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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해외도피사범 대표 수출국”… 범죄자 송환에 공짜는 없다[인사이드&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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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해외도피사범 대표 수출국”… 범죄자 송환에 공짜는 없다[인사이드&인사이트]

장관석 사회부 기자 입력 2019-07-12 03:00수정 2019-07-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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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업-정한근 송환 계기로 본 실태
지난해 국내송환범인 304명… 국가간 공조 늘며 4년새 2배로
사기범죄-필리핀서 체포 최다… 부정축재 특별관리 사범 25명
범죄 혐의액만 1300억원 달해… 범인 체포과정 협조 얻기위해
동남아 국가엔 순찰차 등 지원
장관석 사회부 기자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른바 ‘병풍(兵風) 사건’의 장본인 김대업 씨(57)가 지난달 30일 필리핀에서 체포됐다.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다 해외로 도주한 지 2년 8개월 만이다. 수천 개의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은 거주지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아 그동안 ‘황제 도피처’로 불려 왔다. 김 씨는 필리핀에서 ‘본명’을 밝히면서 카카오톡으로 국내 인사에게 신년 연하장을 보낼 정도로 대담했다. 하지만 필리핀 이민청과 공조한 코리안데스크(현지 파견 한국 경찰)의 끈질긴 추격까지 피할 순 없었다.

최근 검찰은 21년 도피 경력의 거물급 인사를 체포했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 씨(54)다. 정 씨는 회삿돈 수백억 원을 스위스 비밀계좌를 통해 빼돌린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1998년 해외로 달아났다. 검찰은 2017년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한 사실을 확인하고, 포위망을 좁힌 뒤 지난달 정 씨를 국내로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범죄를 저지르고 해외로 몸을 숨겼던 범죄자들이 최근 잇따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국제 사법 공조가 강화되면서 추격의 그물망이 더 촘촘해졌기 때문이다.

○ 국내 송환 늘었지만 도피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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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찰청에 따르면 해외에서 한국으로 송환된 범죄자는 2014년 148명에서 지난해 304명으로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 국가별로는 필리핀(108명), 중국(77명), 태국(25명), 미국(20명) 순이다. 죄명으로 보면 사기 혐의가 159명으로 압도적으로 많다. 사기로 달아났다 필리핀에서 검거돼 한국으로 이송되는 사례가 가장 빈번한 셈이다.

검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매년 해외로 도망가는 사람도 늘고 있다. 수사 선상에 올랐다가 해외로 도피해 기소 중지된 조현천 전 국군기무사령관 등과 같은 피의자는 2014년 말 330명에서 2018년 644명으로 2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법원에서 형이 확정됐으나 해외 도피한 자유형 미집행자는 같은 기간 379명에서 686명으로 늘었다. 밀항으로 출국 기록을 남기지 않고 해외로 나가버리면 국내에 체류하는 것으로 간주돼 공소시효 정지 제도를 적용할 수도 없다. 이런 식으로 처벌을 피한 사람이 지난해 1만 명을 넘어섰다.

외국인이 범죄를 저지른 뒤 한국에 들어오는 일은 드물다. 좁은 땅에 촘촘한 통신 네트워크가 구축돼 있고,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밀입국도 어렵다. 다른 나라의 요청에 따라 한국에서 붙잡힌 수배자는 지난해 기준 10명 미만으로 알려졌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범죄자 ‘수출’이 ‘수입’보다 더 많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이 외국에 사람 좀 잡아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가 더 많은 것이다.

이들을 검거 및 송환한 검찰 수사관들에 따르면 대부분은 오랜 도피 생활에 지쳐서인지 체념한 채로 수사관의 지시에 순순히 응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수갑을 채운다. 항공기의 다른 탑승객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수건으로 가려주거나 지시에 잘 따르면 풀어준다. 송환을 피하려고 공항 보안 검색대를 붙잡고 저항해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다. 항공기 내에서 식사할 때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수저나 식기도 금속류는 피한다.

하지만 2017년 프랑스에서 체포돼 송환된 고(故) 유병언 씨의 딸 유섬나 씨는 수갑을 가려주려 해도 밀쳐냈다고 한다. 10시간 넘는 비행에도 식사도 하지 않은 채 성경책만 읽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유 씨가 정치적으로 희생되고 있다는 모습을 승객들에게 보여주려는 듯했다”고 말했다.

