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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원 맨 팀’이 아니라 ‘원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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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원 맨 팀’이 아니라 ‘원 팀’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입력 2019-06-15 10:15수정 2019-06-1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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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감독과 선수가 만나 가장 결속력 있는 팀 꾸려
6월 11일(현지시각) U-20 월드컵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4강전 종료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뉴스1]
옛 기록의 먼지를 털어내는 데 36년이나 걸렸다. 1983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남자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이후 처음이다. 당시 박종환 감독을 필두로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카퍼레이드까지 하던 모습. 촌스러운 색감의 사진에 흘러간 세월이 배어 있었다. 그 뒤로도 ‘황금세대’는 심심찮게 등장했지만 4강에는 오르지 못했다. 이번엔 한 발 더 나아가 결승무대까지 밟았으니 꽤 파격적이었다.

대회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는 말도 있다. 호들갑 떨 일 아니란 얘기다. 유럽 빅리그는 데뷔 연령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고, 만 20세라면 이미 몇 년 차 프로선수인 경우도 꽤 있다. 실제 이번 대회 참가가 가능했던 킬리앙 음바페(프랑스)는 지난해 러시아월드컵에서 정상 등극을 이끌었다. ‘제2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로 꼽히는 주앙 펠리스(포르투갈) 역시 불참했다. 하지만 FIFA 주관대회와 큰 연이 없던 우리에겐 대단한 사건이다.

화두는 ‘원 팀’이다. 굉장히 잘하는 선수도 조직 내로 들어갔다. 이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간 메이저대회에 나선 감독들도 하나같이 ‘원 팀’을 거론했으나 제대로 구현한 적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축구는 특급 에이스로만 되는 게 아니다. 오죽했으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최근 한 콘퍼런스에서 “리오넬 메시를 보유한 아르헨티나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혼자서 위대한 일을 해내는 이는 없다는 사실을 깨쳐야 한다”고 비유했을까.

별 볼 일 없던 선수, 일찌감치 별을 찾는 유소년 지도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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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활약한 골키퍼 이광연(왼쪽).정정용 감독이 6월 9일 U-20 월드컵 8강전에서 세네갈을 승부차기 끝에 꺾은 뒤 두 팔을 들어 올리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대한축구협회]
가장 먼저 짚을 것은 정정용 감독이다. 냉정히 말해 축구선수로서는 딱히 들춰볼 게 없다. 서울 이랜드푸마 소속으로 실업축구를 경험했다. 수비수로 6년간 뛰었지만 부상에 시달려 20대 후반 일찌감치 축구화를 벗었다.

그렇다 보니 지도자로서 굵직한 경험을 하는 데도 제한이 따랐다. 소위 공 좀 찼다는 선수들이 서른줄에 은퇴해 대학팀이나 프로팀 코치직을 맡는 요즘보다 훨씬 더 문이 좁았던 때다. 지도자의 길에 뛰어든 정 감독은 대학원에서 스포츠생리학 공부를 병행했고, 2006년 대한축구협회 전임 지도자로 유·청소년 축구와 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성장기 선수 대부분이 정 감독의 레이더망을 거쳐갔다.

좋은 선수가 꼭 좋은 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다만 탁월했던 선수가 훌륭한 지도자가 될 기회가 조금 더 많을 뿐이다. 일선에는 “2002 한일월드컵 4강 멤버들이 지도자 생활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얘기가 있다. 지도자로 출발할 때 선수 경력과 인지도가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비단 국내 일만이 아니다. 40대 중반인 지네딘 지단은 감독 데뷔를 레알 마드리드에서 했다. 부임 직후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3연속 제패를 이루는 성과를 거뒀다. 유명 선수들도 “지단 감독은 내 우상이었다”며 입을 모을 정도. 말 그대로 ‘슈퍼스타의 슈퍼스타’였다. 이를 바탕으로 통솔력을 극대화했고,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반면 정 감독은 이 대목에서 더없이 취약했다.

