층의 비율이 OECD 회원국에서 4번째로 낮지만 2050년이 되면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아진다”면서 급격한 고령화 종합대책을 주문했다.

“낮은 여성 고용률을 올리기 위해 보육 문제를 해결하고, 노동자들의 은퇴 연령을 높여야 한다. 또 OECD 평균보다 낮은 청년 고용률을 올리기 위해 구직자와 기업 사이 일자리 미스매치(불일치)도 해결할 필요가 있다.”

그가 꼽은 두 번째 과제는 생산성 향상이다. 그는 한국의 노동시간이 OECD 상위 50%의 평균보다 30%나 높은데 노동 생산성은 40% 이상 낮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특히 중소기업 생산성이 높아져야 한다. 중소기업의 생산성이 대기업의 3분의 1 수준이고, 서비스 분야는 더 낮다. 2017년 제조업 대비 서비스 분야 생산성은 OECD 평균이 84%인데 한국은 44%에 불과하다. 반면 대기업은 지배구조가 더 투명해져야 한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서비스 분야의 불필요한 각종 규제를 정부가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강과 교육 분야 규제가 너무 많다. 반면 중소기업 보호 프로그램은 너무 과하다.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만 1000개가 넘는데 이는 세금을 낭비하고 중소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한국의 기업 퇴출률은 5% 미만으로 OECD 하위 세 번째다.”

―유럽은 최근 청년 스타트업 붐이 한창이다. 한국도 애는 많이 쓰고 있는데….

“한국은 인구 대비 기업가 정신을 부정적으로 보는 비율이 높은 나라다. 어릴 때부터 기업가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고 창업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마지막 세 번째 과제는 무엇인가.

“노동시장의 이중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일의 숙련도가 비슷한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정규직보다 임금이 3분의 1이 적다는 건 문제다. 소득 불평등과 빈곤율 상승으로 이어진다. 여성 비정규직 비율이 41.1%로 남성(26.4%)보다 훨씬 높다. 정규직에 대한 고용 보호를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을 확대하고 사회보험 혜택도 늘려야 한다.”

○ ‘한국’ 포기 안 한 조은수

그의 책상에는 ‘趙恩秀(조은수)’라는 한자 명패가 놓여 있다. 한국어를 배울 당시 선생님이 ‘존스’와 비슷하게 만들어준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19세이던 1974년, 선교사로 한국을 처음 방문해 2년간 부산, 서울, 대구, 광주 등에서 살았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할 때는 한국어를 썼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나.

“1974년 한국에 오기 전 두 달 전부터 한국어를 배웠다. ‘안녕하십니까’를 배워 한국에 왔는데, 누가 ‘안녕하세요’라고 하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웃음). 이후 2년간 하숙집에서 매일 한국 가족들과 이야기하면서 말이 늘었다.”

―1974년 한국을 기억한다면 지금 한국의 발전에 감회가 새롭겠다.

“당시 하숙집에 목욕탕이 없어서 매일 아침 6시 공중목욕탕에 갔다. 전기도 부족했고 당시 아는 사람 중에 자동차를 가진 사람도 없었다. 돈은 없었지만 행복했고 낙관적이었다. 지금 한국은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한국인들은 늘 걱정이 많다(웃음).”

미 미시간대에서 일본학을 전공한 그는 1989년 OECD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일본과 아일랜드 파트를 담당했다. 이어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슬로바키아와 함께 한국을 맡았다. 이후 OECD에서 일본을 다시 맡으라는 지시를 받자, 한국과 일본을 함께하고 싶다고 밝혔고 그로부터 줄곧 한일 두 나라를 담당해왔다. 그가 떠나면서 OECD는 한국과 일본 담당자가 갈리게 됐다. OECD 회원국 10위 내 강국인 두 나라를 동시에 맡을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나라지만 경제 구조는 많이 다르지 않나.

“노동시장 구조는 비슷하다. 다만 일본은 고령화가 심하고 재벌이 먼저 해체됐다. 한국은 그보다 젊고 잠재성장률이 여전히 높지만 일본과 비슷한 경제구조로 가고 있다.”

그에게 있어 한국과 일본은 모두 아끼는 국가다. 그에게 일본이 최근 단행한 한국 수출 규제 사태에 대해 물었더니 “이번 사태는 유감스럽고 빨리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완곡하게 답변을 거부했다.

○ “최저임금 인상 신중하게 접근해야”

존스 담당관은 문재인 정부 이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된 최저임금 이슈를 꾸준히 연구해 왔다. 그는 “지금 한국의 최저임금은 OECD 평균 수준”이라면서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했다.

“문제는 2018년, 2019년 2년 동안 최저임금이 29% 오르면서 노동시장에 큰 충격을 준 것이다. 반면 고용 성장률은 2017년 1.2%에서 2018년 0.4%로 늦춰졌다. 이 때문에 저소득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크게 줄었다. 작은 점포일수록 최저임금을 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은?

“지역과 상황에 따라 최저임금을 다르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그래야 저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막는다. 예를 들어 미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약 8500원)인데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같은 주는 11달러(약 1만3000원)가 넘는다. 최저임금을 1만 원으로 하면 서울 명동은 감당할 수 있겠지만 지방은 힘들다.”

○ 미국에서 계속되는 한국 연구

존스 담당관은 은퇴 후 9월부터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한국과 일본 경제를 연구할 계획이다. 그는 “OECD에서 그랬듯 매년 2, 3번 정도 한국을 찾고 싶다”고 했다. 최근 관심을 갖는 지역은 북한이다. 그는 “동·서독 연구를 포함해 북한 연구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11년 개성에 가봤다. 북한 사람들이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구분하지 않고, ‘북쪽’ ‘남쪽’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긍정적인 신호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처음 갔을 때, 북한을 ‘이북’이라고 부른 것도 생각났다. 개성공단은 북한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고 한국에도 중소기업 노동력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다.”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0년간 한국 정부와 대기업에 쓴소리도 많이 했지만 한국 경제는 매우 낙관적이다. 가장 큰 강점은 뛰어난 인적 자원이다. 한국 학생들은 수학 과학은 물론이고 영어도 잘한다. 그리고 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도 매우 높다. 이렇게 사람이 뛰어나고 투자가 많아지면 노동 생산성은 나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계속 성장할 거고 미래는 낙관적이다.”

○ 랜들 존스 OECD 한국·일본 담당관은


―1955년 미국 출생
―1974년 선교사로 한국 방문
―미국 미시간대 일본학 전공
―1989년 OECD 근무 시작
―1996년 한국 슬로바키아 담당관
―1999년 한국 일본 담당관
―7월 말 은퇴 예정
―미 컬럼비아대 객원연구원(9월부터)

파리=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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