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작은 행복의 ‘알사탕’을 가졌나요[동아광장/김이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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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은 순수한 즐거움, 분명한 행복 추구
넘치는 감정으로 온 힘을 다해 기쁨 공유
팬심의 근원은 연예인 위한 희생정신 아닌
스스로에 대한 행복서 비롯된 이타적 행위
남보다 더 따뜻한 온도의 삶 살고 있을 것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장난감 수집, 그림, 혹은 게임…. 이런 것들은 그나마 ‘키덜트’(키즈+어덜트)라는 말이 생겨 취미로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쓸모없이 여겨지는 취미 활동이 있는데 바로 ‘팬 활동’이다. 누군가의 열렬한 팬이 스스로의 행위를 ‘팬질’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질’은 어떤 행위를 낮춰 표현할 때 쓰인다.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계속할 수밖에 없는 기묘한 애정, 팬심. 이런 기묘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그들을 흔히 ‘독특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 말에는 은연중 미성숙하다는 손가락질, 또는 사회 잉여 취급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중하다. 여기에는 그들 나름의 근거가 있다.

첫째, 자신의 행위를 통해 굳이 무언가를 쫓으려 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소수 유명 작가를 제외하곤 스릴러, 공상과학(SF) 같은 장르물이 실종됐다. 그 대신 자기계발서와 실용서가 상위권이다. 어른이란 존재는 마치 재미를 추구해선 안 된다는 정서가 퍼진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든다. 남는 것이라곤 웃음밖에 없을지라도, 순수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여유와 유쾌함을 나는 좋아한다.

둘째, ‘분명한 행복’을 맛보는 찰나를 그들은 알고 있다. 성공과 숫자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에 비하면 하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허무한 종착지를 목표로 달려가는 사람들보다는 좀 더 행복한 기억을 소유한다. 덜 치열하지만 더 너그럽다. 이는 자신이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했던 경험들 덕분에 생겨난 공감대일 수도 있다. 나도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나’ 한숨을 쉴 때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그들은 그 사소하지만 분명한 행복을 위해 산다.

셋째, 함께 같은 것에 열광하며 무장 해제된 경험이 있다. 어린아이들은 무언가에 환호하면 괴성을 지른다. 그 절제되지 않은 감정은 어른이 갖기 힘든 원석(原石) 같은 것이다. 이 괴성이 자연스러운 곳이 콘서트장이다. 어른이 될수록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순간은 점점 줄어든다. 넘치는 감정을 나눠 가져본, 온 힘을 다해 기쁨을 공유해 본 사람들이 가진 특유의 따스함을 나는 좋아한다.

취미 활동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모아 콘서트 티켓을 사고, 1년 걸려 마침내 손에 넣은 ‘레어템’(희귀한 아이템) 하나에 기뻐한다. 오히려 가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기쁨은 줄어든다. 눈앞의 이득이 아니라 이런 것들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커다란 축복이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으로 나은 삶을 추구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알사탕처럼 까먹을 수 있는 작은 행복들이 있느냐가 결국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직업 특성상 공연장에서 많이 본 풍경들이 있다. 사람 사이의 유대감, 살아있는 이유가 오롯이 서로 때문이라는 듯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서로 닿을 수가 없기에 더욱 순수한 감정을 맨살로 내어놓는다. 그들을 ‘광신도’라고 놀리거나 ‘호구’ 취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간과하는 게 있다. 팬심의 가장 근원에 있는 것은 가수나 연예인을 위한 희생정신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행복이라는 점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그의 삶도 영예롭길 바라는 마음이 팬심이다. 순수한 개인주의적 행복 추구에서 비롯된 이타적 행위.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봐온 팬심의 진실이다.

취미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봤다.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나에게 아름다운 대상이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향해 내 속살 같은 마음을 내어 줄 수 있는가. 바쁜 생활에 치여, 혹은 눈가가 피곤해 놓아버린 쓸데없는 취미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떠올려본다. 주머니에서 꺼내 먹을 수 있는 분명하고 사소한 알사탕을 되찾기 위해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지금 자녀나 주변 누군가가 팬질을 하고 다닌다면, 혹은 그들이 마치 인생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은 무언가를 미치게 좋아한다면, 그래서 이를 지켜보는 마음에 수심이 가득하다면…. 그런 어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걱정과 달리 그들은 남들보다 더 행복하고 따뜻한 온도의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팬 활동#팬심#취미 활동#연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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