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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그야말로 ‘닥공’시대―피도 눈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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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그야말로 ‘닥공’시대―피도 눈물도 없이

고미석 논설위원 입력 2019-06-26 03:00수정 2019-06-2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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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 특권에 대한 자의적 해석… 교육 겨냥한 적폐청산의 칼끝
“새로 얻은 권력 언제나 잔혹”… 부정적 공격에너지 과잉 시대
사회적 낭비 어떻게 감당할까
고미석 논설위원
차기 총리 선출을 위한 영국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1차 투표를 통과한 7명 중 6명이 옥스퍼드대 출신이다. 최종 결선에 오른 보리스 존슨과 제러미 헌트에게는 닮은 점이 또 있다. 명문가 ‘금수저’ 도련님으로 각기 학교를 대표하는 토론클럽 유니언과 보수 학생클럽의 의장 출신이란 점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에 옥스퍼드와 브렉시트의 관계를 되짚는 칼럼이 실렸다. 영국의 새 조타수가 될 유력 후보의 족적 사이로 민주주의 종주국에 작동하는 뿌리 깊은 엘리트 중심 교육체제가 엿보인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두 후보의 출신 고교 역시 명문 사학이다. 존슨은 한 해 학비만 6300만 원에 이른다는 이튼 출신, 헌트도 그에 못지않은 명문 차터하우스를 나왔다. 이렇듯 비싼 학비를 내는 사립고 졸업생이 옥스퍼드대 입학생의 42%를 점한다는 통계가 있다. 교육 이야기를 하자고 해도 결국 정치 이야기로 귀결되는 한국이라면 ‘입시경쟁과 고교 서열화의 주범’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상산고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자사고를 빈부격차에 따른 분리교육으로 해석하는 선출직 교육감의 신념과 무관할 리 없는 결정 탓이리라. ‘평등과 특권’이라는 흑백논리가 수상쩍은 정치의식과 결합되면서 한국적 기현상으로 치닫는 중이다. 말끝마다 차별 없는 사회를 빌미로 내세우지만 ‘자의적 기준에 따라 특정 집단에 불이익을 주는 것이야말로 차별’이라는 인터넷 지식백과의 설명이 딱 들어맞는 사례다. 이 와중에 교육부는 시민감사관을 투입해 16개 사립대에 전례 없는 감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적폐 프레임의 공세가 교육계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새로 얻은 권력은 언제나 잔혹하다.’ 우리 시대의 원로 지성인 문학평론가 유종호가 최근 펴낸 책 ‘그 이름 안티고네’에서 언급한 아이스킬로스 비극의 대사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 책은 또 ‘안티고네’를 분석하는 한국과 미국 대학생 간의 차이도 사뭇 흥미롭게 보여준다. 한국 학생들은 어찌 된 일인지 ‘폭군과 이에 항거한 안티고네’ 식으로 천편일률적 답변을 내놓는다. 여기에 소수파 관점은 거의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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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경우 대립하는 인물 제각각에 자기 나름의 정당성을 부여하면서 저만의 주체적 소신을 표현하는 등 쏠림의 정도가 덜하다는 것이다. 원로의 글은 ‘소수 의견의 활발한 제시와 이를 매개로 한 자기 성찰이 개인의 성숙과 사회의 성숙을 위해 긴요하다’는 점을 넌지시 일깨워준다. 어떤 사안을 단순하게 선악 갈등으로 해석하기보다 부분적인 선의 갈등으로 바라보는 통찰력 말이다.

극단적 사고로 분단된 우리 사회에 가장 결핍된 영양소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전시를 만났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면 3개 골대가 있는 작은 축구장이 설치돼 있다. 덴마크의 예술가 겸 사회운동가인 아스거 욘(아스게르 요른)이 1961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 체제하에서 양극화된 가치 체계의 충돌을 우려해 구상한 삼면 축구장의 재현이다.

3팀이 참여하는 경기의 규칙은 선수들끼리 자율 협의 토론으로 정한다. 복잡하고 귀찮을 수 있다. 하지만 두 개의 상반된 힘이 마주 서면 경쟁과 충돌이 벌어지는 반면 또 다른 세력이 등장하면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마치 민주주의와도 같다. 삼면 축구에서는 영원한 아군도 적도 없이 그때그때 협력을 추진하는 방어 전략이 필수적이다. 골을 많이 넣는 것보다 가장 적게 실점한 팀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그 어떠한 것도 이원적인 대립 관계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이 작품은 말한다”고 설명했다.

공격축구가 현대의 추세라지만 한국에서는 스포츠를 넘어 국가와 사회에 그대로 적용되는 원리가 되고 만 것일까. 피도 눈물도 없는 듯한 ‘닥공’(닥치고 공격)이 지나는 곳마다 극단적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파격과 무리수의 부정적 에너지가 사회를 뒤덮고, ‘청산 주체와 청산 대상’의 교조적 적대감 아래 협력과 균형은 설 자리를 잃어버렸다. 극과 극을 넘어 제3의 선택지란 없는 양자택일의 나라. 단순하고 감정적인 이분법 논리에서 생긴 오류가 쌓여 만든 사회적 낭비는 누가 어떻게 언제 감당할 것인가.

삼면 축구장의 벽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래는 과거를 놓아주거나 희생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옛 사람들은 생명을 죽이거나 살릴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 살리는 쪽을 선택하는 마음, 호생지덕(好生之德)의 어진 마음을 강조했다. 과연 어느 쪽이 과거 정권을 넘어서는 길인지 깊이 생각해보면 좋겠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적폐청산#상산고#자사고 재지정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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