○ ‘핀셋 추적’ 검경…은닉재산 환수는 산 넘어 산

당국은 특히 해외 도피 범죄자를 검거해 은닉 재산을 환수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재산을 빼돌리고 해외로 달아나 호의호식하는 범죄자들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크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은 해외 도피 범죄 혐의자 12명을 ‘핀셋형 추적 대상’으로 선정해 추적하고 있다. 법무부는 ‘특별관리 대상 국외 도피 기소중지자 중 부정축재 사범’ 25명을 특별관리 대상에 올리고 검거 및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의 횡령, 사기 등 범죄 혐의 액수는 13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엔 서울남부지검에서 200억 원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지난해 10월 네덜란드로 도주한 범LG가(家) 3세 구본현 씨도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해외 범죄자 송환도 어렵지만 불법 재산 환수는 또 다른 난제다. 자금이 비밀 계좌에 잠자고 있는 게 아니라 회사 설립과 지분 매입 등 복잡한 채권 채무 관계를 파생하기 때문이다. 정한근 씨도 도피 초기 빼돌린 자금이 러시아, 에콰도르, 파나마 자원개발 업체 쪽을 거친 정황이 수사 당국에 포착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정 씨의 노트북과 자료를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태수 씨가 숨지기 전 정한근 씨에게 은닉 재산의 출처를 진술해 줬을 가능성도 검찰은 조사하고 있다.

정한근 씨는 또 “사업 지분 50%가량을 에콰도르 정부에 빼앗겼다”며 미국에서 에콰도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검찰이 정 씨의 은닉 재산을 최종적으로 환수하는 데는 시일이 더 걸릴 수 있다.

신병 확보 이전에 해외 불법 재산을 추적하는 건 더 어렵다. 이런 탓에 정부가 검찰, 국세청, 관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을 동원해 해외 불법 재산 합동조사단을 구성하며 “해외 재산 은닉, 대기업 해외 비자금, 조세피난처 이용 정황 발견 시 즉시 수사로 전환” 등을 공언했지만 어려움이 여전하다. 최근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캄코시티’에 묶인 채권 6500억 원가량을 회수하는 캄보디아 현지 소송에서 예금보험공사가 패소하기도 했다.

현지 사법기관의 송환 재판 등 절차로 인해 범죄 혐의자를 실제로 송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임금 123억 원을 체불한 혐의를 받은 전윤수 전 성원건설 회장 사례가 대표적이다. 2010년 3월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되자 그는 “병을 치료한다”며 미국으로 도피했다. 다섯 달 만에 미국 당국에 체포됐지만 보석으로 석방된 뒤 추방 청문회에 불참하며 9년째 도피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전 전 회장은 불법 체류자임에도 고급 골프장에 출입하고 나이아가라 폭포 등을 유람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병언 씨의 차남 혁기 씨도 검찰이 미국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하고 한때 인터폴에 적색 수배령까지 내렸지만 현재 그의 행방은 묘연하다.

○ 국제 공조와 추적팀의 의지에 성패 달려

최근 검찰은 기관 간 업무협약(MOU)을 통한 수사 공조로 빠르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더하고 있다. 특히 문무일 검찰총장은 보이스피싱, 마약 사건 등 국내 범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핵심 국가인 중국, 베트남 등과의 공조 체제 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대신 베트남 등 상대국들은 “사이버 범죄, 디지털 포렌식 등 과학수사 기법과 노하우를 전수해 달라”고 한국에 반대급부를 요청했다. 양국이 서로 필요한 점을 보완하는 ‘윈윈’ 체제인 셈이다. 형사사법 국제 공조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도 “인터폴 적색 수배자를 최우선적으로 검거해야 한다”는 법은 없으므로 한국 사법당국이 요청한 도피 사범을 발품 팔아 찾아줄지 말지는 그 나라 사법당국의 재량이다.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계장은 “한국이 자칫 국제사회에서 ‘도움을 받기만 하는 나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 동남아 국가엔 순찰차를 지원하는 등 공적개발원조(ODA)를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국제 범죄 해결을 위한 공조 체제를 구축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마침 검사 국제기구인 국제검사협회(IAP) 황철규 차기 회장(부산고검장), 세계 194개국이 가입한 형사경찰기구 인터폴 김종양 총재 등 한국인이 동시에 검경의 국제기구 사령탑에 올라 있다. 정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시기인 만큼 한국도 국제 범죄 대응 역량을 강화할 기회”라고 말했다.

정한근 씨 검거 과정은 어떤 일을 맡은 사람이 가진 열정과 몰입의 차이에 따라 결과물이 얼마나 판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성공 사례로 검찰과 경찰 안팎에서 주목받고 있다. 추적팀은 정 씨의 온라인상 행적과 단서 추적, 외국 기관과의 공조를 통해 20년 넘게 숨어 살던 한보사태 일가의 행적을 찾아냈다. 법 규정 문제나 입법상 흠결을 전가의 보도로 꺼내드는 공직사회가 이번 사례를 찬찬히 곱씹어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장관석 사회부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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