축구계 ‘아싸’를 ‘인싸’로 만든 건 겸손과 연구

‘무명 선수’였다는 과거는 지도자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종종 걸림돌이 됐다. 정 감독 역시 한탄한 적이 있다. 연령별 대표팀 지도자는 강제소집 권한이 없다. 각 소속팀에 차출 공문을 띄우고 협조를 기다려야 한다. 학생 신분이라면 모를까, 프로선수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프로팀 처지에서는 높은 연봉을 주는 선수를 굳이 무리해서 연령별 대표팀에 파견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감독까지 유명하지 않다면 말이다. U-20 월드컵을 앞두고 정 감독은 선수를 모으지 못해 애를 먹었다. “감독님, 이번에도 핵심 선수는 얼마 없네요?”라는 필자의 물음에 그는 “다 제가 부족한 탓에 안 보내주나 봅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바이에른 뮌헨의 정우영을 부르는 건 끝내 불발됐다. 대회 직전 코치진 구성이 큰 폭으로 변했고, 선수 또한 적잖이 바뀌었다. 그대로 표류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럼에도 정 감독은 이를 잘 다독여나갔다. 발렌시아CF 구단을 직접 방문해 이강인의 대회 출전을 성사시켰고, 인창수 코치 등과 함께 국내 현장을 돌며 선수들의 실력 점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노력의 산물이 U-20 월드컵 결승행이다. 그는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도자로서 덕목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그간 써내려온 전술 노트가 숱하게 쌓여 있다. 정 감독은 생각지도 못한 판을 떡하니 내놓는 천재와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본인이 쌓은 축구 내공에 선수들 마음을 사는 능력을 갖춘 감독이다. 원칙에 근거해 경쟁을 유도하면서 팀 기강을 잡아나갔다. 무엇보다 ‘무명 지도자’ 딱지를 뗀 뚝심은 범접 불가 수준이다. 어쩌다 얻어걸린 행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실력도, 인성도 부동의 에이스 이강인
U-20 월드컵 4강전 대한민국과 에콰도르의 경기에서 이강인이 상대 문전을 향해 공을 올리고 있다. [뉴스1]

이번 대회에서 이강인의 주가는 폭발했다. U-20 월드컵 전에도 같은 연령대 최고 수준에 올랐다고 평가받던 이강인은 더 오를 폭이 남아 있음을 증명했다. 그가 공을 다루면서 여기저기 정확히 패스하는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이를 실전에서 얼마나 잘 쓸 수 있느냐, 경기를 얼마나 잘 조율하느냐가 관전 포인트였다. 이강인은 결승무대에 다다르기까지 1골 4도움을 기록하며 그 기대에 부응했다.

안정환 MBC 축구해설위원은 “물건 하나 나왔다”며 흥분했다. 이강인이 경기 도중 물을 마시는 모습을 “상대 흐름을 끊고 가는 계산된 행동”이라며 극찬했다. 대표팀 형들보다 두 살 어리면서도 경기 운영을 쥐락펴락한 이강인은 ‘축구도사’ 느낌까지 풍겼다. 폴란드 현지 보도에 따르면 해외 복수 구단의 스카우트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발렌시아가 설정한 바이아웃 금액을 듣고는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발렌시아로부터 이강인을 영입하려면 최소 8000만 유로(약 1071억 원)가 필요하다.

더 인상적인 건 팀을 이끄는 능력이다. 공도 잘 차는데 조직을 뭉치게 하는 능력까지 있다. “상대와 기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다. 애국가를 크게 불러달라”며 국내 축구 팬을 하나로 만든 이강인은 선수단 사이에서도 예쁜 짓을 골라 했다. 클라이맥스는 세네갈과 8강전이었다. 종료 직전 이지솔의 헤더 동점골을 만들어낸 이강인은 교체 아웃돼 벤치에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돌입한 승부차기. 이강인은 대뜸 골키퍼 이광연을 붙잡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형, 할 수 있잖아”라는 말로 긴장을 풀어줬다.

