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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인실]소비자는 안중에 없는 혁신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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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인실]소비자는 안중에 없는 혁신경제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입력 2019-06-18 03:00수정 2019-06-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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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차공유-원격 의료 등 혁신산업, 택시업계와 의사 반발에 주춤거려
정부는 인기영합주의로 해법 못 찾아… 소비자 후생 개선하려는 정책 필요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미국 유학 시절 탔던 비행기 옆자리의 중년 신사와 나눴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미니 당근 전문가라고 본인을 소개한 신사는 가장 맛있는 미니 당근을 가장 싸게 사서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에 파는 자신의 직업이 자국 소비자 후생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30년도 더 된 일을 떠올린 것은 최근 들어 공유경제, 원격 의료, 인터넷뱅킹 같은 혁신경제 이슈들이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데 반해 이와 관련한 한국 소비자의 후생에 대한 논쟁은 보이지 않아서다.

돌이켜 보면 1990년대 들어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과 뒤이은 세계무역기구(WTO) 출범에 따라 국내외 생산 거점과 시장의 구분이 사라지며 시장 개방 압력이 거세졌을 때에도 지금과 비슷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대외 개방의 파고가 밀려들자 정부는 무역 정책의 초점을 산업의 국제경쟁력 제고에 맞추었고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 왔던 자동차, 철강, 전자 등의 주력 산업 분야는 세계 수위권으로 올라서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유무역을 통한 소비자의 후생 증대는 뒷전으로 밀려났었다. 이 당시는 먹고살기에 여전히 급급해 소비자 주권이 들어설 여력이 없긴 했다.

하지만 한국 경제가 ‘30-50 클럽’에 진입한 현 상황에서, 정보기술 업계를 중심으로 혁신성장 사업으로 논의가 뜨겁게 진행 중인 승차 공유나 원격 의료 등의 문제를 산업 경쟁력의 이슈로만 보아선 안 된다. 급속도로 일상에서 확산 중인 모빌리티(이동성)와 헬스케어의 혁신 과도기를 맞아 기존 택시 업계 및 의사들이 반발하고 나선 데 대해 정부와 정치권이 인기에 영합한 대처로 일관하고 있는 것은 소비자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선 이미 활발하게 진행 중인 모바일 헬스케어 혁신이 국내에선 가능성이 없어 보이자 해외로 떠나는 헬스케어 기업이 계속 늘고 있다.

그동안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제조업의 한계를 허물며 기업가 정신의 꽃을 피울 때는 세계 기업들이 앞다투어 한국을 방문해 벤치마킹하고 테스트베드로 삼았지만, 지금 한국 시장은 세계 첨단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의 테스트베드에서 밀려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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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에서 소비자가 시장에서 어떤 물건을 얼마나 사느냐에 따라 생산물의 종류와 수량이 결정된다. 이런 소비자의 자원 배분 능력이 독점이나 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지식 결여 등의 요인으로 제한받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되어야 국가 경제가 번영한다. 과거에는 낮은 대출금리나 높은 예금이자율이 최선의 재테크였지만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지불서비스법안(PSD2·Payment Service Directive 2)을 통해 은행이 가진 소비자의 금융정보를 다른 제3의 사업자들에게 공유할 의무를 명령함으로써 금융회사의 고객 정보에 대한 독점을 철폐하여 새로운 핀테크 회사들이 진입하는 데 장벽을 제거했다. 이로써 소비자가 자신의 생활 및 소비 패턴에 맞게 자산을 관리할 수 있어 소비자의 후생은 더욱 좋아지게 될 것이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저성장과 불평등 확대를 해소하기 위해 내세운 ‘소득주도’ ‘공정’ ‘혁신’의 3대 경제정책 기조 중 가장 저조하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혁신성장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듯하다. 오죽 답답하면 문 대통령이 핀란드 오타니에미 혁신단지를 방문하면서 관계자에게 혁신과 기득권의 충돌을 어떻게 이겨냈는가를 물어보았을까 싶다. ‘마음을 열고 서로 경청하며 늘 불확실성을 안고 산다는 것을 감안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정진하는 것뿐’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답이 매우 와닿을 것 같다.

혁신경제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용어를 내세우기보다 국민이 매일매일 당면하고, 추구하는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더 긴요한지를 간파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적 투자와 사회적 대비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미니 당근이 원래 작은 것이긴 했지만 손가락 크기로 다듬었더니 더 잘 팔렸다고 한다. 다듬고 남은 것은 주스로 만들어 팔았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 집과 직장이라는 공간, 이동 수단, 각종 공용 시설 및 서비스 등에서 국민의 사유재산권 및 공유재산권을 보호하고 그 활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확립해 가려고 노력하는 국가가 돼야 번영한다.
 
이인실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혁신경제#제조업#4차 산업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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