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보다 구형이거나 쓰다 버린 중고품…美 해병 ‘구식 무기’에 숨은 뜻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24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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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뒤늦게 한국에 도착한 미 해병부대가 이동 중에 육군 중대가 길가에서 야영을 준비하는 것을 보았다. 해병대 장교가 이곳은 적의 포격을 받을 위험이 있으니 산비탈로 올라가라고 조언했다. 육군 중대장은 충고를 무시했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

해병대와 육군의 차이는 경험과 훈련의 차이였다. 미 육군은 훈련이 돼 있지 않았고, 장교들은 야전 전투 경험이 부족했다. 중대장이 산비탈에 오르기 싫었던 이유도 체력부족 때문이었다. 반면 해병대는 육군보다 진급이 더뎠던 탓에 2차대전 참전용사들 상당수가 현직에 있었고, 병사들은 언제나 싸울 준비가 돼 있었다.

해병대 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참전 명령이 떨어지자 해병대는 당장 창고로 달려가 봉인된 무기들을 꺼냈다. 여기에는 해병대에게 지급된 무기만이 아니라 2차대전 때 육군이 버리거나 간수를 소홀히 했던 병기도 가득했다. 그런 무기를 다람쥐 모양 꼬박꼬박 챙겨서 다음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해병대의 전통이라나.

이 말은 해병대의 장비는 늘 육군보다 구형이거나 육군이 쓰다 버린 중고품을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월남전에서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 근교에 있는 콴티코 해병박물관에는 월남전 당시 헬기에서 강하하는 해병대원의 모습이 전시돼 있는데, 헬기는 육군이 사용하던 UH-1이 아니라 크고 둔한 중고 시콜스키 헬기이다. 한 병사는 M16이 아닌 M14 소총을 들고 있다.

이렇게 구형 무기를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해병대원들은 분노해서 적을 하나라도 더 죽이라는 의미라고 자조적인 해석을 했다. 진짜 이유는 예산 싸움에서 밀린 탓이겠지만, 철학적 해석을 하자면 첨단 기술과 무기에 과하게 의존하지 말라는 의미는 아닐까?

첨단무기는 병사들의 땀과 위험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승리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한다. 이를 망각하고 편함과 안전만 추구하면 군과 국가는 위험해 진다.

임용한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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