이런 면 때문에 이강인이 차기 주장감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수년 전 이강인이 처음 한국 연령별 대표팀에 소집됐을 때 국내 분위기에 관해 짧게나마 설명해준 적이 있다. 그는 스페인에서도 대회 우승 등 특별한 날에는 선수단 대표로 취재진과 대화를 나누곤 했다. 하지만 국내 정서는 또 다를 수 있었다. 인터뷰할 때 ‘유럽에서 통용되는 톡톡 튀는 개성보다 먼저 동료들에게 감사하고 팀 차원에서 접근해보라’는 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에 답하는 그 짧은 순간에 특정 이미지로 낙인찍힌 어린 선수가 실제로 적잖았던 탓이다. 관점이나 가치관이 크게 다른 동서양의 차이도 더더욱 감안해야 했다.

이 모든 게 괜한 걱정이었다. 이강인은 절대 들뜨거나 가라앉지 않았다. 생각을 조리 있게 잘 풀어내는 진중함에 ‘인생 2회 차’ ‘인터뷰도 월드클래스’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가르쳐서 될 일이 아니다. 가정교육과 품성의 힘이다. 평소 지도자와 팀원들을 존중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기에 가능했다. ‘감사’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이강인. 우리는 ‘어떻게 어린 선수가 저런 생각까지’라며 신통방통해했다.

그 말들이 가식이 아니라는 건 플레이 면면을 통해 체감할 수 있었다. 이강인은 한 발 더 뛰는 헌신으로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직접 들이받기에 그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또 수장을 향해 “최고의 감독님”이라며 공을 돌릴 줄 아니 팀에는 이만한 보물이 없다.

형, 동생 전에 우리는 한 팀

U-20 월드컵 4강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사상 첫 결승에 진출한 한국 대표팀이 모여 환호하고 있다. [뉴스1]
“막내에게 한마디 해주세요”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조영욱은 “강인이가 우리 팀 막내라고요?”라고 되물었다. 황당한 표정을 짓는 그 넉살스러움에 모두가 폭소했다. 이강인을 되려 “형”이라고도 불렀다. 한두 살 많은 동료들은 이강인을 귀여워하면서도 진심으로 따르고 맞춰줬다.

몸은 다 컸어도 정신적으로 성숙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한 선수들이다. 아무래도 실전에 나서는 11명과 나머지 선수의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 팀 분위기는 사실상 벤치에서 대기하는 이들, 즉 운동장 한구석에서 몸 풀며 투입 명령만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만든다. 어느 누가 안 뛰고 싶을까. 그럼에도 조직을 위해 개인 속내를 덮어야 할 때가 있다.

과거 이 연령대를 거친 어떤 선수는 “우리는 원 팀이 아니라 투 팀이었다. 경기 나가는 애들은 저들끼리만 다니고, 벤치 멤버들은 어차피 못 뛴다고 체념하고…”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결과는 뻔했다. 세계무대는커녕 아시아에서 조별리그 탈락했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 음지에서 서포트하는 선수들의 호흡이 그만큼 중요하다. 서로 진심으로 위해야 하나의 울타리로 묶인다.

이런 이상적인 그림이 U-20 대표팀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강인과 오세훈은 선발로 나서지 못한 이들을 일일이 찾았다. “잘 준비해줘 정말 고맙다”는 메시지를 따로 건넬 만큼 각별히 신경 썼다. 4강까지 출전하지 못한 유일한 필드 플레이어 이규혁은 출전하고 싶은 마음에 울컥하면서도 “내가 못 뛴다고 해서 절대 뒤에서 표현하지 말자”며 응원했다. 해당 연령대를 꾸준히 오랫동안 관찰해온 필자에게도 꽤 큰 울림을 줬다.

월드컵은 나이 제한이 없다. 하지만 U-20 같은 연령별 대회는 보통 한 차례밖에 나서지 못한다. 정 감독과 선수단은 인생에서 딱 한 번 있을 대회를 더할 나위 없는 황금기로 장식하고 있다. 한국 축구의 미래가 저 멀리 폴란드에서 피어나고 있음에 지켜보는 마음도 넉넉해지는 요즘이다.

홍의택 축구칼럼니스트 releasehong@naver.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119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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